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정치공작 사실놓고 저격수 뜨자 당혹
밀입북 사건으로 구속돼 간첩죄로 복역하다 작년 3·1절 특사로 석방된 서경원 전의원과 그의 비서관 방양균씨, 김승훈 신부, 이창복의장 등 시민단체 대표 15명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고문 국회의원 정형근을 심판하는 시민모임 준비위(대표 서경원·약칭 정형근 심판모임)’를 발족식을 가졌다.
이들은 정형근 의원이 안기부에 재직할 때 야당과 인권탄압에 앞장섰고, 이를 정권안보에 악용해온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87년 안기부 대공수사국 단장 시절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를 지시해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말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특히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알게 된 수사기밀을 특정 기자에게 흘리는 방식으로 수사 성과를 홍보해 요직으로 영전했다고 밝혔다.
서 전의원은 “당시 정씨가 직원들을 내보내고 러닝셔츠와 군복바지만 입힌 상태에서 밤 9시 15분부터 새벽 1시 45분까지 맨발 등을 구두를 신은 채 서서 밟고, 주먹으로 머리를 마구 구타했다”며 “이렇게 직접 당한 사람이 10여명이고 모임에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도 20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런 고문은 한달간 잠을 안 재운 상태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그는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김일성에게 친서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사실과 북한에 3번 방북했다고 허위 자백하라며, 마구 폭행해 밥그릇 3그릇 분량으로 피를 토하게 했다고 한다. 또 가혹행위를 일삼는 정의원이 국회에서 민주화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당사 및 지구당사 항의방문과 공직박탈 운동 등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의원이 주장하는 허담으로부터 받은 공작금 5만달러도 “자신이 먼저 달라고 했다”며 “인사치레로 받아 국회의원 활동비로 썼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김일성을 만나 찬양을 한 것이 아니라 남북 상호 군축과 간첩남파 등을 중지해 줄 것을 요청하는 평화적인 활동을 벌였다”고 밝혔다.
당시 서 전의원 비서관인 방양균씨도 “서경원 의원이 북한에 다녀온 사실도 독일 출장관계로 전혀 몰랐는데 안기부 요원이 서 전의원 사진을 보여주며 방북을 설명했다”며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고문을 당하고 있을때 정 의원이 들어와 주먹과 손바닥으로 뺨을 10분간 때려 턱뼈가 부러지는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당시 고문사실을 알리기 위해 변호인 접견을 통해 서울대 이종진 법의학 교수에게 진단을 받아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방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검사에게도 수없이 맞았다고 밝혔다. 수사관이 방씨의 편의를 봐주는 것 같으니까 수사관을 교체하더니 검사가 직접 구타를 했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방씨가 수감중에 고소를 하였으나 담당재판부는 무혐의로 처리하였다. 그는 서의원 방북과 자신이 관련없다고 최후 진술에서 주장, 원래 4년이던 형기가 7년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방씨는 “증거보전신청을 통해 고문을 당했다는 증거는 발뺌을 할 수가 없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대응은 할 수가 없다며 국제법에 따라 전범과 고문 관련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형근 심판모임측은 ▲고문 국회의원 국회 퇴출 ▲고문사건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국가 배상 ▲고문가해자 엄중한 처벌 ▲국제 인권조약에 부응하는 제도적 보완 등의 실현을 위해 국내외 인권단체와 연대해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이 모임은 작년 12월 방씨가 필요성을 제기해 광주전남지역 피해자 모임이 결성되면서 전국 조직의 출범을 눈 앞에 두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지난 11일 당직자 회의가 끝난 다음 기자실에 들러 “김대중 정권의 ‘정형근 죽이기’ 실상을 폭로하겠다”고 흥분했다.
현 정권이 ▲국가정보원(안기부) 내에 ‘정형근 특별 내사팀’을 구성, 미행 도청 및 친·인척 계좌 추적을 했고 ▲집 앞에 사복형사를 상주시켜 출입시간 및 출입자를 체크했으며 ▲자신의 국회 정보위 배정을 거부하는 등 정치보복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경원 간첩사건과 관련해 본의원에게 조사를 받은 일이 있고, 97년 대선전 DJ비자금 폭로도 내가 주도한 것으로 믿어 온갖 방법으로 ‘정형근 죽이기’를 시도해 왔다”고 말했다. 모임 발족은 현정권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며 어떻게 국회의원을 고문했겠느냐고 동정여론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당 주변에서도 “정형근 죽이기 주장은 지나친 과민반응으로 다분히 내년 총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었다. 한나라당 신경식 사무총장은 “간첩행위가 무슨 항일 독립운동인가, 간첩이 고문당했다고 항의하는 나라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나”라고 말해 정 의원의 고립을 경계했다. 공동여당은 고문 논란이 정치공방으로 변질될 우려를 반영, 논평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지난달 16일 대정부 질문에서 정형근 의원이 “현 정부가 좌익을 비호하고 있다”는 발언과 관련, 과거행적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등 강력 대처키로 해 논란이 제기됐던 적이 있다. 이때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현 정권은 인권탄압의 역사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과거 인권탄압에 앞장섰던 정의원의 과거비리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정의원은 92년 총선때 강남을 선거구 홍사덕 의원에 대한 흑색 유인물 사건과 김동길·설훈 후보에 대한 비방 유인물을 살포해 낙선공작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와같이 기술한 내용에 대한 정의원의 대답을 듣고자 기자는 직접 당사를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본지는 정의원측의 반론이 있다면 지면이 열려 있음을 밝힘과 아울러 어떤 범죄자든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은 효력이 없다는 생각이 국민들의 정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또 민의에 의해서 뽑힌 국회의원이라도 과거 공직에서 정치에 개입하고 고문을 자행, 국정을 문란케 했다면 국회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 또한 공통된 정서라고 본다. 이제 정 의원이 모든 의혹들에 대해 직접 밝혀야 자신의 명예도 회복될 것이다.
전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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