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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연결 의혹’ 이영로씨, 대화할 수 있다
병세 호전돼 식사… 중환자실→일반병실로 한 달 전 옮겨
“부인과 조용조용 이야기”

영로씨는 입을 다물고 있는가? 정말 말을 못하는가?”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와 관련해, 최도술(崔導術)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기업인들을 연결시켜 준 고리로 의혹을 받아온 이영로(李永魯ㆍ63)씨는 그동안 줄곧 여론의 관심 대상이었다. 그의 입이 열려야 대통령 측근 비리의 전모가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이었다. 지난 9월 14일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씨는 그동안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이유로 검찰 수사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하지만 그는 현재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였고, 병세도 호전돼 한 달 전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진 사실이 확인됐다.

병실 문 앞엔 다른 사람 이름
이영로씨를 만나기 위해 일요일인 지난 11월 30일 오전 11시쯤, 그가 입원해 있다는 P병원을 찾았다. 1층 안내센터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의 병실은 ○○○호실. 병실을 찾았는데 문 앞 이름표엔 다른 이름이 쓰여있었다.
“○○○호실이 더 있냐”는 질문에 지나가던 간호사는 “여기뿐”이라고 했다.
병실 문 앞엔 20대 젊은이가 앉아 문을 지키며 책을 읽고 있었고, 반 이상 열린 병실 문 안으로 두 사람이 보였다. 부산 지역 기자들 말에 따르면 경계가 삼엄하다고 했으나 일요일 낮이라선지 병실 안을 다 들여다볼 수 있었다. 환자는 침대 위에 꼿꼿이 앉아 있었고, 환자 쪽으로 몸을 가까이 가져간 그의 부인 배모(58ㆍS대 교수)씨와 낮은 목소리로 말을 나누고 있었다. 환자의 코와 목 부분엔 호스가 연결돼 있었고 몸을 가누기가
자유로워보이진 않았다. 다만 부인이 큰 소리로 말하고 이씨가 조용히 답하는 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잠시 후 아들로 보이는 사람이 음식이 담긴 쟁반을 밖으로 내왔다. 옆으로 다가가 “이 선생님의 건강이 좀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는 “어떻게 오셨는지…” 하면서 잔뜩 경계하는 눈치였다. 신분을 밝히는 것이 정도(正道)이기는 하지만 그랬다가는 취재 자체가 원천봉쇄될 가능성이 커 적당히 둘러댔다. 이씨의 아들은 “지금은 직계 가족 외에 면회가 안된다”면서 “가까운 친구분들이 와도 그냥 되돌려 보내고 있다”고 답했다.
“충격을 많이 받으셔서 그러냐” “언제쯤 나으시겠는가”라는 질문에 “충격 받을 것도 없지요, 뭐”라고만 말끝을 흐렸다. 병실 앞에 단 이름을 바꾼 것은 병원측에서 그런 것 같다고만 답했다.

의사들 “내 담당 아니다” 피해
발길을 되돌릴 수가 없어 기자는 주변에서 만난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에게 ○○○호실 환자에 대해 물었지만 모두들 “내 담당이 아니다”고만 했다.

담당 의사를 찾았지만 다들 모르는 척 피하는 눈치였다. 병원 관계자들은 그간 “목에 튜브를 꽂기 위해 기관지 절개 수술을 한 상태로 간단히 물으면 고개를 끄덕일 정도”라면서 “입원 당시보다는 상태가 나아졌지만 의식이 명확하지 않고 정상적인 의사 소통은 아직 어렵다”고 말해왔다.
이씨를 가까이서 만나기 위해 음료수 박스를 사들고 와서 다시 문을 두드렸다. 닫힌 병실 안에선 낮은 소리들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때마침 식사 시간이었는지, 반찬이 3~4개 딸린 식사가 병실 안으로 들여보내졌다. 이씨의 아들은 다시 찾아온 기자를 보더니, 좀전보다 훨씬 긴장하는 눈치였다.
“손이라도 잡아드리고 돌아가겠다”고 하자 “이러시면 안된다”며 병실 문을 잠가버렸다.
한 시간이 좀 못 됐을까, 담당 간호사가 약을 주려고 방문을 두드렸다.
간호사는 “이영로님, 약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문을 잠그고 있다가 열어주고는 이씨의 부인과 간호사 간 대화가 잠깐 이어졌다. 문을 좀 더 열어 “사모님이라도 뵙고 가겠다”고 했지만 이씨의 부인과 아들은 다시 문을 잠그고 들어가 버렸다. 담당 간호사에게 병세를 물어보니 “보호자 아니면 환자 상태를 알려줄 수 없다”고만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병세에 대해 계속 묻자 “△△△호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과 같다”고만 답하고 가버렸다. 이씨의 병실 맞은편에 있는 △△△호실에 가니 이씨처럼 목에 튜브를 꽂고, 코 쪽으로도 튜브를 연결해놓은 환자들이 보였다. 몸 가누기는 편치 않았지만 대부분 말을 하고 밥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비슷한 증세 환자들 대부분 말해
병실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중환자실에 있을 때 가족 면회도 안되던 때에 기자들이 들이닥쳐 사진을 찍은 다음엔 낯선 사람들 접하는 걸 아주 두려워한다”고 전했다. 해당 층의 다른 간호사는 “가족들과만 얘기를 하지, 저희들과도 얘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말을 하기는 한다는 얘기다.
뇌졸중 전문 의사들에게 자문을 구한 바에 따르면 뇌졸중이 오면 호흡이 불량해져 목젖 아래에 구멍을 뚫어 기도로 바로 연결하도록 한다는 설명이었다. 정신 상태에 이상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구멍을 뚫었다고 해서 식사하거나 말을 하는 데엔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계속 누워있어 가스 배출 등에 불편함이 있을 뿐, 식사를 하기 시작한 상태라면 곧 코로 연결된 튜브(음식을 위로 넣어주는)도 뺄 것이라고 한다.

노 대통령 부산상고 8년 선배
이영로씨의 병세에 대해 부산에선 “말을 못한다고 입을 다물고 있으니 방법이 없다” “꾀병이다”라는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씨가 최도술씨 수사와 우연히 비슷한 시점에 뇌졸중으로 입원한 과정을 놓고 “이씨가 병세를 과장하고 검찰이 수사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얼마전 대검을 방문해 검찰 총장에게 직접 이씨 수사가 불가능한지를 물었고, 검찰측은 “현지에 수사팀이 내려가 이씨의 건강 상태를 주치의와 확인한 결과, 사건을 기억해 답변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1월 18일 국회 예결위에서 한나라당 이성헌(李性憲) 의원도
“이영로씨가 지금 말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었다. 검찰은 이씨 수사를 놓고 야당이 연일 ‘검찰 흠집내기’에 나서고 있는 것에 대해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으로 불리는 이영로씨에 대해 부산 지역에선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8년 선배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을 뿐, 부산 내에서 주류권에 드는 기업인은 아니었다”고들 한다. 이씨가 대통령 주변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희생양’이 된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의 힘을 업고 뭔가 의혹을 살 만한 일을 실제 한 것인지는 조만간 그의 입을 통해 규명 작업에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황성혜 주간조선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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