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봐도 수신료 강제징수는 물건 강매 행위

일본 NHK와 한국 KBS는 공영방송이란 같은 문패를 달고 있다. 그러나 국민으로부터 받는 신뢰도는 큰 차이가 난다. NHK가 단연 높다. 공영성, 다시 말해 보도의 객관성이나 프로그램의 질이 그만큼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이런 NHK가 KBS를 부러워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수신료 징수 방식이다. KBS는 1994년 10월부터 시청료(가구당 월 2500원)를 전기요금 고지서에 얹어 받고 있다. 꼼짝없이 내야 한다. 2500원이 작은 것 같지만 한 해 징수액이 5300억원에 이른다.

자진 납부 방식을 취하고 있는 NHK의 시청료(월 1345엔, 방문 징수 때는 1395엔) 징수율은 현재 70% 정도다. 징수원을 동원하고 있지만 30%는 안 내고 버틴다는 뜻이다.

그러니 편히 앉아서 수신료를 몽땅 거둬들이는 KBS를 부러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KBS가 시청료를 한꺼번에 60%나 인상하려 하고 있다. 25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리는 인상안이 이미 KBS 이사회를 통과한 상태다. KBS는 올가을 정기국회에서 이걸 관철한다는 목표다. 정반대로 NHK는 시청료를 5~10%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9월 일본 정부에 제출할 ‘5개년 경영 계획’에 이런 내용을 담기로 최근 결정했다.

KBS의 인상 계획에 대해 시청자·학계·시민단체들 사이에는 반대 목소리가 높다. 방송의 편향성과 방만한 경영의 개선 없이 수신료 인상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연주 KBS 사장은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그런 반대는 방송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신료 인상 문제는 물론 논란거리다. 그러나 그 이전에 엄청난 잘못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반(反)시장적 징수 방식을 폐기해야 한다. 파는 사람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선전해도 사는 사람이 안 사겠다면 그만이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은 전적으로 소비자의 권리다. 그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런데 현행 KBS 수신료 징수는 물건을 던져 놓고 무조건 돈을 내라는 식이다. 강매도 이런 강매는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공기업인 KBS가 이런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수신료 징수도 법에 근거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이런 황당한 징수를 용인했고, 힘없고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고분고분 내 왔다. 그랬더니 국민을 더욱 우습게 보고 60%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 TV를 안 본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아이들 공부에 방해된다, 볼 시간이 없다, 볼거리가 없다, TV가 고장 났다 등 이유도 갖가지다. 개중엔 TV가 아예 없는 집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시청료를 징수하는 건 물건을 사지도 않았는데 돈을 뺏어 가는 행위와 다름없다.

무엇보다 요즘은 시청자의 90% 이상이 케이블 TV나 위성방송에 가입해 다양한 방송을 본다. 물론 이들 회사에 가입비를 내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KBS가 수신료를 챙겨갈 명분은 더욱 없다. 케이블 TV나 위성방송과 협상해 거기서 수신료를 받든지 말든지 해야 한다.

강제 징수 방식을 폐기할 경우 KBS는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수신료가 잘 걷히지 않을뿐더러 그걸 받아내기 위해 월급을 주고 징수원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시청자의 주머니를 강제로 털어갈 구실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