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지방선거에서 패한 한나라당을 가리켜 “콩가루 집안의 몰락”이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높다. 보수층들이 집안싸움에 매몰되어 있는 졸렬한 군상들을 더는 보지 못하겠다는 속내를 들어 내 보였지만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제 정신을 가진 한나라당원들을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힘들 지경이다.
한 집안을 놓고 보자. 형제들이 싸우면 가장이 중심을 잡고 집안을 다독거려야 한다. 가장이 제구실을 못하면 주위에 있는 누구도 가장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거저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판단은 냉엄하고 준엄하다. 한 번 눈 밖에 난 집안은 주위로부터 호감을 얻지 못한다. 화목은 인간생활의 기본이며 화목 속에서 훌륭한 정치도 이루어진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세종시 수정안 관련 법안이 지난 22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서 찬성 12, 반대 18, 기권 1로 부결되었다. 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18명 중 친이계 및 중립성향 의원 9명이 찬성했고, 친박계 의원 6명이 반대했으며 친박계 위원장은 기권했다. 야당과 친박의 연대에 의하여 수정안이 부결된 셈이다.
세종시 수정안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 온 국책사업이다. 여당은 정부정책을 국회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하며 유권자는 정부를 선택함과 동시에 여당에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권한을 위임받은 정당은 통치를 위한 권위와 정당성 모두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계파가 유권자의 위임사항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존재가치는 상실되는 것이므로 의원직을 내 놓고 다시 유권자에게 신임을 물어야 한다. 유권자가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 친박계 좌장인 박근혜는 차기 대권을 위해서는 고향인 충청도 표심이 절대적이라는 확고한 지역주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킨 57만 표가 대전과 충남북에서 나왔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실제 노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앞선 표차는 대전에서 10.3000 표, 충남북에서 10.9000 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서울, 경기, 인천, 전남북에서 근소한 차로 우세를 보였다. 2012년 대선에서 대전과 충남북에서 재미를 본다고 해서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6.2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의 표심은 보수정당의 아성이라고 믿어 왔던 서울, 경기, 강원, 경상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보수는 파행을 싫어한다. 당을 다스리지 못하는 정당은 나라를 맡을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유권자는 한나라당에게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유권자는 진심어린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정당에는 더 이상 온정을 베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살길은 계파갈등을 시급히 해소하는 일이다.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여부는 한나라당을 지켜보는 유권자들에게 주는 명백한 답변이 될 것이다. 수도 분할을 원치 않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여론을 무시하고 계파 이익을 앞세워 국가 백년대계에 심대한 차질을 초래한다면 한나라당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세종시 수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면 원안으로 가야 하는데 세종시 건설의 마감 연도가 2030년이고 보면 그동안 정권이 4차례 바뀌게 되고 그 때마다 국가발전에 걸림돌이 될 세종시 건설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수도의 분할이나 이전은 통일 한국의 국정과제로 남겨 놓아야 마땅하다.
한나라당이 중대 기로에 선 이 시점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파 공멸의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하면 당의 존재가치는 상실되고 말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진정한 보수 세력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보수정당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 이외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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