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국회 국방위에서 박진 의원(한나라당)이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5일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미군 없이 한국군 단독방어땐 남침 16일만에 서울 함락">이란 기사에 대해 군사전문가들과 기자들의 반론이 이어지고 있다.
▲ 조선일보 10월5일자 1면
조선일보는 이날 보도한 기사에서 국방부 산하 국방원구원이 지난해 1월부터 4월개월간 실시한 '모의 분석'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한국군이 단독으로 적을 막을 경우 공군력의 지원이 부족하고 정밀한 타격 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북의 장사정포를 무력화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결국 서울 방어선이 16일만에 붕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군사분계선 인근에 전진 배치된 장사정포를 일제히 발사하면 한시간 만에 수도 서울의 3분의 1이 파괴된다"는 박 의원의 주장과 국방부가 밝힌 "최악의 상황에 해당하는 것으로 발생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경우"라는 반론을 함께 전했다.
"6.25 때처럼 무방비로 당하고만 있나"
그러나 이 같은 보도에 대해 군사전문가들은 국방부의 주장처럼 '실현 가능성이 낮은 최악의 시나리오'이며 '군사적 위협'과 '함락'을 동일시한 과장보도라고 비판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북한의 장사정포가 위협적인 것은 맞지만, 이는 6.25 때처럼 남한이 무방비 상태로 있을 때야 가능한 얘기"라고 반박했다. 정 대표는 "북한의 장사정포는 사거리와 파괴력에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적용해도 (함락에 필요한) 전차전력의 경우 북한과 대등하거나 남한이 앞서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장사정포가 위협적이기 위해서는 유효사거리가 서울 반경 내에 있어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강 이북 정도가 최대사거리 내에 들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10월5일자 3면
조선일보는 관련기사에서 휴전선 10km 내에 최대사정거리 60km인 북한의 장사정포 1000여문을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군이 파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정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포탄의 사거리는 물리학적으로 탄두를 작게 만들거나, 탄약을 많이 넣어야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장사정포의 성능은 이 두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정확성과 파괴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대표는 "장사정포가 분당 수천발을 발사하고 사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지만, 조기경보체계만 잘 가동하면 지하철 등을 이용해 대피가 가능하기 때문에 인명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국군의 전방배치 전력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보름만에 서울이 함락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침 3일 전부터 대응할 수 있다"
21세기군사연구소 김진욱 소장은 "최악의 경우에 무슨 일이든 안 일어날 수 있겠는가. 너무나 최악의 구도를 상정한 낭비적인 얘기에 불과하다"며 '위협'과 '함락'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소장은 "한국전쟁 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남침 징후를 3일 전에 알 수 있을 만큼 자체적인 경보체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보름만에 함락한다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는 보도"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어 '조선일보가 이런 보도를 하게된 이유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보수층 독자들에게 신문을 팔기 위한 전략이 아니겠느냐"면서 보수단체들의 대규모 집회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국민들의 안보 불안 조장용"
이 같은 비판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이어졌다. 국방부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매년 국감 때마다 장사정포 위협 문제는 나왔던 얘기다. '모의 분석'이란 것은 일종이 시뮬레이션으로 전력, 화력 등 전시의 모든 상황을 대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수시로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성이 안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에 따르면 '모의 분석'은 일종의 '워게임'으로 합참과 국방연구원을 비록한 한미연합사도 수시로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국방부 등은 전력의 취약점을 보완한다고 한다.
이 기자는 "장사정포는 불특정 지역을 타깃으로 삼기 때문에 위협이 되는 것이지 목표물을 고정시켜놓고 타격하는 것이 아니다"며 "함락을 위해서는 보병, 전차 등 그 밖의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조선일보가 그런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은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을 조장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통일부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 제일 끝 부분을 보도한 것 같다"며 "최근 류근일씨가 다시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것과 젊은 층 보수세력이 결집되는 현상에 노무현 정부식 개혁에 대한 실망감을 결집시키기 위한 전략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가 과거 정권에서 이념 공방에나 사용할 법한 기사를 1면에까지 올린 것은 결과적으로 조선일보 내부의 개혁 목소리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일보 노조는 올해 들어서도 자사의 '우익화'를 경계하는 내부 목소리를 노보를 통해 전하기도 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탄핵과 국가보안법 정국에서 보인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의 극우적 태도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 때문에 소장파 기자들은 월간조선과 자사의 결별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하기도 했다.
또한 이번 보도에는 '언론개혁'과 '국가보안법 폐지' 등에 대한 조선일보의 논조가 지금보다 더 오른쪽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속뜻이 숨겨있을 수 있다. 최근 류근일 전 논설실장이 복귀한 한 축에는 사내 칼럼진 보강의 뜻도 있지만, '진보진영'과 정부여당과의 대립각을 보다 선명하게 하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다는 것이 언론계의 분석이기도 하다. 군사전문가들과 기자들은 바로 이런 조선일보의 태도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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