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 부결이란 성과로 주가가 좀 올랐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지방선거와 보궐선거 그리고 개각이 마무리 된 이참에 박근혜에 대한 앞날을 다시 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원칙을 강조하는 정치인’ 또는 ‘국민과의 신뢰를 목숨처럼 여기는 정치인’ 등 ..... 정치인의 행각에 대해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않고 있는 우리 실정에서 보자면 박근혜는 분명 세종시로 ‘한 건’ 했다.
실제로 평생을 정치계에서 보낸 사람도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란 명성을 얻기 어려웠던 게 우리 정치계의 지난 현실이었고 보면 세종시 수정안 부결 선도로 박근혜는 큰 업적을 하나 남긴 셈이다.
YS나 DJ를 사람들은 ‘약속을 지킨 정치인’ 으로 기억하진 않는다. 그냥 전직 대통령으로 기억할 뿐이다. 단임실천이란 ‘어마어마한 약속’을 지킨 전두환 대통령도, 직선제를 되살린 노태우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박근혜는 세종시 원안고수 한 건 관철로 다른 정치인은 평생을 두고도 이루기 어려웠던 명예를 일순간에 획득했다.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나는 사실 박근혜란 정치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가 정치인으로써 과거에도 약속을 잘 지켰고,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정말로 신뢰를 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본 바도 없고 그런 경험담을 듣거나 확인한 바도 없다(물론 천막당사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그렇다고 박근혜 곁에서 지켜 본 것도 아니어서 단정적으로 박근혜란 정치인의 앞날을 뭐라고 전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세종시 국회표결에서 취한 태도(수정안 부결)가 그의 정치생명에 과연 지금처럼 훈장으로 계속 빛을 발하게 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다.
그같은 의문을 하게 되는 배경은 4대강 사업 재평가 국면 도래로 변절자 신세가 되고 만 야당의 경우에서 확인된다. 4대강 사업만은 결사반대라면서 그 난리를 치던 야당이 선거 끝나고 상황이 바뀌자 갑자기 유화적인 태도로 돌아선 이 국면이 세종시에서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만일 상황이 그렇게 바뀐다면 세종시 원안고수로 이룬 박 전 대표의 위상은 어찌되는가?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세종시 문제는 국회에서 수정안이 부결되고 또 수정안 관철을 주장하던 책임자가 떠나고 했어도 여전히 뇌관이다. 뇌관도 보통 뇌관이 아니고 자칫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무덤이 될 수도 있는 핵폭탄급 뇌관이다. 실제로 세종시로의 행정부 이전이 개시되는 2012년 쯤에 가면 행정부처 이전에 대한 지금의 합의가 새로운 아젠다에 봉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북관계의 진전, 동북아 정세와 교역환경의 변화, 소득구조 변화 그리고 도시중심 사회화 심화(深化) 등의 변화에 따라 국가의 행정수요 구조가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지금까지 지배하고 있던 일반국민들의 행정부처 이전 정서(情緖)에도 자극을 가하게 되어 원안고수가 승리한 것으로 된 지금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국면이 전개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되풀이하는 얘기이지만 국민여론이 지금의 4대강 정서가 변하듯이 돌변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행정부처 이전을 가로막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또 한 둘이 아니다. 우선 당장 큰 문제가 공무원 사회의 저항이다. 공무원들이야 가라면 가겠지만 그 가족들이 못가겠다고 버티면 정부로서는 어떻게 강제할 방법이 없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공무원을 포함해서 대략 1만명 정도가 1차로 이주하게 되는데, 그들 대부분은 세종시로의 이주에 명백한 반대다. 이건 차기 주자를 꿈꾸는 박근혜에겐 큰 부담요인이 아닐 수 없다. 수정안 국회제출 당시에 가졌던 어느 여론조사는 수정안 찬성비율이 52%에 이른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여론층도 큰 부담이다.
세종시로 행정부처 9개 2청 2처의 이전이 시작되는 2012년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박 전 대표가 대선주자를 포기한다면야 관계가 없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이것들은 심각한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플러스 알파 지원도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박근혜로서는 플러스 알파를 그의 의도대로 추진해 갈 수단이 사실은 전무(全無)하다. 당내 의석분포도 그렇고 새로 들어설 김태호 내각도 그리 우호적이질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묵인이나 동조가 없이는 세종시 사업에 절대 필요한 플러스 알파 추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가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플러스 알파가 제대로 지원 안 되는 세종시의 운명은?
한마디로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세종시 원안은 말 그대로 ‘원안’ 일 뿐이다. 원안대로만 추진하면 훌륭한 도시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치인 밖에 없다.
따라서 세종시 사업은 박 전 대표가 집권에 성공하고 국민여론도 지금과 같이 원안고수로 계속 유지된다면 새만금처럼 그럭저럭 굴러라도 가겠지만 사태가 위에서 살펴본 대로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면 세종시는 곧장 박 전 대표의 행보에 최악의 걸림돌 즉 무덤이 될 수도 있다.
2012년에 가면 세종시 원안을 주장하던 정치꾼들은 다 퇴장해 버린 뒤이고 박근혜 혼자만이 남아 잘못 판단한 세종시 원죄를 다 덮어쓸 수가 있다.
자! 만일 사태가 이렇게 된다면 어떡할텐가? 박 전 대표에게 주어진 세종시 사수 훈장이 그때가서도 여전히 광채를 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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