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처럼 친기업적인 정부도 없다"
경제전문가 민주당 김종인 의원 인터뷰
미디어다음 / 선대인기자/ 사진=김준진기자
“언론 보도 가운데 가장 엉터리 같은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부처럼 친기업적인 정부도 없습니다. 이 정부가 기업에서 요구하는 사항이라면 다 들어주는데 왜 반기업입니까.”
민주당의 대표적인 경제 전문가인 김종인 의원. 그는 14일 미디어다음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를 반기업 성향이라고 평가하는 언론 보도에 관한 질문에 대뜸 이렇게 답했다. 그는 “소액주주 집단소송제도에 대해 기업들이 앙앙대니 정부가 1년도 안 돼 법을 바꿔 시행을 연기하는 식인데 반기업은 무슨 반기업이냐”고 반문했다.
미디어다음은 최근 경기 회복론을 전망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른 가운데 현 경제 상황과 정부 경제정책 등에 대한 견해를 듣기 위해 그를 인터뷰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그의 사무실에서 2시간가량 이뤄진 인터뷰에서 그는 정부정책 등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을 쏟아냈다. 김 의원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90년대초 대통령 경제수석을 지냈고 현 정부 초기 경제부총리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김의원은 현 경제 상황에 대해 “경기가 나빠졌다고 하는데, 잠재성장률만큼 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에 단순히 경기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지금 한국 경제는 구조적인 문제, 즉 성장의 잠재력을 어떻게 늘리느냐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극심한 산업 양극화 및 소득 양극화 현상 등도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의원은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정부 정책이 성장잠재력을 키우고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보다 경기 부양식 처방에 머무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일시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높인다고 카드를 나눠줘서 능력 이상으로 소비하게 해 카드대란이 생겨났다”며 “최근에는 더 이상 가계로부터 능력 이상의 소비를 끌어낼 수도 없으니 정부가 각종 연기금을 동원해 부채를 늘리는 방법으로 경기를 자극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김의원은 이어 ‘친기업적 정책 구조’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한국경제가 성숙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정부 정책결정에 대한 기업들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다”며 “우리 말을 안 들어주면 당신들이 정치적으로 더 어려울 것이라는 기업들의 위협적인 요구에 정부가 용기를 못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기업이 대대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가장 열심히 한다는 미국 사회에서도 본 적이 없다”며 “정부는 기업만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백성 전체를 끌고 가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분배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는 “과거 정부부터 ‘선성장 후분배’를 내세웠지만 어떤 정부도 말만 분배를 외쳤지 후분배를 실시해본 적이 없다”며 “이 정부도 마찬가지다”고 비판했다. “복지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복지가 경제를 저해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후분배는 엄두도 못내게 됐다”는 것.
김의원은 정부정책이 개발주의 시대 패러다임에 아직 머물러 있다며 관료주의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는 구 소련의 몰락과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거론한 뒤 “관료들이 자기 입신만 생각한다. 관료들이 조직에 오래 머물러야 하고 승진해야 하고 더 나은 부서로 갈 생각만 하니 선배들한테 잘 보이는 정책밖에 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외환위기 전에 ‘우리는 태국과는 다르니 외환위기가 안 온다’고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똑같이 정책을 다루는데 새로운 정책이 나올 수가 없다”고도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한국 경제 문제, 경기 문제 아닌 구조적 문제"
"양극화로 갈등구조에 빠지면 경제에도 악영향"
"역대 어떤 정부도 분배해본 적 없어"
-최근 경기 회복 움직임이 보인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는데 우리 경제 체질이 근본적으로 좋아진 것인가. 지금 한국경제가 당면한 문제가 경기의 문제인가, 성장의 문제인가 구분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한국경제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다. 과연 제대로 된 한국경제 인식에 기반해서 정책이 실행되고 있느냐.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4프로 좀 넘는다고 보면 작년 경제 성장률이 4.7프로이므로 잠재성장률은 달성한 것이다. 따라서 경기와 연결시켜 생각할 수 없다. 올해도 4~5프로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잠재성장율 만큼은 성장하는 것이다. 결국 너무 경기에 집착하는 모습은 옳지 않다. 지금 한국 경제는 구조적인 문제, 즉 성장의 잠재력을 어떻게 늘리느냐가 문제다. 그래야 실업 문제도 해결된다. 지금 내수가 줄었으니 경기가 나빠졌다고 하는데, 경제가 잠재성장률만큼 성장했기 때문에 단순히 경기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성장잠재력을 더 늘리는 게 관건이라는 말인가.
성장잠재력이 더 늘어나야 하는데, 실업문제도 해소해야 하고 국제경쟁력도 향상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포텐셜(성장잠재력)이 늘어나고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은 뭔가.
평균적으로 경쟁력 있는 산업구조를 갖고 있느냐를 보면 몇몇 첨단산업쪽만 경쟁력이 있고 일부 산업 부분은 경쟁력이 굉장히 취약하다. 취약한 경제산업 분야는 경제적으로 일정한 보조를 받아서 사는 것 같다. 산업의 양극화 문제 등도 구조적 문제다.
다른 구조적 문제는 소득의 양극화 현상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저소득층 비율이 크게 늘어나고 그동안 중간층이 저소득층으로 전락했다. 저소득층 소득은 거의 안 늘고 상위 그룹의 소득만 늘었다. 최근 경기 좋아졌다고 해도 고소득층 일부의 소득이 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전혀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없다. 이런 게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연관돼 있다.
-사회 양극화가 왜 심화되는가.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체질개선 측면에서 보니 기업경영 쇄신 잘하는 곳은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쟁력 향상되고 이윤이 발생했다. 그런 과정에서 구조조정이랍시고 사람 막 해고하면 성과로 본다. 거기에서 탈락한 사람은 소득원을 잃어버린다. 생산에 종사하는 근로자들도 특정한 기술을 가진 근로자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실직하게 되니 소득 양극화 현상이 생겨난다. 기업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한다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소득 격차를 벌려놓으니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거지.
-양극화 현상은 자본주의 진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양극화현상이 자연스럽다고 하면 경제정책은 필요 없다. 강자 독식이 시장의 원리 아니냐. 그것이 하나의 경제 운용의 기본 목표가 돼버리면 양극화 등 사회적 부작용이 발생한다. 사회 전체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본주의 역사가 반복된다. 89년 냉전체제가 종식되기 전만 해도 사회주의와의 이념적 대립 때문에 사회적 안정이 필요했다. 자본주의에서도 사회적 안정을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양극화 현상을 시정했다. 최근에 와서는 복지 선진국은 경제의 효율을 상실한다고 해서 상당수 국가가 일방적으로 효율만 추구하다 보니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가 갈등구조에 빠지면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의 양극화 상황이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는 정도에 국한되는 건가.
우리는 압축 성장을 해왔다. 과거 정부부터 내세운 게 선성장 후분배였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후분배를 해본 적이 없다. 말만 분배를 외쳤지 분배를 해본 적이 없다. 이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 점에서 국민들이 기대를 많이 했기에 이 정부가 탄생했는데 막상 정권 잡고 나서는 별개의 정책을 추진한다. 선진자본국가에서는 자본주의의 모순점을 시정해서 복지수준을 많이 향상시켰다. 우리는 복지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복지가 경제를 저해한다’고 이야기하니 후분배는 엄두도 못내게 됐다. 하지만 자연의 순환 법칙에 의해 그런 것을 시정해야 한다는 욕구가 앞으로 거세게 나타날 것이다. 지금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런 문제를 해결할 정책적 기술들이 없다.
"정부, 기업들 위협적 요구에 용기 못내"
"현 정부 반기업 성향이라는 건 가장 엉터리같은 보도"
"국민 전체 이끌어야 할 정부, 제 기능 못하고 있어"
-현 정부 들어서도 재벌기업들은 경제적 혜택을 받는데 서민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불충분하다는 비판이 있는데.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본적 방향이 분명해야 한다. 추구할 도구가 명확해야 하는데 막상 시작해보면 기업의 반발도 있고 겁도 나고 하니 못하는 것이지. 그런 정책을 쓰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정부가 겁내는 거지. 밤낮 ‘빵을 키우기 전에 나눠먹을 수 없다’는 흘러간 얘기를 똑같이 하는 거지. 현재 경제정책은 70,80년대와 큰 차이가 없다.
-개발주의 시대 패러다임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건가.
그렇지. 한 가지 과거와 다른 것은 한국경제가 성숙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기업들의 정부 정책결정에 대한 영향력이 너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정부 정책이 기업들에 너무 치우쳐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말을 안 들어주면 당신들이 정치적으로 더 어려울 것이라는 기업들의 위협적인 요구에 정부가 용기를 못 내고 있는 것이지.
-상당수 언론은 이 정부를 반기업 성향이라고 평가하는데.
언론 보도 가운데 가장 엉터리같은 보도라고 생각하는데, 이 정부처럼 친기업적인 정부도 없다. 가장 친기업적인 정부라고 보는데. 이 정부가 기업에서 요구하는 사항이라면 다 수용해서 들어주는데 왜 반기업이냐.
-그런데 ‘반기업 정부’라는 보도가 왜 계속 나오는가.
선거 때는 가난한 사람들의 표가 더 많으니까 가난한 사람 위한 정책과 공약을 내놓는다. 또 처음에는 이 정부가 기업에서 보면 석연치 않은 법도 만들다 보니 ‘반기업’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이다. 과거 정부 비하면 기업들에 훨씬 느슨한 법인데도 정부가 결국 (기업들의 요구에) 순응해 따라간다. 85년까지는 정치세력이 경제세력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때는 정부가 정책을 펴는데 기업이 어떻게 말할 수 없었다. 박정희 시대 때는 훨씬 심했지. 하지만 90년대부터는 경제세력이 정치세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정부가 위치 정립을 못해 외환위기도 겪은 것이다. 내가 75년부터 6차 경제개발계획 끝나면 경제세력이 정치세력을 압도할 것이니 미리 정책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했는데 바꿔지나. 오늘날 경제세력이 정치세력을 압도하고, 사회의 모든 사안을 경제세력이 영향을 미치고 결정하는 단계에 이른 거지.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경제를 중심으로 한 민간영역이 정치세력의 역량을 능가하는 것 아닌가.
미국에서도 경제세력이 커지기는 했지만 정치세력과 경제세력의 구분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 식으로 정부 정책에 기업이 대대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가장 열심히 한다는 미국 사회에서도 본 적이 없다. 이런 것은 일본에서 배워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긍적적이지 않다. 기업의 효율 창조는 좋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만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백성 전체를 조화를 이루며 다 끌고 가면서 질서를 확립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두고 봐라. 소액주주 집단소송제도 1년 전에 만들었다가 기업이 앙앙대니 다시 금방 시행을 연기한다고 1년도 안돼 법을 바꾸는 식인데 반기업은 무슨 반기업이냐.
"기업들, 부동산 장사 할 생각으로 기업도시 참여"
"정부, 개발연대 패러다임 유지하며 경제구조개혁 피해가"
"경제주체 능력 이상으로 성장하려는 건 잘못"
-친기업정책의 표본처럼 시민단체에서 거론하는 것이 기업도시인데 기업도시를 어떻게 평가하나.
기업도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정부 기능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는 느낌을 받는다. 정부가 해나가야 할 일을 정부가 감당 않고 기업에 맡기면 잘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기업은 이윤 없는 곳에 투자하지 않는다. 이윤 나지 않는데 기업도시법 만들었다고 투자할 것 같으냐. (기업들이) 모양 갖추느라고 소규모 투자는 할 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자본주의를 할 자격이 없다.
일본의 도요타시를 봐라. 도요타가 공장을 지은 뒤 공장이 커지고 도요타 종사자가 늘어 자연스레 기업도시가 된 것인데 정부는 기업도시를 단기간에 일률적으로 만들려 한다. 그런데 결국 한다는 게 관광도시부터 하더라. 삼성이나 현대가 본사나 공장을 기업도시로 가져가려 하겠느냐. 결국 손쉽게 골프장이나 콘도 짓고 관광레저도시로 만들려고 하는 게지. 기업가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지옥까지 가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돈벌이가 안 되면 투자를 안 한다. 이윤이 보장돼야 투자하는 거지. 기업도시 만든다는 핑계로 부동산 값 올려 아파트 지어서 이윤 남길 생각 안 하면 기업도시에 참여 안 한다.
-정부는 이 상황을 모르는 것인가, 알면서도 용인하는 것인가.
기술혁신도시라는 것이 처음부터 명분을 찾기 위한 것 아니었나. 신기술이 없는데 밤낮 벤처 육성한다고 벤처 자금 동원해서 김대중정부때 잔뜩 나눠먹은 적 있는데 요즘도 똑같은 일 하고 있는 것 아니냐. 돈이나 잔뜩 동원해서 거품만 만드는 꼴이지.
-정부가 기업할 의욕을 안 주니 기업들은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정부 때문이 아니다. 70년대까지는 규제가 더 심했다. 기업들이 투자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면 뭐든지 한다. 기업들이 밖으로 나간다고 하는데 단순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국내 코스트가 높으니 노동력 싼 곳을 찾아서 가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이 정부 탓을 많이 하는 이유는 뭔가.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나. 경제가 잘 나갈 때는 아무 소리 않다가 경제가 좀 답답해지면 모든 것이 정부 책임이지. 물론 정부가 할 일을 등한시해서 기업환경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걸 정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정부 경제정책이 개발연대식 패러다임을 못 벗어나고 있는 건가.
80년대말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라가야 했다. 86년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가 끝나면 무역이 자유화되고 금융이 자유화되도록 돼 있었다. 우리 정부가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야 했다. 당시에도 양적, 외연적인 팽창만 하면 되는 걸로 생각해 산업의 심화가 안 이뤄졌다. 외부 변화에 제대로 적응 못하면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망할 수밖에 없다. 내가 90년대에 구조조정을 하자고 했다. 당시 재벌들이 자기가 소유하는 기업 어디서 적자가 나는지, 흑자가 나는지도 몰랐다. 하나가 잘 나가면 젖소처럼 다 먹여 살리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되면 자원 배분이 왜곡되니 산업을 심화하고 나머지를 털자고 했다. 구조조정정책을 제안했더니 우리 관료들이 관심도 없고 재벌들은 이해관계에 부딪히니 안 하려고 했다. 그걸 계속 지연시켜왔다. 우루과이라운드 끝나니 국내 기업과 해외기업이 같이 경쟁해야 하는데 경쟁을 이기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90년대 중반까지 계속 옆으로만 팽창했다.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에 전환기를 주기는 했다. 옛날 방식은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인식 전환은 어려운 것 같다. 정부 정책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 외환위기를 겪다보니 금융이 황폐해졌다. 반면 재정은 건전했다. 모든 부담을 금융에 떠맡겼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수습할 때 외채가 1560억불, 그 가운데 단기채가 1200억불이었는데 이자상환 유동성이 부족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공적자금 잔뜩 늘려 수습했다. 금융으로 페인트칠 한 것이다. 처음에는 구조조정한다고 했지만 2년만에 그 말이 없어지고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 문제는 안 다뤘다. 잠재성장률이 4프로 밖에 안 되는 이유가 성장잠재력을 안 늘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조장해 2002년 하반기부터는 완전히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일시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높인다고 카드를 나눠줘서 능력 이상으로 소비하게 했다. 또 90년대 초반 이전에는 기업들이 능력 이상으로 투자하게 해 과잉시설 투자가 생겨나고 과잉 부채가 넘쳐나 은행이 파산 위기에 몰렸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경기 부양을 위해 소비자로 하여금 능력 이상의 소비를 하게 했다. 카드대란이 그렇게 나온 거다. 최근에는 더 이상 능력 이상의 소비를 끌어낼 수도 없으니 정부가 부채를 늘리는 방법으로 경기를 자극하려 한다. 각종 연기금을 써보려 하는 것이다.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미래에 다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인데 결국 능력 이상의 짓을 하려고 하는 거다.
"정책 짜임새 있게 잘하면 부동산 투기 안 일어나"
"정부, 건설경기 활성화 핑계 대며 부동산 투기 조장"
"관료들, 과거 시행착오 계속 반복"
-개발주의식 패러다임의 예를 들어봐달라. 모든 게 과거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경기가 나쁘면 건설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하잖아. 그러다 잘못해 투기 양상을 띠면 투기 잡는다고 난리다. 정책 상호간 조화가 이뤄지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정책의 실패가 나타난 것이 투기다. 정책을 짜임새 있게 잘하면 투기가 안 일어난다.
-최근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문제로 물러났는데.
공직자로서 윤리에 관한 문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공직자들의 감각이 너무 둔하다. 내가 경제수석을 역임하던 시절 2년 가까이 부동산 투기 때문에 자살자들이 잇따랐다. 당시 30대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4800만평을 강제 매각하게 했다. 내가 청와대에서 직접 지휘했다. 내가 양심상 땅을 사고팔았으면 그렇게 못한다. 나는 부동산 투기가 또 한 번 일어나면 한국경제는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부동산 투기가 또 한 번 일어난 것 아니냐.
10여년만에 일어났다. 2002년 가을부터 2003년까지 일어났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건축경기 활성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거품이 일어나면 꺼지기 마련이다. 부동산도 주식도 마찬가지다. 경제 펀드멘털과 상관 없이 가격이 뛰어오르면 거품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도 언젠가는 터진다. 부정적 영향이 커진다. 통화당국이 그 문제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느냐. 지금처럼 이자율이 싸 실질금리가 보장 안 되면 개개인은 밤낮 신문을 들춰보게 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공직자들은 그걸 자제해야 한다.
-우리 경제관료들의 수준이나 능력을 어떻게 보나.
경제관료들이 70년대 경제관료만 못하다 하는데 그건 아니다. 지식수준은 과거 비해 몇 십배 좋아졌다. 옛날에는 경제 공부도 안 한 사람들이 관직에 들어가 기껏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 공부를 하는 정도였다. 과거의 경제는 명령경제였다. 그때는 거의 아무것도 없을 때였다. 기업들도 자본력이 없었기에 정부 하라는 대로 하면 다 되는 시대였다. 일본을 모방해서 다 밀어붙여서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러니 굉장히 효율이 있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소련 경제가 20년대부터 50년대까지 계획경제 시대 때는 가장 효율적인 경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관료들의 총체적 능력에서는 문제가 있다. 밖의 상황은 변했는데 자기는 안 변하려고 하는 게 모순점이다. 글로벌 경제라고 하는데 자기 선배들한테 배운 것밖에 정책 아이디어가 없다. 또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때는 참고 견뎌야 하는데 못 참고 잘못된 과거의 시행착오를 계속 반복한다.
"4대 구조개혁, 흔적만 남아"
"외부 요인 때문에 경제 좋아져도 정책 잘한 것으로 착각"
"대통령이 정부구조개혁 나서야"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공공, 노사, 기업, 금융 등 4대 부문의 구조개혁이 흐지부지됐다는 비판이 있는데.
흔적만 남아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99년 7월에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선언했다. 98년 경제성장률이 -6.7프로였는데 99년에 성장률이 10프로가 넘었다. 당시 이헌재 재경부장관이 ‘대한민국 경제가 신경제 경지에 들어갔다’고 했다. 후임 진념 전 재경부장관은 ‘이제 한국경제는 연착륙만 하면 문제없다’고 했다. 그런데 불과 3주후인 8월말에 경제가 위기상황이라고 했다. 그런 식의 경제 상황인식들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경제가 제2위기에 들어갔으니 공적자금이 60조원 가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4대 개혁을 2001년 2월말까지 완성한다고 했다. 2001년 2월말까지 완성은 무슨 완성이냐. 겨우 지주금융회사 하나 만든 것뿐이었다. 2001년 4월에는 4대개혁의 기반이 갖춰졌다고 했다. 이후 9.11사태가 나니 4대 개혁, 구조조정이라는 말은 쑥 들어가고 경기 침체가 우려된다며 재정을 통해 경기 부양으로 가고 부동산 투기, 카드 소비 등을 막 불러일으켰다. 우리 경제 관료들의 행태가 이런 식이다.
우리가 처음 위기라고 느낀 것이 75년이다. 1차 오일 쇼크 때인데 수출목표를 처음으로 달성 못했다. 나라가 큰일 날판이었는데 중동건설붐 때문에 경제가 살아났다. 또 85년 총외채가 400억불 될 때 애를 낳으면 1000불짜리 빚덩어리라고 난리법석이었다. 환율이 890대 1까지 내렸는데 플라자협정으로 3저 호황이 와서 살아나니까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선진국이다, 채권국가다 막 떠들어댔다. 정부는 해외부동산을 마음대로 사라고 했다. 정부가 정책적 노력을 잘한 것이 아니라 외부적 상황에 의해 경제 성장이 이뤄진 것이다. 작년 세계 경제가 30년만의 최대 호황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 총생산이 4.3프로 정도 늘었다. 한국이 지난해 내수경기가 없어서 난리쳐도 잘한 것처럼 돼 있는데 그것도 세계 호황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경제정책을 잘해서 이게 이뤄진 것처럼 판단하니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책은 솔직해야 한다. 그냥 모양새 갖추고 가식적 언사를 써서는 안 된다. 단기적으로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성적표를 어떻게 보일까 하는데 관료 경제의 모순이 거기에 있다. 관료들이 자기 입신만 생각한다. 소련이라는 거대국가가 왜 망했나. 공산당 엘리트들이 경제 장악하고 움직이다가 망했다. 일본도 10여년 저 난리 친 게 일본 관료들의 안이한 생각 때문이다. 전후 일본 경제 부흥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에 변하려 안 하니 시대에 적응을 못한다. 단순한 경기 문제가 아닌 것을 경기 부양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문제가 커진다. 관료들이 조직에 오래 머물러야 하고 승진해야 하고 더 나은 부서로 갈 생각만 하니 선배들한테 잘 보일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 만나 새로운 용어 들으면 적당히 써먹기만 하지 실제로 하는 건 그대로다. 외환위기 전에 ‘우리는 태국과는 다르니 외환위기가 안 온다’고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똑같이 정책을 다루는데 새로운 정책이 나올 수가 없다.
-정부 구조개혁을 누가 해야 하나.
대통령이 정부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 점을 깨닫지 못하면 방법이 없는 거지. 혁신이라는 것이 변화에 제대로 적응해나가면 된다. 내가 90년 7월에 우루과이라운드 대비한 내용을 점검해보니 아무 것도 해놓은 게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금융만 잘 되면 한국경제는 모두 잘 되는 것처럼 돼 있다. 하지만 금융이 필수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목표로 해야 하는데 부동산으로 돈이 자꾸 가는 데도 계속 저금리를 유지하고 있지 않나.
각 경제주체 모두가 땜질식 처방으로는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구조 개혁을 해야 할 때 땜질식 처방만 하고서는 우리 경제가 정상인 걸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관료들, 국민 편한 개혁은 안 하고 머리 엉뚱한 데 써" "노 대통령, 집값 잡아야 국민과의 숨은 계약 지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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