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랑] 40만원짜리 폰이 공짜라더니…
▲ 소설가 이명랑
“저는 거의 삐삐 수준인데…. 오는 전화만 받거든요.”
“그렇게 요금이 적게 나오면 공짜로는 안되구요, 그래도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는 저렴하게 드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 저렴한데요? 괜히 거기까지 갔다가 저렴하지 않으면 돈 낭비, 시간 낭비잖아요. 핸드폰 값이 정확히 얼마인지 말해주실 수 없나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도청이 되거든요. 이렇게 싸게 드리는 거 소문나면 저희 영업 못합니다.”
도청이라니! 도청이라는 단어에 나는 기가 팍 죽었다. 도청이니, 영업정지니, 이런 말까지 들먹거리는 걸 보면 다른 데보다 무진장 싸게 해주긴 해주는 모양이구나, 나는 용산 전자상가에 있다는 ○○텔의 위치를 자세히 묻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시장에서 과일가게 종업원을 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가 뭐 어린애야? 용산에도 혼자 못 가게?”
후배는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차를 끌고 나와주었다. 사실, 난 용산에 가기 싫었다. 내 기억 속의 용산은 언제나 복잡하고 무서운 동네였다. 이 가게, 저 가게 들어가서 설명을 들어보면 들어볼수록 더 헛갈렸고, 나중엔 “에라, 아무 거나 사자!” 이렇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 가면 되잖아?
그러나, 나는 안 갈 수가 없었다. 왜? 그야, 나는 십 원, 이십 원에 목숨거는 아줌마이기 때문이다. 내 이런 습관은 아이들의 기저귀 때문에 생겼다. 기저귀 값이 가게마다, 백화점마다, 할인점마다 다 틀렸다. 기저귀 값이 한 개에 십 원만 차이가 나도 한 달이면 최하 2만원 상당의 돈이 왔다갔다했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살 때는 몇 군데 둘러보고 나서 싼 곳에서 사게 되었다. 기저귀도 아니고 핸드폰을 사는데, 싸다는데 이 아줌마가 안 가볼 도리가 없지 않은가.
후배와 나는 곧장 ○○텔을 찾아갔다.
“와, 아줌마, 기본료가 6000원이네요.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적게 쓰시면 혜택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24개월 쓰신다고 결정하시고, 12개월 할부로 핸드폰을 사게 되면요 실제 아줌마가 내시는 돈은 10만원인거죠.”
10만원? 39만원짜리 핸드폰을 사는데 내 돈은 단지 10만원밖에 안 들어간다고? 나는 혹시나 내가 잘못 들었나 해서 직원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직원은 정말 그렇다는 것이었다. 용산이 싸긴 싸구나, 나는 당장 계약서를 썼다. 직원이 내 주민등록증을 복사해왔다.
“자, 여기 있습니다. 한 달에 4만3000원씩 12개월만 내시구요, 그 다음부터는 쓰시는 대로 내면 되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핸드폰비가 많이 나와봤자 1만5000원에서 왔다갔다하는데 4만3000원이라니?
“야! 너는 이게 무슨 소린지 알아들었냐?”
내가 후배에게 물었다. 과일 가게 종업원들 중에서는 그래도 계산 잘한다고 소문난 후배도 도통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10만원을 12개월로 나누는데 어째서 4만3000원 일까? 시장 통에서 잔뼈가 굵은 우리는 ○○텔 직원의 계산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따지고 또 따진 결과, 우리는 알게 되었다. 직원이 말한 한달 핸드폰 요금, 4만3000원은 내가 사려고하는 핸드폰 기계 값 39만원을 12개월로 나눈 뒤에, 거기다가 기본료 1만7000원을 더한 요금이라는 것을.
“전 그냥 할부 안하고 차라리 39만원을 일시불로 낼게요. 기본료도 종전처럼 6000원짜리로 하구요.”
그러나, 직원은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내 돈주고 핸드폰을 사는데도 무조건 12개월 이상 할부로만 살 수 있다는 것이었고, 핸드폰 기계를 바꾸면 요금제도 기본료 6000원짜리는 쓸 수 없고 최하 1만7000원짜리로 바꿔야되고, 거기다 부가 서비스를 최소한 2가지 이상은 무조건적으로 사용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저씨! 도대체 뭐가 싸다는 거예요? 아니, 안 싸도 상관없어요.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죠. 처음엔 분명히 10만원이라고 하더니 계약서 다 쓰고 났더니 39만원이라니, 이게 거짓말이 아니면 뭡니까?”
나는 화가 나서 ○○텔을 나와버렸다. 생각 같아서는 핸드폰이고 뭐고 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긴 사야했다. 4년이 넘게 사용해온 핸드폰이 이제는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3번 수리를 했고, 수리비용만 8만원 이상이 들었는데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뿐더러, 수시로 전원이 꺼졌다. 핸드폰을 바꾸긴 바꿔야만 했다.
우리는 몇 군데 점포를 더 돌아다녔다. 들어간 점포마다 약정할인제니 번호이동제를 들먹였고, 시장 통에서 잔뼈가 굵은 후배와 나조차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계산 방식으로 그들이 말하는 소위 ‘할인’에 대해 설명해댔다. 후배와 나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게마다 설명하는 내용과 계산 방식은 다 달랐지만 결국 내야할 요금의 액수는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 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는 핸드폰을 사긴 샀다. 그러나, 왠지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 우롱을 당했다는 생각에 뒷맛이 영 씁쓸하다.
이 핸드폰은 요금이 39만원이고, 요새 이동통신사들마다 자기 고객 뺏기지 않으려고 무조건 할부로만 핸드폰을 구입할 수 있게 해놔서 12개월 할부로만 살 수 있다, 거기다 현금이 아니고 할부구입이기 때문에 할부보증금 3만원을 내야된다, 등등의 사실을 빙빙돌리지 않고 왜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는 것인가?
“공짜 폰”이니 “최대 40만원 할인”이니 등은 다 무엇이며, 이동통신사들이 내놓은 약정할인제는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처럼 핸드폰보다는 공중전화를 더 자주 이용하는 사람, 한달 핸드폰 요금이 2만원 밖에는 안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이동통신사들이 내놓은 요금제가 하나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동통신사들이 내놓은 요금제는 오히려 피해만 된다. 꼭 필요해서 핸드폰을 새로 장만하는데, 아무 이유 없이 기존에 쓰던 기본료보다 더 비싼 요금을 물어야 된다는 건 왠지 억울하다. 필요 없는 부가서비스까지 일단은, 무조건, 최소 3개월 이상은 사용해야 된다니, 뭐 이런 억지가 다 있나?
약정할인제니 최대 40만원 할인이니, 대다수 서민들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서비스는 안 해도 좋으니까 기본료나 낮춰주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못하겠다면, 최소한 허위, 과장 광고로 사람들을 우롱하지나 말던가.
소설가 이명랑 : 1973년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나 1997년 문학무크지 「새로운」에 시 「에피스와르의 꽃」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체험과 풍부한 서사성을 바탕으로 삶의 허위와 진실을 날카롭게 포착해낸 성장소설 『꽃을 던지고 싶다』로 만만치 않은 개성과 저력을 가진 신예 작가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작가 이명랑만의 독특한 삶의 이력이 재미있게 펼쳐지는 에세이집『행복한 과일가게』로 많은 이들에게 색다른 희망과 위안을 선사한 바 있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소설 『삼오식당』은 영등포 시장을 무대로 소박하고 친근한 이웃들의 애잔한 눈물과 희망찬 웃음, 삶의 악다구니를 따뜻한 시선과 구성진 입담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입력 : 2004.01.13 14:24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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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100자평은 총 8건입니다. (추천순)
윤권준(kj1142)
10 0 정치인들이 대표로 비난의 몰매를 맞을뿐 한국 사회는 대부분 이지경이다. (01/13/2004 14:47:34)
이상규(kf16)
3 0 솔직히 주위에서도 다 휴대전화 요금 고지서를 보면 대부분 2만원이하다. 약정할인? 필요한 사람이 몇이나 돼? (01/13/2004 14:58:32)
김민구(proman2000)
3 0 나도 이 글을 읽고서야 이해가 가네요. (01/13/2004 14:48:04)
이영기(rodem3366)
2 5 자전거 꽁자로 준다고 설레발이 치던 모 신문하고 어째 비슷해....신문 몇년 봐야 한다고 지랄했더라? (01/13/2004 14:53:56)
김상철(jjoly386)
1 0 이사람들 대단하네. 어디 사는 사람들일까? *** 아마 이사람들 국회의사당에서 사는 사람(?) 아니면 청와대에 사는 사람(?) **** 존경스럽 습니다. 대단합니다. (01/13/2004 15: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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