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얼마전 인구와 관련된 두가지 주목할만한 통계가 나왔다. 우리나 라 여자 평균수명이 처음으로 80세를 돌파했다. ‘70세-고희(古 稀)’시절을 훌쩍 뛰어넘어 ‘80세-상사(常事)’시대가 열린 셈 인데, 오래 살 수 있다는건 어쨌든 반길 일이다.
또하나는 출산율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수 는 1.17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았다. 대표적인 저출산국이라는 일본이 1.33명, 프랑스는 1.89명이다. 오랜 산아제한정책 탓이겠 지만 ‘저출산=선진국’이란 등식에 익숙한 우리는 일순 당혹스 러운 심정이 된다. 손뼉칠 일인지, 아닌지. 한 사회의 인구규모 를 유지할 수 있는 대체출산율은 2.1명이라고 한다.
얼핏 독립변수로 보이는 두가지 통계는 실상 뗄 수 없는 관계다.
이 연립방정식을 풀면 ’고령화’라는 답이 나온다. 수명이 길 어져 노인들은 부쩍 느는데 이 사회에 신규 편입되는 신생아의 숫자는 절대적으로 줄어든다면 장래 모습은 어떤 형태가 될 것인 가. 인구구조는 그 사회의 충원 시스템이자 생산력을 결정짓는 요인 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경제학자 맬서스는 1798년 ‘인구론’ 에서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다. 인간 생존에 필요한 식량은 산술 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인류가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비관론이다.
그의 이론은 주요 단어를 대체한다면 2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 하다. 즉, 한 사회를 먹여살릴 인구(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부양인구(65세이상 노인)는 기하급 수적으로 늘어나 사회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신( 新)인구론’이라 부를만하다.
고령화시대가 몰고올 파괴력을 인구학자들은 지진에 빗대 ‘Ageq uake(Age+Earthquake)’라는 신조어로까지 표현한다. 몇몇 선진 국에서는 벌써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85년에 평균수명 80세시대(여자기준)를 연 일본은 대표적인 노인국가다. 90세 수 명이 예상되는 2025년에는 국민 3명중 1명이 65세이상 노인이 된 다.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되는 장기불황을 고령화한 인구구 조에서 찾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폭염으로 사망한 1만여명 가운데 80%가 75세이상 노인으로 밝혀지면서 르 몽드가 ‘노화에 직면한 프랑스’라는 특집부록까지 냈다. 미국 은 아직 다급하지는 않아도 75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 ’가 은퇴를 시작하는 2010년부터는 가속페달을 밟게 된다.
고령화의 파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노인들의 사회 , 그 불안한 미래’를 쓴 피터 피터슨은 “2030년이 되면 미국 정부가 지출하는 사회복지 예산이 연방 총세입을 초과할 것”이 라고 추산했다. 그렇게 되면 국방비나 교육비 등 다른 곳에 쓸 예산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국가재정이 파산지경에 이른다는 얘 기다.
정치에서는 고령자들이 최대 유권자그룹으로 부상하면서 선거판 도가 완전히 뒤바뀐다. 노인들의 입김이 센 연금정책 등은 갈수 록 개혁이 힘들어진다. 국제질서도 노화된 선진국과 젊은 노동력 으로 무장한 개도국간에 역학구도가 바뀔 수 있다. 25개 선진국 인구비중은 1950년 세계인구의 23.5%였으나 2050년에는 10%로 떨 어질 전망이다. 고령화는 한마디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존 지형 을 바꿔놓는다.
우린 어떤가. 선진국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그 진행속도에서 급행열차에 올라탄 형국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23년이후 인 구가 줄어들기 시작, 2100년에는 지금의 절반이하로 감소한다고 한다. 그때쯤이면 생산가능인구는 지금의 3분의 1수준으로 줄지 만 노인인구는 4.5배까지 불어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얼마전 유아 보육비용의 소득공 제한도를 인상하는 등 출산장려책을 내놓았지만 그 정도로 수습 될 일은 아닌 듯하다. 단순히 아이 몇명을 더 낳는 수준이 아니 라 정치·경제·사회복지·문화·국방 등 고령화가 가져올 각분 야의 파장을 면밀히 분석해 장기 로드맵을 마련하는게 시급하다.
단순한 출산장려책도 효과가 나타나려면 10~20년이 걸리는 판이다.
21세기 국가책략은 인구변수를 빼고 얘기할 수 없다.
/ 김회평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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