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학법에 반대하는가...."
기독교계와 사학계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2006년 7월 1일부터 개정사학법이 발효되면서 교계에도 어느 정도 체념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한기총과 사수본을 중심으로 1만 목회자 성명이 발표되고 각종 회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정치권이 여전히 강경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6월 임시국회가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려 9월 정기국회에 희망을 걸어 본다지만 9월까지가 걱정이고 9월 이후에 재개정 될 확률도 높지만은 않다.
열린우리당은 “사학의 민주성과 투명성, 공공성을 제고해 사학의 발전을 도모하겠다”며 사학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일부 사학에서 비리가 터질 때마다 정부는 마치 ‘썩어빠진 사학을 개혁하는 데에는 오로지 개정사학법만이 만병통치약’인양 홍보해 왔다. 그러나 개정사학법 이전에도 각종 감사와 검찰 조사에서 사학의 비리가 폭로되고 견제되어 왔다는 점에서 개정사학법만이 유일무이한 치료약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정치권의 꿀발린 말만 듣지 말고 직접 개정사학법의 조항들을 살펴 본다면 개정사학법에 왜 반대해야 하는지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우선 교계가 가장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개방형 이사 문제다. 전체 이사의 4분의 1 이상은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가 2배수 추천하는 인사 중에서 선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체 이사가 7명이라면 이중 2명은 개방형 이사다. 이사회에서 어떤 안건을 처리할 때 과반수 이상 출석에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면 의결된다. 즉 학교의 중대사안을 처리할 때 개방형 이사들이 아무리 난리법석을 떨어도 5:2이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개정사학법의 단면일 뿐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문제는 자못 심각해진다. 과거에는 ‘학교법인 설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시’ 임원 자격이 취소됐지만 개정법엔 ‘학교 운영에 중대한 장애를 일으켰을 시’ 취소된다. ‘중대한 장애’라는 표현은 해석 여부에 따라 기준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 학내의 작은 분규라도 일부 세력에 의해 부풀려진다면 ‘중대한 장애’로 인식될 수 있다. 임원의 회계부정, 횡령, 뇌물수수는 시정권고 없이 곧장 임원취소가 된다. 임원간의 분쟁도 ‘중대한 장애’가 될 수 있다고 개정사학법은 명시하고 있다.
여하튼 문제가 발생하면 관할청은 즉각 임원을 파면할 수 있고 직권으로 임시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 개정 전 임시이사는 2년 임기에 1년 중임만 가능했다. 학내 문제를 단기간에 수습하고 학교를 정상화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개정사학법에 따르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임시이사가 재임할 수 있으며 임시이사가 파송된 학교는 관할청이 이사회를 소집할 수 있다. 문제 해결 상태를 판단하는 관점에 따라 임시이사는 무제한 임기인 셈이며 관할청이 이사회를 주무를 수 있다. 임시이사가 역할을 다하면 결원된 이사 역시 관할청이 선임한다. 관할청이 파송한 임시이사와 충원이사의 차이는 ‘학교 발전에 상당한 재산을 출연했거나 발전에 기여한 자’라는 점 밖에 없지 정부가 파송한다는 점은 같다. 즉 임시이사 체제가 끝나도 학교는 원상으로 회복될 수 없다.
이쯤되면 대략 스토리보드가 그려진다. 개방형 이사가 들어와서 사학의 비리를 파헤친다. 횡령, 금품수수 등 각종 비리가 발견된다. 학내의 작은 마찰도 마치 큰 사태인 것처럼 부풀린다. 그렇게 되면 임원은 즉시 자격이 취소된다. 이후 학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임시이사를 파송한다. 임시이사가 학교를 접수한다. 임시이사의 역할이 끝나면 정부가 학운위와 평의회의 추천을 받아 이사를 파송해 결원수를 충원한다. 임시이사건 충원이사건 간에 친정부코드 인사임은 뻔하다.
이런 수순대로라면 기독교 학교의 경우, 건학이념 중에 ‘기독교 정신’을 빼는 것쯤은 식은죽 먹기다. 학내 채플 폐쇄는 손바닥 뒤집기다. 여차하면 기독교 사학을 아예 공립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학생 한명이 채플을 반대해도 종교자유 운운하며 난리가 나는 세상인데 이사 한명이 채플을 반대하고 그것을 학내 문제로 끌고 간다면 조용하겠는가? 그러나 기독교계는 반발할 수 없다. 반발하면 개정사학법을 거부한 경우 임원이 취소돼 결국 똑같은 꼴이 된다. 무서운 일이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이 모든 키를 갖고 있는 존재가 개방형 이사다.
너무 과대한 음모이론인가? 그러나 개정사학법이 발효되기 전에도 정부는 이런 방법을 자주 사용해 왔다. 실제로 K대는 몇몇 교수들이 허위로 이사장과 학장의 비리를 고발했다. 학생들까지 선동해 결국 이사장을 쫓아 냈다. 이후 6년에 걸친 긴 재판 끝에 이사장이 누명을 벗고 그 교수들은 폭력, 명예훼손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판결 후 이 무죄한 이사장이 정부에 “이사회 구성권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정부는 “현 교수진과 교육부가 이사회를 구성하겠다”고 전해 왔다. 교수 몇 명이 학내 분규를 조작해도 학교를 빼앗기는 판에 개방형 이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T대의 임시이사들은 건학이념 중 ‘기독교정신’이란 글귀를 아예 삭제해 버렸다. C대는 18년째 임시이사가 버티고 있다.
알다시피 개정사학법은 전교조가 수년에 걸쳐 주장해 온 바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전교조가 과연 사학의 발전과 교육의 향상을 위해서 사학법을 주장했을까? 교사들의 실력을 평가해 보다 좋은 교육을 제공하자는 교원평가제는 목숨 걸고 반대했던 그 전교조가 말이다. 이번 개정사학법엔 노동운동을 한 교사를 해직한다는 조항까지 삭제됐다.
하나하나를 떼놓고 보면 참으로 민주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사학법이지만 전체를 동시에 적용한다면 위험하고 거대한 밑그림이 나타난다. 실제로 몇몇 기독교 대학이 관선이사들에 의해 참담하게 당한 것을 보면 이 그림에 어떤 색깔이 그려질지 심히 우려된다.
209065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