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아직도 꿈꾸는 소녀인가?
박근혜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선이 끝나고도 변함없이 주목받고 있다. 분명 대선 후보도 못됐고,
대선 과정에서 크게 기여한 바도 없는 것 같았는데, 그녀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무엇이며, 대선이 끝난 지금.
아직 총선이 먼 이때 당 대표도 아닌 그녀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꿈은 이뤄진다고 했던가, 박근혜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나는 그 말이 참으로 맞다는 생각을 요즘 부쩍 한다.
좌파종식에 우파 재집권을 목 놓아 노래했더니 이제 바야흐로 한나라당을 친정으로 하는 3당 체제까지
굳어지는 것을 보고도 어느 누가 꿈이 안 이뤄진다고 하겠는가?
온갖 음해와 네가티브 공세를 견디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명박이 이끄는 우파 본류 한나라당에다,
비록 대선 직전 대통령 새치기를 위해 자신이 창업자라던 한나라당을 등졌지만 극우파 본진을 꾸려 만들었다는
자유신당의 이회창, 그대로 있으면 만년 3등으로 대선에도 못 나갈 것 같으니 보수꼴통 운운하면서 한나라당을
떠나고도 대선후보는 결국 못됐지만 적진의 척박한 좌파 토양에 우파 씨앗을 뿌리는 자세로 좌파정당을
중도좌파로 리모델링한 대통합신당의 손학규까지, 바야흐로 이번 총선은 한나라당 출신
3대 거물 정치인의 리턴매치가 될 것 같다.
모양도 좋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선거는 대선이든 총선이든 지역감정 아니면 색깔논쟁으로
부딪힌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게임이라면, 다음 총선은 지역감정도 다소 희석되고 색깔도 어느 정도
탈색된, 그러면서도 극우, 중도좌우파의 3색 대결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 진짜
선거가 아닌가 싶으니 말이다.
특히 한나라당 서얼 출신이 대통합신당 대표가 된 것은 정치사적 의미가 더욱 크다.
대통령병에 걸린 3김의 치열한 이전투구 과정에서 3김 중 둘이 집권당과 야합하여 대통령이 되기 위해
급조했던 민자당의 후신인 한나라당 출신 정치인이 그 3당합당 때 왕따 당한 뒤 지역감정과 색깔논쟁의
진앙지가 되어야 했던 당을 접수한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3당 합당의 원죄로 인해 안고 가던 구태와
꼴통의 이미지를 씻게 될 것이고, 대통합신당으로서는 지역과 색깔의 편견을 말끔히 떨어버리게 되었으니
다시 민자당 이전의 3당 체제로 돌아간 느낌마저 든다. 특히 대선 과정에서 차떼기 당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 버린 한나라당으로서는 대통령병에 걸려 자행한 3당 합당의 원죄라는 오명도 버리게 된 듯하니
잘 낳아 놓은 딸이 친정 먹여 살리는 셈이 아니겠는가?
2007년 대선이 끝난 지금 대한민국도 참 많이 변했지만 그 변화가 모두 한나라당발이라는 것이
더 큰 변화일 듯하다. 마치 죽일 놈 같이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던 이명박은 차기 대통령이 됐고,
변덕이 심한 노인네는 어엿한 당을 하나 만들어 또 다시 창업자가 되고, 집나간 부랑아는 데릴사위를 거쳐
아직은 대가집의 후계자가 되었다. 잘 나가는 집 얘기다. 그렇게 한나라당이 참 많이 변했는데 그렇게 많이
변한 한나라당 안에 아직 하나도 안 변한 게 있으니 바로 박근혜 얘기다.
대선 기간 중에도 언제나 한결같이 좌고우면하더니 대선이 끝나고도 여전히 한결같다.
차라리 대선 전에 BBK 수사결과 운운하지 않고 이명박 후보에 올인 하든가, 지금이라도 당선인을
진심으로 돕고 후일을 기약하든가 하면 될텐데, 그때나 지금이나 돕자는 건지 훼방 놓자는 건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것이 신출기묘하기까지 하다. 그때 (대선 때)도 지금(대선 후)도 그 신출기묘 함에
양념을 뿌려주는 것도 역시 박사모고 그 요리를 가장 먹고자하는 것도 역시 이회창이다.
그때도 지금도 박근혜의 입은 원리원칙을 말하지만 그 눈은 진정 당이라는 숲이 아니라
자신의 계파인 나무에 가 있다.
지금 한나라당 출신 3파전이 될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의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서 이회창은 물론이고
손학규의 미래도 좌우될 수 있고, 당연히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미래 역시 그녀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니 그녀의 몸값은 지금 상투끝인 게 맞을 것이다. 박근혜도 어쩔 수 없는 정치인이니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몸값 늘리기를 한다고 비판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박근혜가 적어도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진정한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정치인이라면 그 몸값은 계파의 수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눈에
투영될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박근혜가 차기 대통령을 노린다면 한나라당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탈당을 해서 독자 행보를 취하거나
양대 신당의 어느 쪽에 몸을 의탁할 것인가를 지금 선택해야 한다. 5년후 차기 대선 승패는 한나라당의
5년간 치적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부가 성공적인 치적을 이룬다면 또 한번
한나라당이 집권할 것이고, 그렇다면 박근혜는 무조건 한나라당에 남아야 한다. 좌고우면하면서
계파나 관리할 것이 아니라 철저히 몸을 낮추고 차기 한나라당 대선후보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수도승의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권처럼 실정이라도 할 것 같다고 판단한다면 무조건 떠나 이회창에게
귀부하면 된다. 그럼 손학규의 대통합신당이 아니라 반드시 이회창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차피 5년후 이회창은 깜이 아니지만 손학규는 깜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깜이 아닌 이회창의
자유신당을 도와서 극우파의 본산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녀에게는 영남권의 맹주 자격이 있고,
이회창에게는 충청권의 지역대표성이 있다. 그리고 둘 다 한 색깔 하니 그 또한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그가 이회창에게 귀부하면 한나라당과 양대 극우파와 중도좌파 신당간의 3파전이 비로소
3각 구도를 만들어내면서 황금률의 의석배분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박근혜가 탈당하지 않고 집권당내에서 계파정치를 하면 된다고 말한다.
절대로 명박정권의 얼굴마담 노릇을 해서는 안 되고 필요하다면 몽니도 부리고 당원과 국민의 힘을
바탕으로 승부를 즐겨야 한다는 막돼먹은 주문도 하지만 그건 답이 아니다. 그런 모습은 언제나
꾸준하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줄지는 모른다. 원칙론자의 면모를 갖춘 그 모습 그대로의 늘 2인자가 되겠지만
언제나 대립각만 세우는 2인자는 1인자가 절대로 되지 못한다. 킹메이커는 되겠지만 킹이 될 수 없는
2인자의 그 모습이 지금까지 박근혜의 모습이었다면 어쩌겠는가.
본인은 자꾸 원리원칙 하는데, 한국 정치판에 무슨 원리원칙이 있던가?
어제까지 교황식 대표선출은 안된다고 게거품을 물던 정대철이 오늘은 손학규 대표 옆에서
희색이 돌면서 딸랑거리는 게 원칙인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거대 집권당 후보가 기호1번
선거홍보물에 야당 후보 얼굴을 찍어 돌리는 게 원칙인가? 두 번이나 다 이긴 대선을 스스로
망쳐놓고 정계를 눈물로 은퇴한 노인네가 대선막판에 새치기 하는 게 원칙인가?
원리원칙만 좋아하는 박근혜도 바로 그 원칙이라는 말 때문에 손해 볼 수 있다.
정치인의 원칙은 이기는 게, 이겨서 본인의 정치철학을 펼쳐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라면
정답은 하나다. 바로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첫 걸음이지
뭉개고 앉아서 발목 잡아 실패하게 만드는 것은 공멸하는 길이다. 패배한 당의 1인자로 남느니
차라리 떠나서 친정이 망하기를 기도해라.
박근혜로서는 물론 대선 중에도 그랬고, 대선 후에도 그렇고 이명박 당선인도,
이회창 신당 대표도 성에 차지 않고 맘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어정쩡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되니 분명하고도 확고한 태도를 보여야 하며,
그게 또한 정치판의 원칙이다. 100% 맘에 드는 사람은 없어도 상대적으로 맘에 드는
사람을 택하지 못한다면 죽을 때까지 좌고우면하다가 사팔뜨기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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