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213 수요일
탈출기 // 나는 부자?
고향마을 중심의 전씨 종친회 점심회식이 정부종합청사 뒤의 현대상선 빌딩의 지하 1층에 있는 ‘경희궁 뷔페’에서 있었다. 숙부, 숙모, 영철조카 내외, 우리 내외, 건유 형님, 하립 형님, 이렇게 여덟 명이 모처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철 조카와 나눈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다.
“이산가족 상봉은 북쪽 상봉희망자 중에서 열성당원 우선으로 만나게 하기 때문에 남쪽에서 아무리 장기간 호소하면서 기다려봤자, 저쪽에서는 친북 성분이 아닌 남쪽 사람에게 상봉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국<대한적십자사 및 이북5도청>이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받은 초기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고 아예 상봉신청을 하지 않은 월남가족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 식사 후, 동네 서점인 ‘신봉문고’에 가서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편집하고 해설한 영미시 영한대역본 ‘생일’을 한 권 사왔다. 9,500원 주고. 내일 문경댁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호주머니에 남은 내 비상금은 10,500원.
책을 산 후 집으로 천천히 걸어오면서 나는
‘이 정도라도 나는 부자’라고 느꼈다.
왜냐 하면, 나에겐 책을 사는 일에 그 누구로부터도 간섭 받지 않아도 좋은 넉넉한 자유가 있고, 또 책을 살 여유 돈도 가끔 주어지니까.
금년 겨울에도 북한에서는 굶어 죽고 얼어 죽을 동포가 수두룩할 것 아닌가! 그런데, 내가 세면대에서 늘 더운 물이 나오는 것이나 겨울의 편한 난방시설을 아무리 미안하게 생각하고, 식당에서 남길 수밖에 없는 반찬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한들 북한 형제자매들에게 그 무슨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할 뿐이다.
북한의 장관급으로 사는 셈이라고 추정되는 내가 북한동포 기준으로 대단한 부자가 아니라고 우긴다면, 정말 나는 염치없는 놈이 될 것이다. 겨우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나는 북한동포들에게 예의를 지키는 셈이다.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부디 올 겨울에는 굶어죽고 얼어죽는 불쌍한 동포가 없거나 극소수이기를 기원한다.
/061213물/www.66and99.com
6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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