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행 민노총 위원장을 추억에서 잠시 끄집어내면서 두서없이 쓰겠다.

나는 2006년 봄 철도파업을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을 떠났다. 몇몇 지기들에게 그날의 참담한 슬픔을 얘기한 적이 있다. 파업대오가 모여 있던 철도 기지창을 뒤로 하고 스물스물 내리는 싸리눈을 맞으며 경찰의 포위망속에 작은 배낭을 메고 철길을 따라 걸어 나왔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결심을 남긴 채...그리고 몇 달을 폐인처럼 보냈다. 어느 정도의 심리적 안정이 느껴지면서 피폐해진 심성을 추스르고, 망가진 건강을 챙겼다. 항상 울려대던 휴대폰이 어느 날 적막에 잠긴다는 것이,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던 내 주변이 어느 날 고요에 잠긴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어제 모 단체에 갔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좌파진영에서 알던 사람을 우연하게 마주쳤다. 반가워하며 여기에는 어쩐 일이냐는 물음에 뉴라이트 사무실에서 잠시 일을 도와주고 있다는 나의 대답이 비수처럼 꽂혔는지 잠시 어정쩡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다가 서로 어색한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돌아서서 가는 내 뒤통수에 꽂히는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좌파 활동가에게서 문자가 왔다. ‘비가 오고 있군. 건강은 어떠신지’라는 문자를 졸린 눈을 비비며 들여다 보는 순간 가슴이 짜하게 쓰라렸다.

처음 우파에 와서 만났던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많은 아픔이 있을거다. 자신을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은 그만한 고통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과거를 돌아보지 마라. 이제는 앞만 보고 당당하게 걸어가면 된다’. 새삼 그 말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우파에 와서 항상 들었던 말이 ‘전향 좌파’라는 생소한 단어였다. 전향.. 참 무서운 말이다. 어렸을 적에 반공드라마였던 ‘113수사본부’를 보면서 전향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대학을 들어가고 20년 가까이 좌파로 살면서 ‘전향 좌파’라는 꼬리가 따라다닐 것을 그 어린시절에 나는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

이석행 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를 나와 잠행에 들어갔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많은 추억이 있는 사람이다. 파업현장에서 서로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수십년 지기를 만난 착각이 들게 할 만큼 친화력이 뛰어났던 사람이었다. 경찰의 수배를 받고 도피생활을 하던 이석행 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민노총 위원장이 아니었다. 합정역 부근에서 으슥한 밤이 깊어갈 때쯤, 이석행 위원장을 반갑게 만났다. 골목의 긴 끝자락에서 웬 사람이 선글라스를 끼고 걸어오는데 한 번에 알아보았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자신의 변장술을 익살스럽게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야밤에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게 변장이라고 보느냐’는 나의 힐난에도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보이던 사람이었다.

이석행 위원장이 감옥을 갔다오고 나서 둘이서 함께 배낭을 메고 일주일가량 전국을 돌아다녔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민노총의 총파업 남발에 대한 걱정과 노사정 복귀를 고민하던 그에게서 조합원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도 위원장이 되면서 ‘총파업’을 선언하고 촛불집회를 주도하다가 또다시 경찰의 수배를 받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포항의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고 가을녁 대천 해수욕장의 백사장을 거닐면서 서로의 고민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항상 건강하게 자라는 두 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말없이 자신을 믿어줘서 고맙다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 전향 좌파라고 불리는 우파 활동가이다. 조계사를 나와 도바리 생활을 해야 하는 이석행 위원장과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비판자로 서 있다. 80만 조합원의 수장인 민노총 위원장과 ‘바닷가에서 함께 웃으며 민노총의 미래를 걱정하던 이석행’의 간극을 나는 얼마든지 이해한다. 노사정 복귀와 사회적 교섭을 격렬하게 반대하며 ‘동지를 적의 아가리에 처 넣으라’고 악다구니를 써던 민노총 극렬분자에 대한 나의 분노를 따뜻하게 감싸주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서로가 다른 길을 걸어가지만,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하는 나의 마음을 오늘만큼은 어쩔수가 없나보다.

우파 제위 논객들께서는 오해가 없으시길 바란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비오는 날에 과거의 추억 속에 있던 사람을 걱정하는 센티멘털을 탓하지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