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단 '왕재산' 10여년간 암약… 北에 충성맹세하고 남조선 혁명 내걸어
北225국 지령받는 왕재산 - 구속된 5명, 80년대 NL 출신… 北과 해외서 20여차례 접선
국회 입성하려 공천 신청도… 관련자들은 전원 묵비권 행사
월간지 '민족21'도 수사 - 왕재산과 연계 여부 정밀추적… "일부 從北, 홍보수단에 악용"

북한 노동당 대외연락부의 후신인 '225국'의 지령을 받고 10여년간 암약해온 간첩단 '왕재산' 사건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인천에서는 기초단체장 10명(구청장 8명, 군수 2명) 가운데 3명이 이들 조직의 포섭대상에 오를 정도로 간첩단이 뿌리를 내리고 활동했다고 공안당국이 밝혔다.

◆80년대 운동권 주축인 '왕재산'

공안당국에 따르면, 보안업체 J사 대표 김모씨가 총책인 지하당 '왕재산'은 남한 사회 곳곳에 지하당을 구축하라는 노동당의 지령에 따라 정계·노동계·학계 등 과거 1980년대 '민족해방(NL) 계열'의 운동권 출신들을 조직책으로 확보하고 세포를 확대해왔다. 구속된 김씨 등 5명은 1980년대 초·중반 대학을 다닌 NL계열 운동권 출신이며, 조직원들은 '왕재산 올림' 등으로 통신을 주고받았고, '남조선 혁명'을 추구하면서 북한에 '충성맹세'를 했다고 공안당국은 밝혔다.

왕재산은 김일성이 1933년 항일무장 투쟁을 국내로 확대하는 전략을 제시했다고 주장하는 함경북도 온성에 위치한 산이름이다. 북한이 성지(聖地)로 떠받드는 왕재산을 조직 이름으로 따온 이들은 국내의 군사기밀과 정치·사회 정세를 수집, 북한에 보고하거나 중국·일본에 나와 있는 공작원 등을 통해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총책 김씨는 1994년 이후에만 일본 38차례, 중국 18차례 등 59차례 해외로 나가 10여 차례 북한 공작원을 만났다"면서 "구속된 5명은 최소 1회 이상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들과 접선했다"고 말했다.

총책 김씨는 1990년대 초 북한과 연결된 뒤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암약해왔다고 한다. 서울지역책 이모(구속)씨는 2000년 무렵 김씨에게 포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임채정 전 국회의장의 정무비서관과 민주당 대외협력 부위원장을 거쳐 2008년 총선에 민주당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했다. 총책 김씨는 또 자신이 운영하는 J사의 공동대표인 임모씨를 통해 경인지역 노동계와 정치권 인사들을 관리·포섭해왔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임씨가 포섭대상으로 접촉한 인사들 가운데는 민노당·민주당 소속 구청장 3명도 포함돼 있어 이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이 조직은 경인지역의 한 인터넷 방송사를 인수해 조직 활동에 이용하려는 계획까지 수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월간지 '민족 21'도 수사 중

공안당국은 지난 6일 월간지 '민족21'의 편집주간 안모(43)씨와 부친 안모(78)씨, 편집국장 정모씨 등 3명의 집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뒤 최근 소환 조사했다. 1979년 '남민전' 간첩사건으로 복역했던 아버지 안씨는 1994년 '구국전위' 사건으로 아들과 함께 구속된 전력이 있다. '민족 21'은 2001년 3월 창간호를 낸 뒤 최근까지 125호를 발행했으며, 발행인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인 명진 스님이 맡고 있다. 수사 관계자는 "일부 종북(從北) 세력이 '민족21'을 홍보 수단으로 악용하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당국은 왕재산의 선전책을 맡은 유모씨(K사 대표·구속)가 '민족 21'의 감사를 지낸 사실을 확인하고 두 조직의 연계 여부를 정밀 추적하고 있다.

당국은 지금까지 관련자 20여명을 조사했으나 전원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관계자는 "관련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인적사항은 물론 모든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해 조서(調書)를 작성할 수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당국은 다른 방법으로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관련자들의 활동내역이 담긴 증거물들을 법원에 제시해 구속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온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