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갈매기호’가 비를 몰고 날아와 이제야 장마 비같이 내립니다. 갑자기 소나기로 퍼부었다가 언제 왔느냐는 듯이 금시 말갛게 됩니다. 어떤 곳에서는 제법 물난리를 맞고 인명피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년 중 행사로서 앞으로 다가올 태풍과 폭우에 얼마나 더 많은 피해가 발생할지는 이 여름이 다가고 가을이 다가와 봐야 알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자연재해라고들 하지만 자연재해가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인재인 게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자연에는 본래 재해가 없는 것입니다. 산사태가 나고 강둑이 터지는 것이 모두 자연 스스로에게는 또 다른 자연 스스로를 위한 하나의 질서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재해가 아니라 모두 인간재해인 것입니다. 각설하고,
도량에 잡풀을 뽑느라 비를 맞으면서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중산층은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중산층을 측정하는 척도는 참으로 모호할 것입니다. 그래서 중산층이 얼마나 된다. 라고 하는 객관적 통계는 잡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흔히들 중산층하면 그가 소유한 가산(家産)이나 수입정도로 따지기 일쑤이지만 문화개념, 정신개념 등 중산층이란 세 개의 발로 괴어진 솥이라고 보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오래된 메모를 찾아보니, 퐁피두 전 프랑스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추구했던 ‘카르테 드비(生活의 質)’는 바로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이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첫째, 외국어 하나는 할 수 있을 것. 둘째, 스포츠 하나를 즐길 것. 셋째,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것. 넷째, 남의 집과 다른 요리솜씨 하나는 지닐 것. 다섯째, 공분(公憤)에 의연히 참여할 것. 등등입니다. 문화적 조건을 많이 요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영국 퍼블릭 스쿨에서 가르치는 중산층의 조건은 정신적 조건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첫째, 페어플레이를 할 것. 둘째, 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 셋째, 나만이…하는 독선을 부리지 말 것. 넷째,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강할 것. 다섯째, 불의. 부정. 불법에 의연할 것. 등등….
청빈철학이 지배했던 조선조 중엽의 중산층 개념 역시 가재(家財)의 개념보다는 문화개념. 정신개념이 보다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종 때, 판서를 역임한 김정국이 지나치게 재산만을 모으는 한 친구에게 부친 편지 속에서 당시 중산층이 누려야할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을 갖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 각 두어 벌 있었으나 눕고서도 남는 땅이 있고 신변에는 여벌옷이 있으며 주발 밑바닥에 남는 밥이 있었소.’ 이는 가산(家産)의 조건이겠습니다.
‘여기에 없을 수 없는 것은 오직 서적 한 시렁 ― 거문고 한 벌 ― 햇볕 쬘 마루 하나 ― 차 달일 화로 하나 ―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하나 ― 봄 경치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면 족할 것이오.’ 이는 문화의 조건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의리(義理)를 지키고 도의(道義)를 어기지 않으며, 나라의 어려운 일에 바른 말하고 사는 것이 그 얼마나 떳떳하오.’ 이것은 정신적 조건이라 하겠습니다.
전통사회에 있어 중산층은 그 층이 얇긴 했으나 이렇게 삼위일체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 현대의 중산층은 그 층이 넓어지긴 했어도 가산의 척도에 치우치고 문화나 정신적 척도는 소홀히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근래 경제적 조건이 악화되자 우리사회의 중산층이 다 무너지고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일찍이 우리사회에 중산층이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우리사회에 진정한 중산층이 있었다면, 비록 경제적 조건이 악화되었다고 할지라도 페어플레이를 상실하고, 나만이...라고 하는 독선이 나무하며, 불의와 부정, 불법에도 분노할 줄 모르고, 공분에 참여치 못하는 국민이 대부분이지는 않았을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토록 정의가 상실되고 불의가 난무하는 세상은 아닐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행한 것은, 그동안 발전해온 경제적 여유를 누리고 자라온 세대들은 경제적 조건이나 빵만이 삶의 전부로 여기지 않고, 정신적 문화적 조건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체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광우병 파동에서도 켜든 촛불을 문화행사로 승화시켜 가면서(일부 불순한 세력도 있었겠지만) 주권국가로서의 책무를 부르짖고, 독도 망언에서 당당하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떳떳하게 나서고 있는 젊은이들에게서 나는 새로운 중산층의 형성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중산층의 발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시장경제라는 명분으로 고소영과 강부자들을 내세워 공공산업을 민영화시키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양분하여 지배코자하는 경제(재벌) 독재를 꿈꾸었던 것이 나는 이명박이 내세운 실용정부의 속셈이 아니었나하는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2008.07.21.청석골.
672274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