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언론을 통해서 보도된 바와 같이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한·중 간의 역사 분쟁이 재연되고 있다. 하지만 동북공정의 실체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역사 분쟁을 넘어서 외교적 갈등 차원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은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과제를 일컫는다.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즉, 고구려사를 비롯해서 고조선사, 발해사를 자의적으로 해석,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고 이들을 중국 변방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음모인 것이다.

동북공정의 실질적인 목적은 중국의 전략지역인 동북지역, 특히 고구려, 발해 등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어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역사, 특히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19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한국사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9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구하면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부활시키더니 중국 동북사의 일부로서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논란의 귀결은 결정돼 있다. 역대 중국 역사서에서 고구려는 중국 밖의 나라라고 했다. 우리 역사서는 모두 고구려를 민족사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 어느 쪽의 고전도 고쳐 쓸 수 없다. 그런데도 오늘날 중국학자들이 전에 없던 주장을 펴면서 언뜻 보아 대처하기 힘든 것 같은 논거를 대고 있어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주장과 우리의 반론

동북공정이 우리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동북공정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 중 고구려를 비롯해 고조선, 발해 등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연구들이 다음과 같이 한국사를 크게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고구려는 중국에서 발생한 지방정권이라는 것이다. 고구려가 한(漢) 무제 때 현도군의 고구려현에서 시작되었으므로 고구려사가 중국사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책봉 및 조공을 통해 보았을 때 고구려가 독립국이 아닌 중국의 속국이라는 것이다. 중국 황실에 신하로 속해 있어 ‘고구려후, 정동대장군, 영주자사, 낙랑군공’ 등의 책봉을 받았음을 명시하고 북위, 북제 등 5호16국 변방에 있는 나라에도 조공을 바쳤다고 주장하며 고구려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논리이다. 셋째, 고구려 멸망 이후 대부분 고구려인들이 한족에 융화되었다는 주장이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극소수의 고구려인들만이 신라에 투항해 조선족화했을 뿐 대부분의 고구려 유민들은 중국 서쪽 변방지역에서 한족화했고, 동북지방에 잔존하던 고구려인들도 말갈인화했다. 말갈인이 세운 나라가 바로 발해이고, 따라서 발해사 역시 중국사의 일부라는 것이다. 넷째,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은 국내 전쟁으로, 중원의 통일정권이 변방의 소수민족 세력을 통제하면서 전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다섯째, 고려는 고구려 계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선 건국 왕조의 성(姓)이 고 씨와 왕 씨로 각각 다르고, 특히 고려는 당나라 계통의 신라인들이 세운 국가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우리 측의 반론은 첫째, 고구려는 옛 북부여, 졸본부여의 본거지에서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고구려인들은 북부여인, 졸본부여인과 같은 예맥족으로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거주하였다. ‘한족만이 중국을 설립했다.’는 중화의식에 근거했을 때, 북부여, 졸본부여는 중국의 나라들로 고구려 역시 중국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 신라까지도 중국과는 책봉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고 반박한다. 당대의 조공이라는 개념은 ‘조공과 회사’라는 호혜적인 입장에서 시행된 무역과 같은 관계로 동아시아의 외교 형식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셋째, 한족화했던 고구려인들은 당의 사민정책으로 끌려간 것이고, 당나라인들은 고구려인들을 전쟁 포로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신라에 투항한 고구려인들은 자발적인 투항으로서 민족의식의 발로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동북지역에 잔존했던 세력은 말갈인화한 것이 아니라 이후 발해의 씨족이 되었다. 이는 고구려의 자의식이 신라, 발해로 계승되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넷째,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을 국제전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그 증거로 당의 고조가 영류왕에게 보낸 문서에 ‘두 나라의 화평, 수나라 포로 귀환 요구’라는 글귀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왕 씨 성 자체가 고려 왕실에서 만든 성이고, 건국 세력이 ‘훈요십조’에서 서경을 중시했다는 점과 발해 유민 역시 고구려인으로 보고 흡수하려 한 사실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응 방안

중국의 동북공정은 바로 이러한 주장을 중국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중국이 고구려사뿐만 아니라 고조선사와 발해사까지도 한국사의 영역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만약 고구려, 발해사가 중국사에 귀속된다면 한국사는 시간적으로는 2,000년, 공간적으로 한강 이남에 국한되어 한국사의 근간이 크게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의 동북공정은 향후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아시아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전 단계의 정지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세계는 지역 단위로 블록화해가고 있으며, 동북아 역시 빠른 시일 내에 하나의 권역으로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다가올 이 시대에 과연 누가 동북아의 맹주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중국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동북공정을 통해서 조직적인 역사 왜곡을 진행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점을 주시하면서 감정적이기 보다는 학문적으로 논리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첫째, 국가 차원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철저한 학문 연구와 외교 정책은 구분되어야 한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심각성에 대하여 적잖은 지적을 해 왔다. 이제 학계는 물론 정부와 사회 각 분야의 관련 기관들이 사안의 심각성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학술적인 대응을 기본으로 하고, 이에 덧붙여 국가 전략 차원에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적 대응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동북공정은 고구려사, 발해사 전공자들이 맡아서 대응할 일만은 아니다. 중국의 주장을 하나씩 들어 논박하는 수준의 대응을 하다보면, 중국과 같은 수준의 정치적 학문으로 전락하게 된다. 즉, 우리의 학문이 퇴보한다는 의미다. 시야를 크게 열고 학문의 보편성에 대한 신뢰를 키움으로써 한국사를 넘어 동아시아사, 더 나아가 세계사 전반을 바람직하게 해명하는 성과를 얻어야 한다.

둘째, 역사 교과서 문제는 일본과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와는 다른 출판사 중심의 교과서 연구, 집필, 심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 식대로 접근하다 보면 외교적인 분쟁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강력한 항의에 중국 외교당국이 내년도 검정 예정인 역사 교과서에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외교적 언사가 구두로 나왔을 뿐 확실한 보장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역사 교과서에 수록되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작 고구려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이라고 교과서에 기술하는 것을 감행하고, 중국 외교당국이 지방 민간학자들의 활동임을 내세워 방어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따라서 단발성이 아니라 논리적·학문적· 적으로 필요하다.

끝으로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역사 교육 전문가들은 사회 교과로부터의 역사 교과의 독립과 수업 시간의 확대, 수능시험 필수과목으로 지정 등을 통한 역사 교육 강화가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사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 교육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적 조건의 확보 및 평가를 통해서 한국사에 대한 관심 유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