아내 혜수랑의 요새 모습은 손색없는 노사모이다.
탄핵안 가결이 있었던 12일을 시작으로
여의도에서 광화문으로 연일 촛불집회를 쫓아다녔고
집에 있을 때는 노사모게시판을 모니터링하면서
이제 보름 남짓 지났을 뿐인데 완연한 노사모가 되었다.
아내는 요즘 나를 [골수노사모]라 부른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부르는데
내가 듣기에는 영 거북하기 이를 데 없다.
다른 더 좋은 말로 불러달래도 싫다고 우긴다.
그런 아내와 어제는 노사모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게시판에 대해 이러저런 말을 하다 영부인 얘기가 나왔다.
아내는 내 말을 듣더니 그건 노사모 편에서 하는
일방적인 말이라는 것이었다.
자기도 노사모지만 자기는 공정하려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영부인께 욕설한 당사자에 대해 분개하는 것은
노사모이기 때문에만 분개하는 것이 아니란다.
나는 그저 노사모게시판만 들여다보고 있지만
자기는 여기 저기 다른 싸이트도 다녀보고
노사모에 치우치지 않은 시각으로 판단하건대
자기와 같은 일반 주부들의 입에서도
욕이 나오게 만드는 못된 인간이라는 것이다.
아파트 젊은 주부들과 티타임을 가지면서도
이번에는 자기가 먼저 영부인 얘기를 꺼냈단다.
그런데 다른 주부들과는 달리 평소엔 자신의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고 얌전하던 한 젊은 주부가
그날 따라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놀랐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너무 노사모 안에만 갇혀 있으면
노사모 밖에 있는 여론에 대해 둔감해지고
노사모의 여론에만 치우치게 된단다.
노사모의 여론이 옳다고 해도 공정성이 필요하단다.
토요일까지 이어진 탄핵반대 촛불집회가
노사모 집회가 아닌 시민들의 집회라는 공정성의 신뢰 때문에
자기와 같은 평범한 주부들이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그렇게도 많이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니었겠느냐고 한다.
그런 점에서는 노사모가 노란 옷을 안 입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스스로 평가도 한다.
노사모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같이 노사모 여론에만 치우치는 노사모보다는
노사모 밖의 여론에 귀 기울이는 노사모가 많아야 한단다.
그래서 자기는 요즘 돌아가는 시국에 대해
아파트 주부들의 얘기도 귀담아 듣고
다른 데서는 어떻게 말하는가 찾아보기도 한단다.
내가 완전히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만만히 보고 괜히 아는 척, 잘난 척 하다가
노사모에 나같은 사람이 더 있지 않나 하는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들여다 본 것 같았다.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이 후끈 들었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려는 노력을 더욱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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