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사령관 김정일 장군님의 배려로
기적적으로 살아 나오다

1999년 1월 3일은 내 인생이 새로 시작되는 뜻 깊고도 잊지 못할 날이었다. 온 구역에 모이라는 지시가 떨어져 아침부터 구역 선전실에 모이게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오늘 누구인가 잡혀나가지 않으면 누가 총살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긴장한 마음을 달래며 초조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주석단에 낯모르는 사람들 두 세명이 올라가고 관리소 소장과 정치부장이 나와서 “이제부터 국가안전보위부 조직비서가 우리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달해주겠다”고 하였다. 처음 보는 얼굴인 국가안전보위부 조직비서라는 사람이 앞에 나와서는 “이제부터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 장군님의 배려를 전달하겠다”고 하였다.

죄수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어 서로 두리번거리며 그의 발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이제부터 구역 안에서 자기 죄를 인정하고 노동에 성실하고 사상적으로 개조된 사람은 1년에 한 명씩 퇴소시키겠다”하면서 “이영국이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꿈인지 생시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무대에 올라갔다.

국각안전보위부 조직비서라는 사람은 “이영국은 이제부터 장군님의 배려에 의하여 정치범 수용소에서 퇴소하여 사회의 한사람이 되었다”고 공개하고 “오늘 이시간부터는 죄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주의의 한 조직 성원이 되었다. 너희들도 일을 잘하고 자기 죄를 하루빨리 씻어 사회로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영국동무 할 말을 한마디하시오.”라고 했다.

나는 정말 너무도 어리둥절하여 내가 과연 사회에 나가는 것인지 믿어지지 않았다. 나간다는 말이 두 귀로 분명히 들려오니 나도 모르게 눈물만 주룩주룩 흐르는데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 한마디하라고 재촉하였다. 나는 긴장하여 말을 잘못하면 또 다시 죄를 뒤집어 씌울까봐 간단하게 한마디하였다. “일을 잘하여 다 살아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 설움에 겨워 하염없이 울었다.

그동안 수용소 생활의 장면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가면서 이제야 내가 바라고 바라던 소원을 이루게 되었구나, 고생한 보람이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울면서 자리에 내려와 앉았다. 그때 내 주위 사람들 표정이 어땠는지 나도 너무 경황이 없던 때라 잘 생각이 안 난다. 누구라도 무진장 부러워했으리라. ‘부러움’이 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에게 참으로 미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