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과 휴대전화 통화
중국 화룡시 숭선진에서 바라본 함북 무산군 인광리 풍경
“절대 남한, 북한, 김일성, 김정일이라고 얘기하지 마십시오. 이쪽,
저쪽, 영감, 꼬마라고 돌려서 얘기해야 합니다. 기자, 주간조선이라는 말
도 안 됩니다.” 주간조선이 한 탈북자의 도움을 받아 작년 말 함경북도 무산군에 거주한다는
북한 주민 김모(33)씨와 휴대전화로 통화를 했다. 김씨는 중국번호로 등록
된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고, 한국에서도 이 번호로 그와 통화할 수 있었다.
가정주부였던 김씨는 최근 중국을 오가며 돈을 벌고 있으며 한국의 라면을
먹고 한국 드라마 ‘메리는 외박 중’을 즐겨본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지난
해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을 한국 측에서 먼저 쏜 것으로 잘 못 알고
있었다. 아래는 주간조선과 북한주민 김씨 사이의 통화내용. -반가워요. 사는 데가 어디세요.
“함경북도 무산군. 오늘은 화물차 타고 강타기했슴다. 옌볜입니다.”
-강타기가 뭐죠. 거기서 뭐하시는데요.
“강 건넜단 말임다. 조선족집 밭에서 품꾼 중임다.”
-두만강을 건너는 게 가능한가요.
“경비대한테 통행료 준다하고 왔더랬슴다. 우리 마을에선 중국이 보임다.
옌볜까지 인차(금방) 감다.”
-누구랑 갔는데요.
“이웃집 언니랑.”
-거기서 일하면 하루에 얼마나 버세요.
“하루 하면 인민폐로 30~50위안(약 5100~8600원) 받슴다.”
-뭘 수확하시는데요.
“옥수수. 벼.”
-겨울에 집에서 보통 뭐 드세요.
“쌀, 밤, 옥수수 먹슴다.”
김씨는 광산에서 일하는 남편의 배급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주기적으로 두만강을 건너고 있다고 했다. 그가 사는 무산군은 북한
최대의 철광석 산지. 남편이 직장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기 때문에
도처를 떠돌며 ‘품꾼살이’를 하는 건 김씨의 몫이라고 한다.
그는 하루 일당을 받으면 “장마당에 가서 ‘되거리(중개상을 통한
환전)’ 한 다음 쌀이랑 라면 등을 구매한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과거 장마당은 농작물이나 부업으로 만든 생산물
정도를 매매 또는 교환하던 곳이었지만, 요즘에는 전자제품, 한국
식재료, 화장품 등 거래 품목이 다양해졌다. 김씨에게 “장마당에
한국 물품은 어떤 것들이 있느냐”고 묻자 “웬만한 건 다 있다.
없는 게 없다”고 했다. -한국 라면은 먹어봤나요.
“네. 신라면 많이들 먹슴다. 조선돈으로 300원, 중국제는 250원.
다른 것도 다 있슴다.”
-한국 물건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라면, 내의, 화장품. 없는 것 없슴다. 화장품은 다나한.
나는 비싸서 못 씀다.”
-한국 가전제품도 있나요.
“쿠쿠 밥가마, 삼성·LG 테레비, 사진기 있습니다.
부자들은 다 씀다. 우리집엔 없슴다.”
-혹시 한국드라마 본 적 있나요.
“자주 봄다. 지금처럼 강타기하면 옌볜서 바로 볼 수 있슴다.”
-북한에선 어떻게 보는데요.
“장마당서 개인이 CD를 팜다.”
-얼만데요.
“한 장에 500~600원.”
-가정집에 CD 트는 기계가 있나요.
“웬만한 집 다 있슴다.”
-최근 본 것 중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뭔가요.
“메어리눈 외박 중.” 김씨가 즐겨 본다는 한국 드라마는 배우 문근영·장근석 주연의 ‘
매리는 외박 중’이었다. 지난 11월 8일부터 방영하기 시작한
KBS 2TV 월화드라마로 12월 28일 종영했다. 김씨가 영어 발음이
익숙지 않아 ‘매리는’을 자꾸 ‘메어리눈’이라고 말했다.
한 북한여성이 장마당으로 들어가고 있다김씨는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해 한국이 먼저 공격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김씨에게 “남북한 양측의 매체를 통해 연평도 사건을
접했는데, 누구의 말이 맞는 것 같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그쪽(한국)은 우리가 쐈댔고, 우리는 그쪽이 쐈댔고,
나는 장군님이 맞는 것 같다”며 “연평도는 그쪽이 우리를 공격한
거 같은데. 뭐 잘 모릅니다. 관심 없슴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김씨 탈북을 의미하는 말인 “그쪽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여기서 수도 없이 많이 간다(탈북한다는 뜻)”며
“나는 돈 없지만 기회되면 그쪽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기회가 되면 여기서 한번 뵙고 싶다”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씨가 휴대 전화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무산군이 북서쪽에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맞닿은 접경 지역이기 때문에 중국 기지국이
통하기 때문이다. 김씨와 통화를 주선한 탈북자는 “북한 주민들이
암암리에 휴대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게 한 10년쯤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휴대폰을 소지하는 것이 위험하지 않으냐고 묻자 “걸리면 교도소행
이지만 휴대폰과 번호는 장마당에서 암거래로 쉽게 구할 수 있다”
고 답했다.
※기사 전문은 주간조선 2138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11.01.07.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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