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칼럼] 권위가 무너진 벌판에 부는 바람
추기경 품 파고든 그때 그들 … 권력 얻으니 권위 부담되나
학생혁명의 물결이 출렁대던 60년대 후반의 이야기입니다. 무장한 샌프란시스코 경찰이 학생 시위대를 뒤쫓아 버클리대학 캠퍼스로 밀려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로버트 니스벳 교수는 몇 자 메모를 적어 두었습니다.
“(대학의) 권위가 한발 물러서면 (경찰) 권력은 몇 걸음 더 앞으로 내딛는다”라는 내용입니다. 라틴 기질의 파리 대학생들은 한층 격렬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연극의 메카인 코미디 프랑세즈의 무대를 점거해 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당대의 지식인 레이몽 아롱은 다음날 피가로지(紙)에서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철부지들이 코미디 프랑세즈의 권위를 짓밟는 데는 5분이면 족하다. 그러나 짓밟혀 깨뜨려진 그 권위에 새살이 돋는 데는 수백, 수천배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롱과 니스벳은 정치의 본질과 권력과 권위의 상관관계를 파고들던 석학입니다. 그런 만큼 권력과 권위와 폭력이 부딪쳐 나뒹구는 순간을 목격한 이들의 발언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있는 셈이지요.
케케묵은 옛일을 다시 꺼내 들먹이는 것은 지금 이곳이 그때 그곳의 몇 대목을 떠올리게 만들어서입니다. 얼마 전 한 좌파 신문의 논설위원이 김수환 추기경을 향해 삿대질을 한 사건말입니다.
사실 추기경의 말 가운데는 좌파(左派) 또는 친정부 언론인이 그냥 넘어가기 힘든 구절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감정적 반미(反美)와 반미친북 노선에 대한 근심,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한 걱정, 행정 선거에 대한 염려, 수도 이전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 등이 그렇습니다.
물론 누구의 말이건 얼마든지 반론은 가능합니다. 그게 열린 사회의 증표이기도 하지요. 걸리는 것은 비판의 논리가 아니라 비판에 동원한 단어와 어법(語法)에서 풍기는 그 어떤 느낌입니다. 그는 추기경이 ‘한국사회에서 노상 원로’로 꼽혀왔고, 그 권위는 ‘언제부터인가 바래가고 있는 명동성당의 상징성 때문’이라고 풀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추기경의 모습은 ‘과대평가된 대목이 많은 데다 그 발언이 민족의 내일에 걸림돌로 불거져 침묵할 수 없다’고 결론짓습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여기 동원된 단어들에서 코미디 프랑세즈의 무대를 짓밟던 60년대 파리 대학생들의 흙투성이 구둣발을 떠올립니다. 추기경은 87년 6월 항쟁 때 그 언론인 연배나 그 아래 또래의 젊은이들을 명동성당의 날갯죽지 아래 품고 어미닭처럼 지켜냈습니다. “그 애들을 잡아가려거든 나를 밟고 지나가시오.” 이 한마디에 군사정권도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서운해할 일이 아닙니다. 쫓길 때는 권위의 품을 파고들다가도, 권력을 얻으면 권력 밖의 독립된 권위가 거추장스러운 법입니다. 혁명한다는 사람은 으레 그렇습니다.
작가 막심 고리키와 바진(巴金)은 러시아와 중국 공산혁명의 최대 응원군이었습니다. 소설을 통해 혁명에 봉사했고, 그들의 소설을 읽은 수백만 젊은이들이 혁명에 뛰어들었습니다. 36년 고리키의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스탈린은 장례행렬의 선두에 서서 고리키의 영구차를 끌었습니다. 최고권력자가 최대 문호(文豪)와 작별하는 그럴듯한 연출이지요. 그러나 훗날 고리키는 스탈린에 의해 독살됐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바진의 운명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루쉰(魯迅)에 버금간다는 명성도 잠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62세에서 72세까지, 문화혁명 기간 내내 우귀(牛鬼)라는 이름표를 단 채 외양간에 갇혀 홍위병들에게 맞고 지냈습니다. “문화혁명 동안 나는 한마리 소였다”는 게 바진의 피맺힌 절규였습니다.
두 작가의 문학적 권위와 명성이 권력자에게 부담스러웠던 것이 불행의 원인이었습니다. 작년 3월 이 정권 출범 이후 첫 번째 청와대 원로 초청 오찬에는 바진을 지옥에 빠뜨렸던 문화혁명을 옹호하던 학자도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추기경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아롱과 니스벳의 말을 되새겨볼 차례입니다.
종교의 권위, 예술의 권위, 대학의 권위, 언론의 권위가 무너진 벌판에는 우중(愚衆)을 앞세운 권력의 바람만 휘몰아친다는 말 말입니다. 벌써 그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강천석·논설주간)
입력 : 2004.02.08 17:5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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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100자평은 총 10건입니다.
오하석(oh9999)
6 0 이유는 간단합니다. 노무현 정권이 좌파정권이기 때문이지요. 개혁입네...뭐네...하지만 좌파정권을 옹호하는 좌파신문의 지랄일 뿐입니다. 그동안 그들을 보듬어주던 추기경의 권위가 이젠 거추장스러워진거죠. 아주 개애같은 새끼들입니다 (02/08/2004 19:06:03)
최영규(cyg0909)
3 0 개망나니 같은 놈들이 우민을 앞세워 지랄발광을 하니 무엇인들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어른들은 귀성세대요 수구으로 매도하는 호로새끼들의 천국이 정상적인 사회입니까? 신구의 조화를 이루어 나라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자들이 자신들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호로새끼 찬양을 부추끼는 한 국민화합과 나라의 발전은 요원할 것입니다. (02/08/2004 19:13:25)
김혜원(noonoo70)
5 2 왈왈.~^^ 정대현 님이야말로 개꼬리 잡으신당.. 강석천님의 이 글이, 님 눈에는 타인의 논리를 비판하는,주장으로 보이시나여?? 제 눈에는 장탄식으로 들리는뎁셔?? 내눈이 뼜나??~ (02/08/2004 18: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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