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16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간의 검증공방과 관련, “서로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는 식으로 간다면 이성을 잃어가는 것”이라며 자제를 당부했다. 당내 경선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해 오던 이 전 총재가 이날 강재섭 대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형식을 빌어 ‘빅2’에게 직접 채찍을 들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어서 주목된다.

이 전 총재는 “당내에서 후보 경선이 과열되고 후보들 사이에 검증공방이 격화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경선은 어차피 과열되게 마련이지만 도가 지나쳐 서로 상대방을 이겨야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죽여야 한다는 식으로 간다면 이것은 이성을 잃어 가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선거에서 후보검증은 필요한 것이지만 이성의 한계를 넘어 극한적인 투쟁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모든 후보와 당이 큰 상처를 입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당이 일일이 관여할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각 후보들은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버리는 심정으로 자제해야 한다”며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이 전 총재는 당 검증위원회(위원장 안강민)의 활동과 19일로 예정된 후보검증청문회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검증위가 후보들을 세탁하듯이 검증한다는 것은 검증위가 할 일도 아니고 할 수도 없다”며 “효과적인 조사수단을 갖지 못한 검증위가 어떻게 국민이 원하는 만큼 속 시원하게 진실을 밝혀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검증위 활동이나 후보청문회를 보는 국민의 심정은 속 시원하게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랄 것이며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며 “만일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에는 각 후보들만이 아니라 검증위의 활동에 대해서도 불신감을 갖게 되고 차라리 검찰에 넘겨 확실하게 진실을 밝히라는 요구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증위 스스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 후보들에 대한 검증사항을 신고 받아 관련 후보 측에 내용을 알려주고 이에 대한 해명과 반박자료를 각자 제출해 공개함으로써 국민으로 하여금 평가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보청문회도 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 이 전 총재는 “청문회 개최를 변경할 수 없다면 청문회는 제3자가 후보를 신문하는 자리가 아니라 후보 자신이 국민에게 해명하고 설득하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며 “당 안에서의 지나친 검증공방으로 후보들이 큰 상처를 입는다면 이는 바로 당의 상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당은 외부 특히 정권이나 여권 측으로부터 한나라당 후보들에 대해 제기될 극심한 네거티브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며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막지 못하면 대선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새 대북정책, 한나라당 정체성 포기한 것"

한편, 이 전 총재는 당의 새 대북정책 ‘한반도 평화비전’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그는 “경제적 지원협력을 핵폐기 또는 북한의 개혁개방과 연계시키지 않고 북에 제공하는 내용은 상호주의 원칙을 포기한 것이 분명하다”며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변화는 한나라당의 정체성 뿐 아니라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불씨가 되고 이번에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의 당락을 좌우할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이런 대북정책을 내놓는 한나라당이 과연 정권교체를 주장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잘못된 평화무드에 편승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대선을 목전에 두고 성급하게 추진되는 남북정상회담이나 종전선언, 평화체제논의가 대선의 깜짝쇼로 악용될 수 있으므로 차기 정부에 넘겨야 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