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뢰 쏘고 전투 기념탑 간 김정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량강도 혜산시의 보천보전투승리 기념탑을 둘러보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20일 공개했다. 사진공개 때는 촬영날짜를 밝히지 않았으나, 조선중앙통신은 다른 기사를 통해 방문일이 19일임을 알렸다. /조선중앙통신 뉴시스

곤혹스러운 中

천안함 사건의 조사결과가 발표된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은 온통 중국으로 쏠리고 있다. 대북(對北) 영향력을 바탕으로 북핵 6자회담을 주도해 왔고,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갖고 있는 중국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이번 사건에 대한 응징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화난 얼굴로' 베이징을 향해 오고 있는 중이다. 북한인권법을 발의했던 샘 브라운백 미 상원 의원은 21일 "중국의 역할이 몹시 실망스럽다. 당장 북한을 규탄하고, 대북 제재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히라노 히로후미(平野博文) 일본 관방장관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천안함 사건이 중대한 문제라는 인식을 중국 정부도 공유해주기 바란다. 중국도 비난 성명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 논평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강압적이다. 대만 외교부까지 "이번 사건은 아·태지역의 안보와 안정에 긴장과 충격을 조성했다"며 "각 당사자들이 유엔 규정을 준수해 사태를 처리할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중국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중국은 20일 "관련 각국이 냉정하고 자제해야 한다"는 외교부 대변인의 논평을 내놓은 뒤 침묵을 거듭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합당한 반응을 유보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상한 중국'의 모습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장롄구이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20일 환구시보에 "오랫동안 중국은 북한의 인질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다"고 말했을까.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1일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가 중국을 딜레마에 빠뜨렸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북의 소행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의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부인하기 힘든 물증을 갖춘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런 태도는 그대로 유지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명확한 증거와 결과가 나오면서 처지가 복잡해졌다.

계속 '명백한 증거'를 운운하며 북한을 비호하는 것은 G2(주요 2개국)의 일원으로서 국제사회에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당장 오는 24일부터 개막되는 미·중 전략경제대화(SAED)에서 미국은 천안함 사건을 주요 의제로 올려 중국에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20년 가까이 공들여 쌓아온 한·중관계가 크게 훼손될 우려도 있다. 서해상에서 대규모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진행된다면 그 또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북한에 등을 돌리기도 쉽지 않다. 중국은 이달 초 한·미 양국의 거센 비판 속에서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수용했다. 2006년 1차 핵실험, 지난해 2차 핵실험과 그 이후 유엔 제재 참여 등으로 악화된 중·조(中朝·중국과 북한)관계의 복원이 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북 영향력은 중국이 6자회담을 통해 동북아 정세를 주도하려는 힘의 원천이다. 스인홍(時殷弘)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중국이 유엔 제재에 참가한다면 어렵게 회복한 중·조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지도부의 일각에서는 국제사회의 '채찍'(대북 제재)이 북한에 교훈을 주기는커녕 3차 핵실험 등 북한의 더 강한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고민도 하고 있다. '경제 발전에 매진할 수 있는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최고의 전략적 이익으로 치는 중국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의 한 교수는 "한국은 북한과 전쟁을 할 수 있나. 중국도 한국이나 마찬가지의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남·북한 등거리 외교론, 북한 포기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