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가 날려버린 1조 8000억원의 비밀
[오마이뉴스] 2005-03-18 13:41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기자] 지난 국정감사에서 재경부가 환율방어를 위해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1조8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음이 밝혀졌다. 민주노동당 심상정의원의 끈질긴 추궁의 결과였다. 외환시장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정부의 역외선물환시장 개입이 사실로 판명된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은 극도로 위험하기 때문에 적절하게 통제되지 않는다면 손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가능성이 항상 있다.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부실화된 대규모 투자회사나 은행이 종종 발생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파생금융시장에 한 나라의 정부가 개입했다가 1조8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국정감사 이전에 아무런 사전적 또는 사후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음은 더욱 경악할 일이다.
1조 8000억원, 재경부 관료의 재량에 의해 허공으로 날아간 돈이라고는 믿기 힘든 거액이다. 그런데 그것이 18조원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며 지금도 또 다른 손실을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는데, 심상정의원이 요구했던 국정조사가 이루어졌다거나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손실액은 더 크다
사실 외환시장 개입에 따른 손실액수는 그보다 훨씬 더 크다. 환율하락을 막기 위해 작년도 재경부가 추가로 사들인 달러액이 400억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작년도 평균 환율이 1달러당 1140원대이고 현재 100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으므로, 이 400억달러에 대한 평가손만 4조원에서 5조원에 달한다. 물론 재경부는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해 개입했는데, 국제금융시장에서 약달러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것을 예견하지 못해 발생한 평가손이다.
이렇게 막대한 손실을 보면서까지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경제학자 사이에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많은 경제학자들이 작년도 재경부의 개입이 과도했다고 여기는 이유는 기존에 유지되어 왔던 일본 엔화 대비 환율마저 무시했기 때문이다. 100엔당 1000원 이하로 떨어지면 수출경쟁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는데, 달러 약세 추세가 명확한 상황에서 엔화와 독립적으로 원화를 방어한 것은 무모했다는 평가인 것이다. 아무튼 그 결과 작년도 한국의 수출은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내수부진으로 인한 불황을 어느 정도 진정시켰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런데 지난 주 재경부는 정례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의 환율하락에 대해 반드시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라며, 내수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니까 재경부는 작년도에 내수에 끼칠 악영향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 무모한 개입을 해 가며 200억 달러 이상의 무역수지 흑자를 추구했던 것이다.
누가 손실을 부담하는가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이러한 재경부의 정책에 따라 경제 구성원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게 된다.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하면 수출업자에게 이익이 되는 반면 수입업자와 소비자에게는 손해를 끼치게 된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경우 연간 무역수지 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만약 1달러당 100원 씩 더 벌었다고 가정하면, 삼성그룹은 무려 2조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은 것과 같다. 반면 비싼 휘발유 가격으로 고통받았던 일반 시민들은 달러당 100원 씩 추가 부담한 것이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인위적인 고환율 유지정책은 라면 사먹는 빈민에게 돈을 걷어 거대 대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경제정책을 집행하는 입장에서 대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일반 소비자가 이 손실에 대한 보상을 적절히 받고 있는가하는 점이며, 이 질문에 대해 정부는 성실히 답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만 막대한 손실을 낸 재경부가 이렇게 피해를 받은 소비자들에게 적절한 해명을 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수출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소비자들의 도움으로 추가적인 수익을 올리게 되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전경련을 필두로 끊임없이 반기업정서 때문에 기업 못해 먹겠다고 투덜거렸을 뿐이다. 그리곤 막대한 수익을 올리자 외국인 주주를 포함하여 주주들과 임직원들만의 잔치를 벌렸을 뿐이다. 분배의 촉진이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아우성 하던 그 어떤 언론에서도 소비자들의 희생을 거론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쩔꼬, 어쩔꼬, 이 불쌍한 백성을...
▲ 홍종학 경원대 교수
파생금융상품 투자로 인한 손실에 대한 국정조사는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여야의 경제통들은 대부분 전직 재경부 출신들이기 때문이다. 수백만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카드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도 하지 않는데, 1조 8000억원의 손실에 대해 국정조사를 하리라고 믿기 힘들다.
그 손실과 평가손은 모두 세금으로 갚아야 하고, 높은 환율로 인한 손해 역시 서민들이 부담해야 할 몫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과연 한국의 소비자들은 재경부의 환율 방어정책을 찬성할까? 이 무서운 진실을 아무도 거론하지 않는 한국적 현실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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