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가르치는 게 있다.

모난 돌이 정 맞으니 둥글게 살라는 것 말이다.

이를 가장 잘 실천하는 기특한 늙은이가 있으니 요즈음 굳이 들먹일 만한 인물이라면 반기문과 황우여로 볼 수 있겠다.

문제는 이들처럼 둥글게 사는 것이 남들 눈엔 기회주의로 비쳐 보인다는 것이다.

프로페셔널 경쟁의식이 필요한 때에 아마추어 친선 정서로 처신하듯, 링 위에 올라야 할 선수 처지인데도 관중석에 숨어 있다가 심판 같은 소리를 해대면서 당사자가 아닌 척 뒤로 빠져 있다가, 여차한 순간에 우연히 생기는 부전승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둥글게 살라’는 가르침은 어쩌면 우리의 오래된 문약주의에 기반한 보신술 내지 처세술이 자녀교육관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편과의 타협에 따르는 데는 의리가 수반되지만, 적의 위협에 따르는 데는 배신이 수반된다.

같은 편과의 타협에선 초월한 척하면서 당사자가 아닌 것처럼 피해 있다가, 적의 위협 앞에선 통 큰 타협인 양 수용한다면, 이는 배신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보신주의자들이 이번 국정교과서 국면에 있어서 이중적인 표현을 해대고 있다.

여권임을 감안하여 국정교과서로 하되, 야당의 눈치를 보아 “좌우를 아우르는” 집필진을 구성하겠다는 소리다.

좌우를 아울러?

그게 보신행위 같이 들리지만 곰곰이 씹어보면 참으로 교묘한 배신행위라는 것이다.

그래 언제 무슨 사안에 있어서 우리가 좌우를 아우를 때, 우파입장이 수용된 적이 있던가?

거의 없다. 대부분 좌파입장만 수용되었다!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그럼 우파가 약할 때 좌우합작이 이루어진 역사가 있던가?

거의 없다. 대부분 좌파가 궁지에 몰릴 때 통사정 하든지 억지를 부려서 된 것 밖에 없다.

외국을 봐도 그렇다.

모택동이 자신이 유리할 때 국공합작을 내걸었나? 자신이 불리할 때 내걸었나?

이 부분은 너무나도 잘 알겠기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또한 폴란드 공산당도 국공합작 이후 국민당과 일본군을 싸움 붙여서 기진맥진 했을 때 국민당의 뒤통수 친 모택동과 비슷한 패턴을 보여 주었다.

독소전쟁에서 독일군의 패색이 짙어질 때, 마침 폴란드의 저항조직이 소련군의 후원을 믿고 독일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뤘으나, 스탈린은 일부러 소련군의 전진을 지연시켜서 폴란드 저항조직이 독일군에게 전멸되도록 방치하였고, 독일군이 폴란드 저항조직과의 격전을 치르느라 지쳤을 때 소련군이 밀어닥쳤고, 이때 호응한 것은 이미 독일군에게 전멸 당해버린 저항조직이 아닌 폴란드 내 공산주의 조직이었다.

실컷 남들 싸우게 만들어 진을 빼놓고는 뒤통수치며 등장하여 정권을 접수하는 이들의 수법을 볼 때, 배울 만큼 배웠고 알 만큼 아는 사람이 좌우 아우르기를 주장한다면, 이는 절대적으로 ‘배신’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본다.

교과서 모드는 시장경제질서 입장에서 검인정체제를 채택한 것을 악용하는 데서 불거진 문제이다.

저들이 말하는 다양성이 어쩌고 하는 소리 누가 모르는 것 아니니 가르치려 들지 말라.

교과서 국정화는 자유를 빙자한 반역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자유를 더욱 굳건히 세우기 위한 일시적 비자유를 채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과서 국정화다.

자신들이 강할 땐 코드체제로 나가고, 자신들이 약할 땐 화합모드로 나오는 게 저들이다.

화합을 빙자한 좌우 아우르기는 결과적으로 좌파입장을 수용하고 우파입장을 배제하는 것 밖에 안 된다.

그러므로, 좌우를 아우르는 집필진을 구성하겠다는 소리는 물 타기 같은 배신행위다.

‘보신’행위가 ‘배신’행위로 인되면, 그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것 이상으로, 둥근 돌이 먼저 굴러 떨어지는 것도 생각하기 바란다.

위기의 언덕 위에선 다소 모난 게 더 안전하다.

보신하려면 똑바로 보신하라. 알겠냐! 끝.

<부추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