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과 김대중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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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노무현 같은 충실한 후계자를 제 손으로 뽑아 세우고, 뜻 밖에도 노가 그의 고향의 뒷산에 올라가 투신자살하였을 때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나머지 통곡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김대중이 있어서 노무현의 죽음은 미화되었고 김대중 자신도 ‘호남의 반신(半神)’의 영광과 후광을 그대로 지니고 천수(天壽)를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따지는 사람도 없고, 노무현 자살의 동기를 문제 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의 경우는 그렇지 못합니다.

5‧18과 같은 민족사의 일대 비극에 대해 그가 전적으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순리라고 믿고 선택한 후계자 노태우는 전두환과 이순자를 백담사로 보내 그들은 여러 해 유배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장세동 같은 심복들이 아직도 살아있긴 하지만 말 한 마디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을 겁니다.

그런 판국에 ‘추징금 미납 사건’이 터져나와 그는 국민의 눈에 파렴치한 부정축재자로 비치게 된 것이나 다름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전두환의 전부는 아닙니다.

나는 한무제(漢武帝) 앞에서 흉노(匈奴)에게 투항한 이릉(李陵)장군의 입장을 두둔하다 황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宮刑)에 처해져 거세(去勢)를 당한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의 근처에도 못갈 빈약한 사가(史家)이긴 하지만 한 마디 안 할 수 없는 일종의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전두환이 그런 인간밖에 아니라면 그로 하여금 7년이라는 긴 세월 대통령의 자리를 지키게 한 대한민국 국민은 등신 아니면 병신이 아닙니까.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을 잘하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에 발간된 <김재익 평전>을 읽었습니다.
그는 1983년 ‘한글날’에 미얀마에서 벌어진 아웅산 테러 사건 때 이범석, 서석준, 서상철과 함께 순직한 당시 청와대의 경제 수석이었습니다.

이 <평전>을 요약한 한 마디가 표지에 적혀 있습니다.

“21세기 번영의 초석을 다지고 한국 경제 백년대계를 설계한 김재익”이 바로 그 한 마디입니다.

전두환은 그를 ‘경제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그에게 경제를 일임했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의 선각자인 그에게 우리는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저자는 덧붙였습니다.

김재익의 배후에는 전두환이 있었고 아무리 전두환을 비난하는 사람도 그의 정권 하에서 단군 이래 처음 국제수지에 흑자가 나타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겁니다.

1981년 2월 25일에 실시된 제 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권자의 투표율이 77.7%에 달하였습니다.

그 선거에서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이 총 276명을 당선시켰고 유치송의 민주한국당이 81석을 차지했습니다.

물론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강행되어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구정치인 527명은 총선에 참여할 수도 없었고, 1구 2인의 중선거구제여서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전남과 전북에서도 민정당, 민한당이 압승한 ‘기현상’을 나는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IMF의 한파는 김영삼 때 일기 시작하였고 김대중 때 정리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김대중이 제시한 뚜렷한 방향이 있었다는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대우의 김우중이 시작한 ‘금 모으기’ 운동에 전 국민의 헌신적 참여가 있었다는 생각 밖에 떠올릴 수 있는 자랑거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햇볕’을 가장하고 북에 퍼다 준 수억 달러가 한국 경제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뿐입니다.

정주영을 앞세워 북에 두 차례에 걸쳐 소 500마리를 (두번 째는 501마리를) 트럭에 실어다 ‘진상’한 사실이 김대중에게는 노벨 평화상을 안겨 주었지만 남북 관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대한민국 국민의 경제생활에도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상당수의 한국인의 눈에는 아직도 한 사람은 ‘영웅이요 우상’인데 또 한 사람은 최근에 더욱 ‘파렴치한 역적’으로 몰리고 있으니, 하늘나라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굽어보는 김재익의 심중이 매우 착잡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전두환 집권 초기에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두 달 가까이 갇혀 있으면서 내가 봉직하던 대학의 부총장직과 교수직 사표를 강제로 써야만 했고, 그 후 10년 동안 무직자가 되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