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라는 법언(法諺)이 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뜻의 라틴어로, 법의 기초는 약속을 지키는데서 출발한다는 의미의 법률학 교과서 서론에 등장하는 격언이다.

약속(또는 계약)이 일단 성립되면 그 당사자가 국가와 국가,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이든 서로간 성실한 약속이행을 기대하며 실천해야 한다.

현재 연천군에서는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서면 약속한 각서와 합의서가 각각 존재한다. 각서의 내용은 지난 2006년 12월11일 수자원공사 임진강건설단이 한탄강댐 사업고시 9일전 댐건설을 반대하는 해당지역 주민에게 구두와 서면으로 2007년 12월 말까지 인근 약 3만평 부지를 한탄강댐 사업구역으로 고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부지매입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일단 댐공사가 시작됐으니 더 이상 지역주민과의 각서에 따른 약속이행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수자원공사의 경영마인드일 것이다.

또 다른 합의서에는 6명의 희생자를 낸 임진강참사의 사고처리 과정에서 수자원공사가 선조치.후처리 입장을 견지하며 연천군과 공동 작성한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이 합의서에 따라 유족들에게 선지급한 30억원 구상금 배분에 따른 상반된 의견충돌로 수자원공사와 연천군이 대립각을 세우며 서로 맞소송을 제기하는 등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수자원공사가 한탄강댐 사업 고시를 앞두고 주민에게 토지매입에 대한 각서 약속은 도외시 한 채 임진강사고 당시 작성한 합의서의 법리적 해석에만 치중하는 등 공기업의 도덕성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며 연천군과 군민들을 분노로 들끓게 하고 있는 것이다.

수자원공사의 원칙 없는 표리부동한 경영 행위로 인한 연천군민들의 분노를 보면서 공기업의 위치와 존재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각서는 저버리고 합의서는 준수하라는 이율배반적인 모습과 부도덕한 기업윤리, 언행불일치를 지켜 보며 필자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백범 김구 선생의 중국 망명 시절, 독립운동 동지의 어린 딸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약속장소로 나갔던 일이 아직도 인구(人口)에 회자되고 있다. 당시 안전을 염려해 약속을 만류하는 동지들에게 김구 선생은 “지키지 못할 약속이면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그 약속을 성실히 이행했다.

이미 맺은 약속은 반드시 성실한 행위로 보응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후세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4대강 사업을 시행하는 수자원공사는 공기업의 위상을 위해서도 합의서의 결론 도달에 앞서 각서 약속을 먼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각서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합의서에 대해서는 원칙을 강조하는 공기업의 이중적 행태는 더 큰 파장과 혼란을 몰고 올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