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도 정치인들의 저술이 점점 왕성해지고 있는 추세인 줄로 압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들의 책을 함부로 사 보지 않습니다. 정치가 저의 제1관심 분야가 아니고, 또 우리 나라에는 저의 아까운 시간을 없애면서까지 그의 저술을 읽어볼 유혹을 느낄 만큼 제가 존경하는 정치인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박대통령을 포함하여 십 명 가까이의 정치인은 제가 존경하고 신뢰하기에 그들의 책은 지니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한 분이 박관용님입니다. 이틀에 걸쳐 읽은 《다시 탄핵이 와도 나는 의사봉을 잡겠다》중에는 인용하고 싶은 문장들이 110여 군데나 체크되어 있습니다. 책 전체의 페이지가 324페이지니까 약 3페이지당 한 군데 정도씩 제가 주목한 문장들이 있는 셈입니다. 대단한 책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제가 남의 책을 평가할 자격이나 능력을 지닌, 이 방면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치인들의 책을 손에 들고 읽을까 말까를 저울질 할 때,
적어도 다음 몇 가지는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1. 이 책을 쓴 사람이 대체로 표준 이상의 인격자(신사)라고 믿어도 좋은가?
2. 남이 책을 낸다고 하니까, 대목 때(주로 선거 철)에 맞추어 덩달아 억지로 낸 것은 아닌가?
3. 문필가를 불러 대필을 시켜 만든 책일까, 직접 쓴 책일까?
4. 얼마나 정직하게 자기 생각을 펼쳐 보였고, 얼마나 거짓과 과장과 속임수가 섞여 있는가?
5. 자기 주장이나 체험의 근거 자료들의 신뢰도가 높은가? 특히 연월일이나 각종 통계 숫자가 정확하고 풍부한가?
대체로 이상과 같다고 봅니다.
위의 1과 2는 책을 읽기 전에도 대강 짐작할 수 있지만,
3, 4, 5는 그 책의 일부나마 읽어보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일부"란,
A. 머리말
B. 차례
C. 책의 본문의 약 1/10인데
1과 2는 A, B로,
3, 4, 5는 C로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 책 본문의 약 1/10(30페이지)도 못되는 겨우 10여 페이지를 읽고 나자, 감탄하였습니다. 그 감탄의 핵심 동기는 이 책에 흘러 넘치는 간절한 호소와 진실성이었습니다.
'나 박관용이는 만사를 제쳐놓고 이 책을 써야만 하리.
하루하루, 한 해 한 해 기울여져가는 것 같은 이 나라를 어찌 그냥 보고만 있으리! 아, 어찌하면 이 나라의 중요한 주춧돌들과 기둥들을 바로 잡아 놓을 수 있을꼬?'
이런 노심초사 끝에 온갖 정성을 쏟아 부은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저는 봅니다.
한 책의 주제는 자주 나오는 단어나 어구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에 자주 나온 단어들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 [ ] 표시는 자주 쓰인 단어
* ( ) 안의 숫자는 해당 단어가 나온 쪽수
* 제69쪽부터 230쪽까지만 체크했음
이처럼 [불안]한 적은 없었다(69)
[정직]한 정치(71)
한반도 민초들의 삶을 감싸고 있는 공기와 물은 처음부터 [거짓말]로 오염되어 있었다(72)
이승만의 [거짓말](73)
[거짓말]의 대열(75)
백성들은 조정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76)
백성의 [신뢰](76)
쉽게 말하고 [쉽게 뒤집고](84)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93)
지난 후 생각해 보니 몹시 [부끄러웠다](99)
우리 국회는 [정직]하지 못했다(103)
[허위]의 왕국 북한(158)
반세기가 넘는 김왕조 통치는 북한 동포들을 [허위]의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165)
[거짓말](165, 166)
[가짜](168, 172, 174)
[진실](169)
[속임수](193)
[신뢰](226, 260, 263)
[허구](228)
[허위]의 동굴, [허위] 의식(230)
저는 이 분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 독립운동사상 백범과 더불어 양대 거물이신 도산 안창호 어른 생각이 났습니다.
도산 어른은 1919년의 기미독립운동 만세 후의 어느 해,
상하이에서,
"거짓이여,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망친 원수로다!
대한동포여! 우리 나라를 망친 것은 우리의 거짓이요, 힘없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독립을 하려면 거짓을 없애야 합니다. 대한동포여, 꿈에라도 거짓이 있었거든 뉘우칩시다."
라고, 고국 동포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독립운동 기본 방향과 방법을 무실역행(務實力行)으로 요약했습니다. "허황된 일에 정신과 물자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알맹이 있는 일에 온갖 힘을 집중하자."가 도산의 뜻이었습니다.
박관용님이 정계에 몸담고 있는 동안 그 얼마나 주변의 거짓에 분통을 터뜨리면서 참고 지냈으며, 이 나라 정치인들이 진실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를 그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행동으로 추구했는가가 이 책의 구석구석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2년간 비서실장으로 모시고 지냈던 김영삼 전대통령의 잘못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문구가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점, 이 점도 박관용님의 인격 값을 매김하는 중요한 키포인트라고 봅니다. 김형욱, 김재규 같은 쓰레기형 배신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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