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은 시장(市場)이 아니라 김대중 정권 경제 관료들에 의해 해체됐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그룹 해체 15년 만에 입을 열었다. 21일 본지가 입수한 대담집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26일 발간)에서 김 전 회장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 대우자동차는 애초 GM 투자를 받아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당시 관료들은 'GM과의 협상은 깨졌다'고 사실과 다른 말을 하며 투자 유치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의 발언은 대우 해체의 책임이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 등 DJ 정부의 핵심 경제 관료들에게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당시 핵심 관료들은 "오히려 김 전 회장이 빅딜 등 대우 회생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해 논란이 예상된다.

김 전 회장은 'GM의 대우자동차 투자 협상이 1998년 결렬됐다'는 당시 정부 측 설명과 달리, "GM은 대우그룹 워크아웃이 선언된 지 4개월이 지난 1999년 12월에 이헌재 위원장 앞으로 '대우차를 50억~60억달러에 인수하겠다'는 의향서를 비밀리에 보냈다"고 주장했다. 당시 투자 협상이 결렬된 것이 아니라 GM이 투자를 위한 실사(實査)를 진행하고 있는데도 정부 당국자들이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삼성과 빅딜 협상도 정부 관료들이 막판에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삼성차를 대우에 넘기고 대우전자를 삼성에 넘기는 빅딜이 논의됐다가 결국 무산된 데 대해 김 전 회장은 "삼성과 빅딜은 삼성 측에서 먼저 제의가 온 것"이라며 "대우는 삼성차가 필요 없었지만, 정부가 강하게 권한 데다 그렇게 하면 유동성 문제를 지원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경제 관료들은 나중에 오히려 빅딜을 막았다"고 했다. 그는 "우리 협상팀이 이헌재씨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며 "경제 관료들은 빅딜이 성사된 후 대우그룹을 해체할 경우 처음부터 빅딜을 잘못 추진한 거라고 비난받을 것을 우려했다"고 주장했다.

1999년 7월 김 전 회장은 사재 출연 1조3000억원을 포함해 12조원을 채권단에 맡기고 자동차 부문과 ㈜대우 등 8개 계열사 회생에만 전력하겠다는 '대우 유동성 개선을 위한 자구 방안'을 내놨다. 김 전 회장은 "자구안에도 (관료들에게) 뒤통수를 맞았으며 대우 그룹이 해체 수순을 밟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시장에서는 대우 부도설이 파다했고, 금융권에서도 경쟁적으로 채권을 회수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후 김 전 회장은 1999년 10월 유럽·아프리카 출장을 떠났다. 그는 "여러 경로로 해외에 나가 있으라는 얘기가 들어왔고 DJ에게 연락했더니 '3~6개월만 나가 있으면 정리해서 잘되도록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해체 이후 GM이 대우차를 거의 공짜로 인수했다"고 주장했다. "GM이 현찰 4억달러밖에 내지 않는데 산업은행이 20억달러의 자금 지원을 해줬다"면서 "정부가 우리를 워크아웃에 집어넣으면서 실사했을 때 청산 가치로 평가했는데도 대우차 자산 가치가 110억달러(약 13조원)가량 나온 것과 비교하면 한국 경제가 110억달러의 돈을 날린 셈"이라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대우 해체의 근본 원인에 대해 "김대중 정권 초기 시절 DJ가 내 의견을 듣고 보류하거나 기각하는 정책이 생겨나면서 관료들의 반감이 시작됐고, 수출을 늘려 IMF를 벗어나자'는 내 생각도 철저한 구조조정을 강조했던 관료들의 반감을 샀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경제 관료들이 나를 제거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고 믿고 있다"며 "유동성 규제를 할 때에도 대우만 겨냥한 조치를 내놓고, DJ에게 우리 부채 상황을 보고할 때도 '밀어내기 수출이다' '외상매출이다'고 했다"고 말했다.

대우그룹은 1967년 대우실업에서 출발해 30여년 만에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원에 달하는 재계 2위 기업으로 컸다. 하지만 당시 부채 규모가 89조원에 달했고 정상화 과정에서 30조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됐다. 대우그룹은 외환위기와 함께 유동성 위기를 맞은 후 1999년 8월 채권단에 의해 워크아웃 결정 후 해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