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인터뷰
김 찬 수
(인혁당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
최근 박전대통령 사망 20주기를 맞아 기념관 문제와 함께 재평가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JUST에서도 보다 포괄적인 접근을 위해 다양한 특집을 마련중이다. 그 일환으로 현재 인혁당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김찬수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시도해 보았다.박정희군사정권의 피해자는 전 국민이겠으나, 가장 상징적인 사건의 하나였던 인혁당사건을 조망해 봄으로서 그 일단을 살펴볼까 하는 의도로 본 인터뷰는 기획되었다.
위원장직을 맡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 '세칭' 인혁당 재건단체 사건(1964년 인혁당 사건을 1차 사건, 74년 인혁당재건단체사건을 통칭 2차 인혁당사건이라고 함.)의 중심인물과 관련자의 대부분이 대구지역을 터전으로 활동을 펼쳤던 분들 입니다. 물론 활동의 내용은 전국적 범위에 있었습니다. 89년부터 대구지역에서는 대중적인 추모행사를 개최하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문제를 제기해 왔었습니다.
98년 김대중정권이 출범하고 인혁당 사건의 진상규명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위해 전국단위의 "인혁당 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공동대표:이돈명 변호사, 문정현 신부)를 구성하였고, 사건의 발생지인 대구지역에서도 "인혁당 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혁당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은 독재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살해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통해 말살된 인권을 회복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며, 희생자들이 추구한 삶의 지향과 실천활동의 실체를 규명함으로써 민족민중운동의 역사적 흐름을 확인하고 운동의 참된 지향을 세워내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역연대전선운동에 오래 참여한 것을 계기로 관련자들이나 유가족들의 맺인 한과 바램을 많이 이해하게 된 점과 추모행사를 계속 추진해 왔던 한 주체였던 점이 특위위원장을 맡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 79년 대학에 입학하여 민속문화연구회(탈춤반) 활동을 하면서 민족과 민중의 현실에 눈뜨게 되었고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실천운동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82년 학내시위 관련으로 첫 징역을 살게 돼 경북대에서 제적되었으며, 84년 '자율화 조치'로 복학하여 학원민주화추진위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다 두 번째 제적되었습니다.
그 뒤 노동운동에 투신, 88년까지 공장생활을 했지요. 88년 대구지역에서 공개적 노동운동단체인 대구노동자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대구노동운동단체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 집행위원장을 맡았으며, 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심판투쟁을 하다가 구속되어 두번째 감옥을 살았습니다. 결혼은 함께 활동하던 동지인 박영아씨(구미노동자의집 대표)와 89년에 했고 8살 된 아들이 있습니다.
그간 여러차례의 옥고를 치르시면서도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에 헌신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감옥에 계실 때 인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으리라 생각되는데요. 한국의 인권상황은 어떠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울러 인혁당사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 운동을 해 오면서 우리운동의 뿌리라 할까 아니면 앞서 활동하신 선배님들의 활동상이라할까 이런 문제에 자연스레 관심이 있었고, 그 속에서 인혁당 사건이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가 왔습니다. 그 선배들은 60년이후 남한 민족민중운동의 실제적인 흐름을 대표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한 분들의 삶과 실천활동을 역사속에서 올바로 세워내는 것은 후배들의 도리이자 시대적 과제라 생각합니다.
감옥살이는 다 보태도 3년도 안되는 짧은 징역(징역용어로 '장기수들이 오줌누는 시간' 도 안되는)을 산 저가 감옥생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사실 일제의 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감옥입니다.
감옥은 또한 사회의 축소판이지요. 돈깨나 있고 주먹깨나 쓰는 놈들은 징역살이도 그 만큼 편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다같은 징역이라도 곱으로 고생하는 곳이 감옥이니 감옥 밖과 다를게 없죠. 인권문제요?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으나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고, 특히 인권의 기본개념 "인간의 존엄과 기본적 권리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제약될 수 없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분명히 자리잡히고 그러한 법.제도적 장치 마련되기 전까지는 인권의 문제는 항상 현실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인혁당사건이 일어난 지 20여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요. 사건의 구체적 개요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1975년 4월 9일은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법학자협회가 명명한 '사법사상 암흑의 날' 입니다. 이날은 바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터무니없이 조작된 '인민혁명당 재건단체' 사건 관련으로 도예종씨등 8명이 긴급조치 1,4호, 국가보안법,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사형확정이 된 지 하루만에 사형이 집행된 날입니다.
인혁당 사건은 1964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굴욕적인 한일 회담으로 야기된 6.3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그 해 8월 14일 중앙정보부는 고문으로 소위 제1차 인혁당 사건을 조작했습니다. 그러나 검찰 조사과정에서 이 사건이 고문을 통한 조작임이 밝혀지자 검찰이 기소를 거부하고 사표를 제출하는 사법파동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중앙정보부는 검찰총장에게 압력을 가하여 구속마감일에 기소장을 발부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후 재판과정에서 관련자의 대부분이 무죄를 선고 받았고 소위 주모자 조차도 인혁당과 무관하게 실형을 받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어 10년이 지난 1974년, 학생들의 반유신 저항에 대처하기 위해 박정희 군사정권은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이하 민청학련)을 조작하고 그 배후라는 이유로 인혁당 관련자 23명을 다시 체포했습니다. 그들은 중앙정보부 말실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하여 탈장이나 의식불명에 빠지기도 했으며, 결국 고문에 의해 조작된 피의자 조서만으로 5월 27일 기소되었습니다. 군사법원은 재판에서, 완벽한 조작을 위해 피의자들의 법정 진술을 변조, 날조했고, 동년 6월 15일 보통군법회의 제1심 재판이후 10개월 만에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져, 그 중 8명은 상고 기각 19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이것이 세칭 '인혁당 재건단체사건'(2차 인혁당 사건)입니다.
인혁당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인혁당 재건단체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영구집권 음모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닥칠 국민의 저항을 짓밟기 위해 만들어낸 사건이며 중앙정보부의 비밀공작 수사에 의해 조작된 사건입니다. 중앙정보부의 고문수사에 의해 날조.조작된 사건의 진술조서는 원천 무효입니다. 또한 법정 피고인들이 폭압적이고 위협적인 수사과정과는 다르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법정공판의 내용이 조작되었으며 증인채택 및 변론권 박탈 등 재판과정의 폭력성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구속에서 사형까지 1년여 기간동안 가족과의 면회는 일체 금지되었으며 서신조차 불허되었습니다. 게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즉결처형식의 사형집행, 유언조작, 시신탈취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원인무효의 조작사건입니다. 그러나 더욱 문제인 것은 25년 된 지금까지 사건의 가해자는 권좌에 있고(김종필 당시 총리, 당시 사건조작의 총지휘자인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현 경북관광개발공사 사장))피해 당사자인 유가족과 관련자들은 '빨갱이'의 누명을 쓰고 25년간 가슴에 맺힌 한을 풀지 못한 채 숨죽여 지내왔다는 것입니다. 즉 사건의 진실규명과 역사적으로 올바른 자리매김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자 현재적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박정희기념관 건립문제가 많이 논의되고 있고, 정부에서는 국고지원을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한마디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행위라 하겠습니다. 해방이후 우리 민족은 일제잔재의 청산은 커녕 식민지 시대를 계승한 분단조국의 질곡으로 인해 수많은 민중과 민주애국인사들이 민주와 통일의 제단에 피와 땀을 바쳐온 역사입니다. 특히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로 얼룩진 박정희 집권시절은 이를 더욱 고착화하고 강화한 시기였습니다.
오늘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민족자주와 민주주의의 실현, 평화와 번영의 통일 조국건설의 과제는 박정희 정권의 냉전.반공이데올로기에 편승한 폭압적 통치에 의해 왜곡되고, 굴절되었던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박정희씨는 일제로부터 배운 군국주의적 군사문화를 우리사회에 심어놓은 장본인입니다. 특히 그가 자행했던 인혁당사건 등 인권탄압에 희생된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생각할 때 기념관 건립은 용납될 수 없는 반역사적 행위입니다.
기념관 건립에 앞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박정희 정권에 의해 탄압받고 희생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올바른 진상규명과 명예회복도 이루어지기 전에 '기념관 건립' 문제를 거론하고, 더구나 '국민의 혈세'인 국고를 지원한다는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봅니다.
아울러 박정희전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작업이 논란속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박정희정권에 대한 평가의 올바른 관점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또한 개인적으로 박정희정권을 평가하신다면?
- 지나온 역사의 평가는 역사적 사실과 과정에 대한 객관적 고찰과 그 시대를 살아온 다수민중의 이해와 염원에 기초하여 평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박정희씨에 대한 평가는 현 김대중 정부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과정에서 왜곡되어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는 그동안 군사독재정권의 연장과 당시 지배세력이 여전히 온존함으로 인해 민주개혁이 진전되지 못하였으며 그로 인해 객관적 사실에 대한 접근조차 봉쇄당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볼 때 박정희 정권의 평가를 위한 현재의 과제는 박정희 정권의 공과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규명하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것에 중심을 두고 접근함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것을 기초로 역사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점에서 박정희 '기념관'이 아니라 '기록관'이 필요하다는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오히려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신문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인터넷 사용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여러가지 사안에 대한 여론형성이 되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오늘날 사회는 '정보화 사회'라고 얘기합니다. 아울러 인터넷등 정보통신을 통한 사회적 정보에 대한 접근이 그 만큼 빨라지고 다양화 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여론형성 등 자주적 참여의 공간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공간을 선도해 나가고 있는 세대들이 무엇보다도 진취적인 젊은층이라는 것도 사회의 진보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인터넷은 소수의 독점이 아닌 민주적 공개, 수직적 일방적 지배.통제가 아니라 수평적 쌍방향적 관계의 형성 등 우리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특권층의 과두적.독점적 지배를 물리치고 대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촉매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정보화의 장점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인간화'라는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가치와 조화.통일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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