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정부청사의 구호 'Dynamic Korea， Asia's Hub'는 어느 주한외국대사가 헌정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이 허브라는 데 대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센터는 맞지만 허브는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어느 지역의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몰려들면 그 지역은 센터로 부상한다. 시골 장날에 상인들이 모여서 북적거리는 저잣거리가 장터로 되듯이 일거리가 많아서 외국인들까지 몰려드는 곳이 센터다.

이에 비해 허브는 그 지역에는 사업장이 없더라도 주변지역의 사업을 관리하기 위해 반드시 찾아야 하는 장소이다. 즉 동아시아 지역 사업의 총괄본부가 많이 주재하는 곳이 동아시아의 허브이다.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만큼 지역인구 규모와 무관하게 국제공항이 필수적이다.

센터의 사업은 현지인들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 지역 사람들이 일의 주역이고 시장의 고객이며 외지인들의 역할은 보조적이다. 센터의 주인은 엄연히 그 지역 사람들이다.

허브는 사정이 다르다. 펼치는 사업이 주변의 여러 지역을 포괄하고 정작 허브에는 사업장이 없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국적의 기업들이 몰려들어 자신들의 지역 사업본부로 삼는 곳이 허브이다. 허브의 주민들이 사업의 주인을 자처하기도 어렵고 자처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센터의 주인이 현지인들인 것과는 달리 허브의 주인은 주재하는 외지인들이다.

우리 주변의 대표적인 센터는 서울과 토쿄，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이다. 일본은 일찍이 산업화에 성공해 세계의 센터로 우뚝 섰고， 한국과 중국도 고도성장의 기적을 실현하면서 센터로 도약했다.

한 · 중 · 일 3국의 경제개발전략 목표는 모든 개발정책이 그렇듯이 자국내 산업활동을 일으키는 것이었으므로 세계화 시대에 그 본질은 결국 센터개발로 구현됐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허브다. 이들의 발전전략도 본질은 센터지향적으로 출발하지만 소규모의 국토와 인구가 바로 한계로 작용한다. 센터개발이 어느 수준에 이르자 더 이상의 발전이 어려웠기 때문에 눈을 밖으로 돌려 주변 광역의 산업활동을 총괄하는 사업본부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아직 선진국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과감하게 허브전략을 채택해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일본은 센터전략에서 지나치게 성공적이었던 탓에 역설적으로 세계화의 조류를 거스르는 행보를 보였다. 그 결과 외계로부터 고립된 갈라파고스 섬의 생물처럼 센터 일본의 많은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의 센터개발전략은 국토와 인구가 초대규모인 만큼 앞으로도 한참 그대로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영국의 장기 지배를 거치면서 동양의 전통적 폐쇄성을 일찍부터 극복했다. 외지인들의 활개 치는 주인행세를 그대로 수용한다. 동양권에 매우 드문 개방적 분위기와 정부의 적극적 허브 전략은 이들 도시국가들을 단숨에 동남아의 허브로 발전시켰다.

한국은 한 · 중 · 일 3국 가운데 인구와 국토의 규모가 가장 작다. 센터개발전략이 가장 먼저 한계에 이를 것이므로 같은 전략으로는 일본 및 중국과의 경쟁이 더 버거워진다. 우리도 이제 허브전략을 병행해 수도권과 남부권을 각각 전문분야별 동아시아 허브로 육성하는 것이 옳다.

공항 없는 싱가포르와 홍콩을 상상할 수 없는 만큼 동남권 신공항은 남부권 허브전략에 필수적이다. 인구 1000만명이 못 되는 싱가포르와 홍콩 공항의 이용여객수는 인천이나 나리타 공항을 앞지른다. 그런데도 우리 인구규모로는 인천공항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센터개발의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면 허브로 도약할 기회를 놓치고 백년을 후회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