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만큼 불안정한 시점의 북한을 관리하는데 긴요한 인물은 없다.

북한이라는 폐쇄적 봉건적 세습 독재국가에서 선택 당하지 못한 불운의 장남, 쫓기는 유랑자, 그의 어깨에 언제든 평양으로부터 암살당할 수 있지 않을까?란 비극적 드라마의 싸아한 냄세마저 짙게 베어져 있는 듯하다.

“어차피 이런 상황이라면 즐기는 수밖에요” 그는 자신의 삶의 방법을 이젠 터득했다.

과연 그럴까?

김정남은 잊을 만하면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과잉연결시대의 전자액정과 화면들에 시선을 뺏기고 있다. 그는 불쑥 불쑥 그 속에 나타나 무언가를 얘기한다.

김정일의 급서로 북한은 더욱 불확실한 안개로 덮인 불안정한 상태다.

잊혀져가던 김정남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그를 더욱 운명적 방랑자로 처연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김정남은 북한의 누구보다도 아직은 안전할 것이다.

어쩌면 실질적 권력을 쥔 김정은보다도 훨씬 더. 물론 얼마간은.

김정남은 북한을 관리해야 하는 열강의, 그리고 이미 북한 내 권력의 중심에서 가장 중요한 조언자들에게도 그는 가장 긴요한 검(劒)날과 같은 위치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김정남은 북한 안에서도 밖에서도 보이지 않는 특별보호를 이미 받고 있는 것이다.

김정남은 언제나 개혁 개방을 얘기한다. 그의 말대로 김정일에게도 그것을 주장하다가 후계자에서 밀려났다는 그의 말은 일부 맞을 것이다.

김정남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현재 김정은은 상징적인(김일성과 모습이 비슷하다는 한가지 이유) 존재에 불과하며 기존 파워 엘리트 들이 북한 정권을 주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남은 본류에서 소외된 자신의 지친 외로움과 분노를 억제하며 현재의 권력 중심인 이복동생 김정은에게 호소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형으로서 동생 김정은에게 협력하고자 한다. 어디까지나 동생이 원하는 경우에 말이죠 ...그 도움도 자신은 해외에서라는 조건을 달고 싶다“라고.

그가 가끔씩 서방 언론에 말하는 생각은 물론 틀리지 않을 것이다.

“북조선은 내부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 한국에 포격을 가한 것처럼 군사 권력이 커질 것이며 후계자 구도가 실패하면 반드시 군이 실권을 잡을 것이다.”

그러면서 김정남은 남북, 혹은 북미의 대화의 실마리가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북한은 가장 원하고 있을 것이고 한국이 대화의 물꼬를 터주면 북한에도 군 보다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입지가 좀 더 강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러니 “북조선을 계속 몰아붙이면 군사적 도발을 원하는 북조선의 강경파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만 초래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으며 북한도 한반도 평화정착문제, 경제 재건방안 등에 관심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이 혼란의 시점에서 개혁개방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런 그를 보면 김정남은 이미 북한의 가장 비중있는 외교관이다.

북한으로서는 김정남의 이런 말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 여지까지 주면서다. 김정일 급서 이후 더욱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군대를 독려하는 김정은 체제 굳히기로 강성일변도인 북한 지도부로서는 자존심을 세우고, 때에 따라서는 그냥 김정남 혼자 떠드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릴 여유도 줄 수 있다.

지금 북한으로서는 이런 김정남의 존재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터뜨리는 그의 출몰과 발언들이 전혀 나쁘지 않다.

북한의 권력 중심에 서 있는 김경희와 장성택 부부에게는 더욱 그렇다.

김정남을 보호하고 있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에 있어 김정남은, 이미 청년기의 아들이 서방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김정남의 온전한 일가족은 살아있는 그 존재감 자체만으로도 김정은 체제와 북한을 다루는데 가장 효과적인 인물이다.

물론 정통적 김일성의 아들이고 김정일의 동생인 김평일 가족 보호 역시 다른 열강의 위치에서는 마찬가지다.

북한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또한 주변국들과 복잡하게 얽힌 완고한 권력 집단에서, 더구나 물러설 수 없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또한 첨예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열강들은 결코 하나에 ‘올 인’하지 않는다. 차선(次善)과 차 차선 정도는 준비하지 않겠는가.

패권(覇權)의 속성일 것이다. 끊임없이 갈등을 부추기고, 보이지 않게 은근히 대립관계를 형성시키고 서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분단의 한반도, 남과 북도 어쩌면 그런 구도 속에서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의미의 정전(停戰) 60년을 이렇게 견디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러면서 주변국들은 지금은 시간을 벌어야 한다. 2012년은 중국도, 미국도, 러시아도, 한국도 모두 일대 변환의 시기다. 그 동안 북한은 김정은 체제를 더욱 강성하게 굳혀갈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국 누구도 북한의 핵을 정리시키고 북한이 서서히 아주 점진적으로나마 경제적으로 개혁 개방해서 북한 주민들의 삶이 더욱 안정되고 인간적 존엄성이 존중될 수 있기를 바라는데 이의가 없다. 아사와 경제적 가난으로 벼랑 끝의 북한이 끝없이 위험의 요소만 키워 가고 있는 것을 이제는 중국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정남의 설명이 아니라도, 김정일 급서후인 지금 당장은 가장 예민한 시기여서 지금의 북한은 개혁 개방에 금방 나설 수 없을 것이라는 부분을 중국도 미국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북한의 급격한 개혁 개방은 군부와 충돌된다.

그들이 지난 60년간 지속해온 선군정치는 , 북한의 군부를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었고, 그동안 약화된 점이 있다하더라도 현재의 북한에서 그 강성해진 군부의 중요성이 퇴락될 수 있고, 소외될 수 있는 경제적 개혁개방이라는 부분과는 당장 가장 직접적으로 대척점에 놓이게 되는 위험한 충돌의 뇌관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김정은이나 북한 외화벌이의 총 책임자였던 경제통 장성택이 속으로는 설령 개혁개방을 당장 하고 싶어도 못하는 그들 나름의 이유일 것이다.

김정남은 그런 북한을 점진적으로 이끌어 내는 하나의 나팔수 역할을 맡고 있다.

구도 상 배신과 암살의 예측까지 운명적으로 달게 된 쓸모없고도 처참한 비운(悲運)의 역할이지만 그의 존재는 실은 그렇게 가볍지도 쓸모없지도 않을 수 있다.

외부의 열강은 김정남의 존재감을 김정은에 대한 경고적 양 날의 검으로도 쓸 수 있고, 북한 내의 상당한 권력중심인 장성택 김경희 부부에게도 김정남의 존재는, 같은 조카인 김정은으로부터도 자신들의 입지는 물론 권력 중심의 확고함을 지속시키고 ,어떤 경우에라도, 심지어는 김정은이 북한의 실질적 지도자로 강화된 이후까지도, 살아있는 김정남의 존재는 장성택 부부에게 조카 김정은으로부터도 자신들의 존재와 위치와 생명까지도 지킬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보호막이 될 수 있다.

더구나 김정남은 북한의 해외 자산과 외화벌이에서 김정일도 인정할 정도의 상당한 위치로 깊숙이 실제적 관계와 길을 다 알고 관여해 왔음을 북한 외부에서는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장성택과는 그런 부분에서도 더욱 긴밀할 것이다.

북한이 지금 강성(强性)으로 나가고 있는 것은 그들로서는 그 길 밖에 현재로는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김정남이 외부에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비롯 외부와의 대화와 경제적 발전에도 관심이 있다는 얘기다.

그것을 김정남은 외부의 시각으로, 비판적이지만 설득력을 가지고 서방세계에, 그리고 북한 군부를 비롯한 권력지도층에게 이해 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나타나 그가 하고 있는 그런 모든 언행들은 김정남의 생각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의 존재감을 북한지도부에 대한 경고로 가끔씩 상기 시키면서 쓰려는 부분의 다른 외부 강력한 장치가 작동되는 시기가 아닐까?

그리고 북한은 북한 나름대로 북한이 곧 김정은이고 김정은이 곧 북한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체제안정을 할 때까지는 북한도 아직은 시간을 벌고 동북아 주변국들도 변혁의 계절에서 좀 더 각 각 안정이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공통된 시점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의 존재와 출몰과 그에 대해 쏠리는 관심들을 따라가 보면 각각의 필요에 따른 여러 가지 의미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반도 긴장의 상태에서 아주 미약하나마 잠시 열을 식히는 부분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는 그의 생각 속에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실제로 원하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 그런 부분은 서방세계에 북한을 설득시키는 중요한 일익을, 또한 그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비롯한 북한 권력 내부에 그가 중간지점에서 상당부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자신도 그렇게는 생각하거나 의도하지는 않아 보이지만, 김정남이 김정은을 대신해서 언젠가는 북한의 권력중심에 쉽사리 설 수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은 그렇게 해야 가족을 , 자신을 보호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는 일이 생긴다면, 북한 군부가 다시 김정남을 데려와서 권력 중심에 앉히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김정남과 그의 가족에 대한 지금까지의 보호를 해 오던 곳에서도 그리 쉽사리 김정남에 대한 보호를 포기 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느 시기까지는 .

왜냐하면 그들 가족은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도, 중국에도, 북한에도, 다 효과 있는 가장 날카롭게 번득이는 검(劒)날이자, 또한 결코 누구도 쉽게 급조할 수 없는 혈연성까지, 어떤 의미에서는 거의 환상적일 정도로 꽤 괜찮은 북한의 ‘쇼 케이스’ 이기 때문이다.

갈등과, 긴장과, 은밀한 시도의 인맥과 플롯과 , 거기에 더없이 비정한 암살까지 안개처럼 암시하는 비운과, 그리고 무엇보다 어딘가에 복병처럼 숨겨져 있던 반전의 절정이 어느 순간 허를 찌르며 폭발할 듯한 비극적 드라마가 희극적인 그의 모습 속에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는 걸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고, 이제는 운명에 순응하면서 터득할 수밖에 없어 스스로도 즐기기로 한 그 역할에 충실하고 싶어 한다. 지금은 북한의 새로운 권력자인 동생 김정은이 그 정도의 삶이라도 인정해 주길 바라면서.

세계 속의 유일한 분단지역인 한반도, 60년간 아슬아슬한 휴전이 계속되는 이곳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 핵을 머리위에 둔 채. 그런데 우리는 김정남의 말처럼 결코 즐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