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글을 오래 전 르몽드(Le Monde)지에서 읽었습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후, 아는 분에게 ‘한국인들은 김대중에게 빚이 있다’고 르몽드지의 글을 인용해 드렸더니,
그 분은 ‘아, 그래서 갚아 주었잖아!’하고 응답하더군요. 아마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준 사실을 일컬는 말 같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빚만 잔뜻 남겨 둔 한국경제를 말이지요’하고 응답하였습니다.
오늘 8.15 글쓰기 중 ‘새로운 시작’의 댓글로 로제타님이 ‘우리 영남 사람들은 그 분께 큰 빚이 있다 아잉교..’라고 쓰셨더군요. 이 구절을 읽으니 갑자기 과거의 이 문구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빚을 졌다는 걸까요?’
1. 몇가지 단상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후 침몰하는 한국경제호를 구조하려고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거의 고갈 상태에 있던 외환보유고(저의 기억으로는 37억불)가 1,200억불을 넘어서서 이제 한국은 세계 4대 외환보유국이 되었습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을 시작한 60년대 이후 40년가까이 도입했던 금액을 합친 것 보다는 더 많은 600억달러 이상이 유입되었습니다. 막대한 국채의 발행으로 조성한 공적자금으로 부실덩어리인 금융기관을 회생시켰고, 대기업들의 재무구조는 IMF이전 수준보다도 더 건전화되었습니다. 실업율은 다시 3%대로 낮아졌고, 경제성장율은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높은 실적을 보였습니다.
한가지 더 있지요. 98년이후 정부는 적자재정을 편성하여 경제를 살리는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른바 씨종자까지도 퍼먹은 격입니다. 그런데 이 적자재정을 2002년말 통합재정수지 기준으로 다시 흑자재정으로 돌려 놓은 것입니다. 아마도 향후 재정흑자의 상당부분은 막대하게 조성한 공적자금을 중장기적으로 상환하는 데 사용되어져야 할 것 입니다.
그림자가 없었던 것도 아님니다. IMF 경제위기는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와 소득불평등 지수가 악화되었습니다. 비록 2001년, 2002년들어서면서 그 격차가 조금 완화된 면은 있습니다만, 소득계층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것이지요. 국민의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여 극빈층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하여 수 조원을 지원하였습니다만, 이 법의 보호밖에있는 차상위 빈곤층의 문제는 아직도 해소하지 못하고 부득이 참여정부로 넘겨주게 됩니다.
2000년 6월 15일 남과 북의 정상은 평양에서 합의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중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
사실, 남과 북은 지난 세월 민족의 지상과제인 통일논의를 선점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기울입니다. 군사력증강을 끊임없이 강화시키는 한편, 자신이 주장하는 통일방식이 옳다며 소모적인 홍보전을 치열하게 지속시킴니다. 이로 인하여, 남과 북, 남한내부의 제 세력사이에 긴장과 갈등을 주기적으로 폭팔하게 되고 민족적 에너지는 크게 낭비됩니다.
이 갈등요소 하나만으로도 남한 내부에서 그동안 소모된 최류탄과 화염병의 수가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다행히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서 최류탄과 화염병으로 무장한 채 격투하는 현상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만, 통일방식을 가지고 남과 북이 챔피언 자리를 놓고 다투듯이 선전전을 펼치는 일도 사그라 들게 됩니다. 이 한 구절이 국론의 분열과 낭비를 해소한 것입니다.
2. 후 기
이제는 민족기업이 된 고 정몽헌회장의 현대가 추진하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이 성공과 실패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만일, 남과 북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사업을 성공시킨다면, 저는 유럽연합의 제도화의 단초이며 평화의 출발점이 된 석탄철강공동체(1951년 파리조약: 독, 프, 이, 베네룩스 3국 등 6개국참여)의 단계에 확고하게 들어 선 것으로 평가하겠습니다. 또한 이들 두 사업의 성공은 남북의 평화공존과 협력, 나아가서 평화통일 노정을 ‘불가역적’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요인중의 하나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남북의 평화통일방식은 독일식 흡수통일 방식보다는 유럽연합식 방식에 더 우리에게 적합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세계 2차대전 이전까지도 유럽국가들은 크고 작은 전쟁을 거치지 않고 10년을 넘긴 적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국지적인 분쟁이 완벽하게 해소된 것은 아님니다만, 유럽경제공동체, 유럽연합 그리고 유럽연방으로 발전되면서 유럽대륙은 역사상 최대의 평화적 시기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글 중 ‘유럽’을 ‘남북’으로 대치시켜 읽어 주시기를 권유드리면서 저의 맺는 글로 가름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좋은 의지만 가지고 유럽연합을 세울 수 없으며, 거기에는 반드시 규칙이 필요하다. 우리가 체험했던 비극적인 사건들, 즉 우리가 목격했던 사건들은 우리를 현명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누구가 죽기 마련이며, 우리를 대신할 다른 세대가 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후세에 남기고 싶은 것은 우리와 더불어 사라지게 될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은 아니다. 우리가 후세에 남길 수 있는 것은 제도들이다. 제도의 생명은 인간의 생명보다 훨씬 더 지속적이다. 그리고 잘 정비된 제도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대들의 지혜를 축적하고, 그것을 후세에 전수 할 수 있다.‘
-장 모네(Jean Monnet), 석탄철강공동체 초대위원장, 유럽통합의 아버지로 불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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