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와 폭격기 소리는 그쳤다. 육지 쪽 구릉을 낮게 날아 넘어오던 '탱크 킬러' A10기의 소름끼치던 기계음도, F15의 굉음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훈련 시작을 알리던 주황색 깃발도 사라졌다.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미 공군 쿠니사격장이 폐쇄된 지 7년. 그러나 정적과 평온을 되찾은 것 같은 미군 반환 공여지 94만9000㎡의 너른 땅은 녹슨 철책으로 둘러쳐져 있고, 20년 가까이 주민 투쟁의 구심점이었던 '매향리주민대책위원회' 팻말도 여전히 붙어 있다. 사격장 폐쇄 뒤 곧 이뤄질 것 같았던 '매향리 평화마을'의 달콤한 청사진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 힘으로 사격장 폐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미 공군은 매향리 농섬 일대를 사격연습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8년에는 매향리 일대 바닷가 땅에 기총사격장이 신설돼 2005년 폐쇄될 때까지 동북아 최대 규모의 미공군 전용 사격장으로 사용됐다. 오키나와, 괌은 물론 태국과 태평양의 항공모함에서 날아온 미 공군기들은 하루 평균 300여 차례, 팀스피리트 같은 대규모 훈련 때는 하루 700회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폭격과 사격훈련을 했다. 매향리와 인근 9개 마을 주민들은 그렇게 54년을 일상생활조차 하기 힘든 100데시벨 이상의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1988년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대규모 항의 시위를 시작했고, 17년을 끈 주민 투쟁은 2005년 8월 '쿠니사격장 폐쇄'로 결실을 맺었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난 2월 2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경기도 반환기지 민자유치 활성화 방안' 심포지움에서 미군 반환 공여지에 관한 정부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면서 "수십년간 국가안보를 위해 희생한 국민들에게 정부가 땅장사를 해서야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용산특별법을 통해 국가가 전액 국비 지원을 하는 서울의 용산미군기지와 달리 미군 반환 공여지의 80%가 들어서 있는 경기도는 전액 지자체 부담으로 개발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나온 얘기다. 민간 투자를 위해 연 이날 심포지움에서도 민간 기업들은 "토지 소유주는 국방부, 각종 규제는 국토부, 발전 계획은 행안부에서 수립하는 등 조세 감면이나 인·허가 절차에서 아무런 인센티브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책적인 발상 전환 없이는 투자할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곧 이뤄질 것 같았던 개발 계획은 천문학적인 개발비용으로 인해 사실상 중단되다시피 한 상태다.

◇정부의 발상 전환 있어야

매향리 땅의 현재 감정가는 3.3㎡당 30만원. 토지매입비만 1100억원이 넘는다. 화성시와 주민들은 "수십년 전 강제 수용하다시피 해 폭격훈련장으로 쓴 땅을 현재의 감정가로 팔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입장이지만 부지 매각비용으로 평택 미군기지 사업비를 충당하려는 국방부와의 협의는 제자리걸음이다. 국방부 역시 '평택특별법'에 따라 반환 미군기지를 팔아 평택 미군기지 건설비용으로 충당해야 하는 처지라 법 개정 없이는 입장을 바꿀 처지가 아니다.

이 때문에 2007년 미군이 쿠니사격장 부지를 국방부에 반환한 뒤 평화공원 조성을 골자로 한 반환부지 개발 방안은 그 완공시기를 2013년에서 2015년, 다시 2017년으로 미뤄졌지만 그나마 계획일 뿐 언제 개발이 시작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지난해 10월 성명을 내고 "중앙정부가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사업을 직접 수립, 추진하라"고 반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육지뿐 아니라 매향리 앞 농섬 주변 갯벌과 바다도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출입 금지 구역'이다. 농섬 주변 반경 500m는 여전히 국방부 소유로 '위험하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고 화성시로 소유권이 넘어온 바깥 해역과 갯벌도 먹거리에 대한 안전성과 불발탄 위협 등으로 화성시는 주민들이 바라는 '어장 면허'를 내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진행된 보건환경연구원의 조사결과 어패류는 먹어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최근 결론났지만, 안전성 문제를 둘러싼 시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국방부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지금도 거센 풍랑이 일고 나면 땅속에 묻혀 있던 불발탄과 잔존물이 노출되곤 한다"며 국방부가 바다와 갯벌 일대 환경 정화사업을 해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결국 지난해부터 국방부가 조사 용역을 진행 중이지만, 매향리 바다가 언제쯤 주민들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매향리 주민들은 "매향리는 서울과 차별되는 경기도 내 미군 반환 공여지 중에서도 이중 차별을 받고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만규 매향리 주민대책위원장은 "몇몇 지역은 기지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왔지만 매향리는 오직 하늘에서 쏟아붓는 폭탄과 전폭기 소음만 보고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미군이 대규모 주둔해 경제적 효과를 누린 적도 없고 오로지 희생만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전 위원장은 "54년간 일방적으로 희생해온 주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무상으로 땅을 넘겨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