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에 답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향해 제기된 행정수도 이전 보도 비판에 대해 두 신문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비겁하다. 사명(社名)이 적시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제기된 공개적인 비판 '내용'에 대해 조선일보는 아무런 해명이나 반론을 하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의 대응은, 조선일보의 침묵이 차라리 나아보일 만큼 군색하다. 나열한 구구절절의 변명에 대해 반박하고자 한다.
첫째, 박정희 정권 시대에 자신들이 행정수도 이전을 긍정적으로 보도한 것은 안보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거듭 묻는다. '안보측면을 중시하는 것'과 신문 보도 기사체에서 도저히 등장하기 어려운 엽기적인 칭송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분별력이 없는가.
그 화끈거리는 표현이 단순히 안보상의 이유로 인한 '일시적 협조' 때문이라면, 당시 행정수도 보도에 드러난 비굴에 대해선 뭐라고 해명할 것인가.
동아여, 자기 기록마저 왜곡하는가
동아일보가 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수도 이전을 조목조목 비판(?)했다는 주장 자체가 '동아일보식' 보도다. 이른바 '비판'의 근거로 제시한 사례는, 수도 이전 적극 찬성을 전제로 한 애정 어린 조언과 당부에 불과하다. 오히려 수도 이전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강조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최근의 일방적 흠집 내기, 비판을 위한 비판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국민합의 : (동아 주장) "공청회 통해 민심파악" 시리즈물 게재
(실제 논조) "현대사의 대역사, 지혜 모아야"
- 새 수도가 바로 하나의 역사. 더구나 국운에 직결되는 현대사의 대역사. 국민적
합의나 양해 잊지 말아야
▷비용문제 : (동아 주장) "줄잡아 2조…부담할 능력 있나" 지적
(실제 논조) "방위세 존속시켜 재원 마련을"
- 한시법인 방위세를 다른 형태로 존속시켜 재원을 마련하거나, 브라질리아
건설처럼 도시개발공동채 발행을
▷수도공동화 : (동아 주장) "국토 균형개발 난점 기획기사 통해 짚어"
(실제 논조) "크게 바뀌는 일 따위 생각 못해"
- 서울은 적어도 수백년간 인구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모든 면에서 수위도시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할 것
▷안보대책 : (동아 주장) "국민불안 막을 방안 필요" 사설로 강조
(실제 논조) "화약통 머리맡에 둔 수도 서울의 안보"
-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이 휴전선을 불과 45km 이내에 둔 전방의 한 곳에 몰려…
동아일보가 주장한 '조목조목 비판'은 비판이 아니다. 수도 이전 찬성을 전제로 글의 일부에 언급한 애정 어린 조언과 당부, 점검해 봤으면 하는 문제점 지적이나 아이디어가 고작이다. 이를 두고 비판이라고 주장하는 동아일보 '비판정신'의 실체가 궁금하기만 하다.
이런 반박조차 인정하지 않을 것 같아, 당시 동아일보 보도의 전체 기조를 행까지 계산해 분석해 봤다.
당시(1977.2.11.∼1977.2.19) 동아일보의 관련보도는 총 25건. 모두 합하면 3518행이다. 이 가운데 수도 이전의 당위성이나 필요성을 강조하거나 '홍보'한 문장이 전체 58.2%인 2049행에 달했다. 드라이하게 가치중립적인 내용을 다룬 문장이 26.7%인 938행이었다.
반면 수도 이전 찬성을 대전제로, 점검해 봐야 할 문제점 지적이나 우려요소, 당부나, 대안 등 비(非)긍정적 내용의 문장은 531행이었다. 전체 15.1%에 불과하다.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내용은 한 행도 없었다.
최근 행정수도 이전 관련 보도에서 부정적·비판적 내용이 80.5%에 달하고, 지지나 찬성은커녕 가치중립적 내용이 19.5%에 불과한 수치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둘째, 77년 당시에도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비판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 25건 가운데 수도 이전을 반대한 글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국민의 안보불안 심리를 지적했다고 주장한 사설의 결론은 수도권 팽창과 인구집중을 막고 국가균형을 위해 수도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었다. 사설의 전체 취지도 아니고 중간에 요식으로 언급한 안보불안의 결론도 오히려 서울이 휴전선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내륙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수도권 공동화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전체적인 톤은, 비판이 아니라 오히려 서울시민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부동산값 안정 등을 설득한 것이 주된 기조였다.
△국민합의를 강조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총화' 등 추상적이고 의례적인 당부에 불과했다. 지금과 같은 국민투표 주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용 문제도 마찬가지다. 재원조달상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지금처럼 반대를 위한 비난이 아니라, 성의를 다해 '방위세 존속'이란 대안까지 제시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스스로의 기록조차 왜곡하는 태도다.
'豹變의 眞髓' 확인하고 싶거든 눈을 들어 동아를 보라
180도 다른 77년 보도 2004년 보도
■ 행정수도 건설
▷그때엔 : "과밀비대, 충격요법 아니면 다스릴 수 없어"
- 수도 서울의 과밀 비대는 이제 분명 충격요법이 아니고는 다스릴 수 없는 계제.
집중과 부의 편재는 국가적 균형마저 흔들어 가는 추세. 임시행정수도 구상이 있을
수 없었던 연유나 배경을 더 이상 되돌아 볼 필요 없어
(1977.2.11. 사설)
↓
▷지금은 : "특정기간 국정 위임 받은 정권이 밀어붙이나"
- 수도 이전은 국가의 명운과 장래가 걸린 사안으로 차질이 빚어질 경우 후손들에게
까지 부담. 때문에 특정기간 국정을 위임 받은 정권이 졸속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돼
(2004.6.12. 사설)
■ 국민적 의견수렴
▷그때엔 : "흥분 누를 길 없으나 …"
-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새로운 도시 설계는 '꿈의 도시상'을 실현하는 신기축이라는 점에서 흥분을 누를 길 없으나,(중략) 국민의 총화하는 구상위에서 설계가 이룩되어야…
(1977.2.11. 사설)
↓
▷지금은 : 토론 → 공청회 → 여론조사 → 국민투표 주장
- 심도 있는 토론과 편중되지 않은 공청회 및 신뢰할 수 있는 여론조사는 수도 이전
의 타당성 여부를 검증하는 최소한의 조건. 이런 조건을 충족시킨 뒤 국민투표를
통해 가부를 결정해야만 수도 이전의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어
(2004.6.19. 사설)
■ 대통령 결정
▷그때엔 : "대통령 단안은 인구 안보 고려한 최후 비상수단"
- 대통령의 구상은 여러 가지 의미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단안. 크게 보면 인구소산
(疏散)과 안보에 중점을 둔 '최후의 비상수단'
(1977.2.11. 해설)
- 새 건설 구상을 복안에 둔 박 대통령은 간간이 헬리콥터편으로 살펴보거나 직접
나가 답사하면서 오래전부터 새 수도의 적지를 물색
(1977.2.12. 3면)
↓
▷지금은 : "수도 이전의 정당성 인정받기 어려워"
- 노 대통령으로선 수도 이전이 핵심 대선공약이었고,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됐으
므로 사실상 국민의 동의를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중략) 특별법 통과로
정당성 인정받기 어려워
(2004.6.10. 사설)
■ 서울과밀
▷그때엔 : "연간 46만명 증가, 긴박한 사태"
- 연 평균 46만명, 대전 규모의 인구가 불어나는 실정이고 보면 긴박한 사태임에
틀림없어
(1977.2.11. 해설)
↓
▷지금은 : "인구분산 효과 거의 없이 수도기능만 약화"
- 인구분산 효과 거의 없으면서 수도의 행정 사법 입법 서비스 기능이 통째로 빠져
나감에 따라 도시경쟁력만 약화 주장
(2004.6.15. 3면)
■ 서울의 미래
▷그때엔 : "뉴욕처럼 균형발전 거듭할 것"
- 고도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2, 3차 산업은 여전히 탄력을 유지하며 '워싱턴'과
'뉴욕'처럼 행정수도와 서울은 행정과 금융경제의 이원적인 균형발전을 거듭해 나갈 것
(1977.2.16. 1면)
↓
▷지금은 : "서울의 국제적 브랜드 값은 어찌 될지"
- 행정 사법 입법부가 사라진 '수도 아닌 서울'의 국제적 브랜드 값은 어떻게 될지
따져야. (중략) 알토란 같은 기업들이 무수히 떠난 뒤에 누가 '한국의 실리콘밸리'와
미래도시를 채워줄지
(2004.6.22. 6면)
■ 외국사례
▷그때엔 : "꿈의 도시 브라질리아"
- 브라질리아는 도시계획 및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모든 측면에서 하나의 성공
(1977.2.12. 3면 기획시리즈)
↓
▷지금은 : "내륙개발 외친 브라질 빚에 시달려"
- 브라질 수도 이전의 부작용으로 리우데자네이루의 범죄 증가. 심각한 교통 혼잡,
국가채무 증가 지적
(2004.6.19.4면)
■ 충청권 반응
▷그때엔 : "기대에 부푼 충청, 영호남권"
(1977.2.18. 1면)
↓
▷지금은 : "땅 팔아 빚 갚으려 했는데, 부도 날판"
(2004.7.13. 2면)
셋째, 왜 다른 신문이나 방송의 보도태도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았는지를 따졌다. 자신들의 문제에 다른 언론까지 끌어들이는 행태는 치졸하다. 신문제작은 다른 매체의 눈치를 보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언론의 과거를 물었는가. 이름을 적시하기엔 부적절하다. 두 신문이 지적하는 다른 언론사는 독재시대 오욕과 굴종의 상흔을 씻어 내기 위한 참회의 고통을 마다하지 않았다.
넷째, 행정수도 이전을 대선 전에야 비로소 이슈화 한 것은 한나라당측이 이 문제를 대선 이슈로 쟁점화 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충격적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문제를 한나라당이 쟁점화 했기 때문에 그제서야 이슈화 했다니, 눈을 의심해야 할 일이다.
한나라당과 '내선일체(內鮮一體) 보도'라는 비판에 대해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던 동아가 '내 깨달음은 한나라당'이라고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스스로의 고행의 결과가 아니라 '한나라 도사님'의 죽비 한 방에 놀라 깨달음에 이른 것을 자랑처럼 얘기하는 것은 도덕불감증에 다름 아니다.
다섯째, 동아일보는 스스로 자성의 의미로 몇 차례에 걸쳐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과 비판기사를 게재했다고 항변했다. 말장난일 뿐이다. 수백 건 기사 가운데 양념거리 같은 비판기사 몇 건으로 편파보도의 면피를 할 수 있다면 전 세계 어디에도 왜곡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섯째, 청와대가 언론과의 전쟁으로 국면전환을 노리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동아일보의 행적에 대한 비판이 '전쟁'이라면 수많은 언론인들이 매일 매일 전개하는 '진실 찾기' 노력은 국가와 시민을 상대로 한 전쟁이란 말인가.
자신의 치부를 둘러싼 검증은 부당한 전쟁이고, 자신들이 벌이는 편파적인 공격과 시비는 언론자유라는 논리는 오만이고 독선일 뿐이다.
지난번 지적에 대해 두 신문, 특히 동아일보의 이해가 부족한 듯 하여 비판의 핵심을 요약해 다시 묻고자 한다.
첫째, 찬성과 반대가 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추진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했는지 많은 국민들은 궁금해 하고 있다.
둘째, 구여권 혹은 한나라당이 찬성할 때엔 동조하거나 침묵하면서 유독 참여정부가 같은 사안을 추진할 때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특히 한나라당이나 한나라당 전신인 구여권과의 놀라운 일치를 해명해야 한다.
셋째,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반대 입장이 아니라면 왜 8:2의 편파와 불균형이 지속돼 왔는지를 답변해야 한다. 어느 언론이든 반대 입장은 취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실과 논평은 구분해야 한다. 사설을 통해서야 얼마든지 자사의 입장을 주창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보도에서 특정 정당의 당보를 연상케 하는 편파는 언론의 금도를 넘어선 일이다.
이제 두 신문은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특정정당의 '黨報'라는 오해를 계속 살 것인지, 정도를 걷는 '신문'인지 입장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정당 '黨報'라는 오해를 씻으려면 공정성과 균형성을 지켜야 한다. 시비를 위한 시비는 그만 둬야 한다.
또 '수도 이전'을 반대하려면 과거의 오락가락 행보와 직무유기 보도를 참회해야 한다. 그것이 대전제다. 그 뒤에 사실과 논평을 구분해, 사실보도에서 더 이상 편파를 저질러선 안 된다.
자기 기록에 충실하라.
양정철(국내언론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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