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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혀니

이라크 무장테러단체에 의해 살해된 김선일씨는 지난달 31일 납치된 이후부터 무려 22일간이나 죽음의 공포에 떨다 결국 잔혹한 죽음을 맞이했고, 우리정부는 김씨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일한 대응으로 시간을 낭비, 김씨 죽음에 대한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김씨 피랍에서 살해까지 사건의 전말과 정부의 대처, 그리고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혹을 되짚어봤다.

지난달 31일 오후 김씨는 바그다드에서 200여㎞ 떨어진 미군 리브지 캠프에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던 중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라는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됐다.

3일 AP통신은 우리 외교부에 전화를 걸어 “김선일이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실종된 일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전화를 받은 외무관은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무려 19일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시간으로 지난 ２1일 새벽 5시. 알 자지라 방송에 김씨의 절규 장면이 나오면서부터 김씨의 피랍 사실이 공식 발표됐다. 이 테이프에서 이라크 무장단체는 “24시간 내에 한국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인질을 참수하겠다”고 위협했다. AP로부터 전화를 받은 외무관이 최소한의 확인작업이라도 거쳤다면 사정이 달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 허무하게 버려진 것이다.

21일부터 정부는 긴급대책반을 가동하고 주한 중동국가 공관장들에게 인질구출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김씨는 ２2일 오전 ８시~９시 사이에 참혹하게 살해됐고,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두 시간 뒤인 10시. 우리 대책반은 석방교섭을 지원하겠다며 이라크도 아닌 옆 나라 요르단 암만에 도착했다.

김씨가 살해되고 무려 10시간이 지난 22일 저녁7시. 외교부 장관이 알 자지라 방송과 인터뷰를 했고, 국내에는 무장단체의 협상 제한시한을 넘겨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날 밤 10시 외교부는 대통령에게 ‘희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대책은 ‘헛발질’에 불과했다. 불과 30분 뒤에 김씨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노무현 정부의 형편없는 정보력과 협상력을 드러내는 어이없는 순간이었다.

그 후 AP통신은 24일 “지난 3일 AP 서울지국 기자가 외교부에 전화를 해서 김선일이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실종된 일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에 대해 전화를 받은 외교부 직원은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보도했고, 이에 대해 외교부는 “언제, 누구와, 무슨내용으로 전화통화를 했는지 밝히라”며 오히려 역공을 펼쳤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25일. 외교부는 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되자 “자체 조사 결과 외교부 공보관실 외무관 2명이 한국인 외신기자로 추정되는 사람으로부터 한국인 실종 여부에 대해 간단히 문의한 전화를 받은적이 있다”고 시인하면서 “이 사실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외교부의 이 같은 발표에 “선뜻 믿기 어렵다”는 의혹제기와 함께 외교부가 임기응변식 대응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AP통신의 보도가 난 24일부터 보도내용을 부인해왔던 외교부가 감사가 시작된지 하루만에 “사무관 2명이 통화한 사실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게다가 아.중동국 소속이며 외교부의 제일 하위직급인 사무관급 외교관들이 관할 지역의 자국인 피랍여부를 묻는 외신기자의 질문을 상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또, AP로부터 전화를 받고 불과 19일이 지난 21일 김선일씨 피랍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불구, 이 같은 전화를 받았던 직원이 이를 끝까지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외교부 생리상 믿기 힘든 대목이라는 지적이 여러 언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또 외교부는 “담당 사무관은 전화 받은 날짜와 시기, (통화상대가)AP소속사 였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고 질문내용도 기억이 불분명하다”고 진술했다고 밝혔지만, 해당 직원들은 아.중동국 소속으로 이라크 테러 문제를 직접 담당하고 민감하게 반응해야하는 위치에 있다. 또 ‘한국인 피랍’에 관한 문의는 일상적인 질문이 아닌만큼 “기억이 불분명하다”는 대답도 납득하기 어렵다. 외교부가 이 사안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의혹이 지적되고 있는 대목이다.

결국, 외교부 직원의 이 같은 진술이 사실이라면 주업무인 ´자국민보호´에 안일하게 대처한 ´직무유기´에 해당되고, 또는 항간에 불거진 의혹처럼 외교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또 한 번의 파문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혹을 반영하 듯 감사원은 26일 이같은 외교부의 발표내용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AP와의 통화사실을 알고 있는 직원 수가 외교부의 발표보다 더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감사원은 오는 28일부터 본격적인 외교부 현장감사에 들어가는대로 김씨를 심문하는 비디오테이프를 둘러싼 외교부와 AP통신간의 ‘진위공방’에 대해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한편, 감사원의 조사와는 별도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청문회를 포함한 국정조사를 벌여 이번사건과 관련한 모든 의혹사항을 밝혀낼 예정이다.

[윤경원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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