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역습?…검찰 청구 영장 무더기 기각

검찰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을 비난한 뒤부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이 무더기로 기각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는 지난 12일 정부로부터 지급받은 연구개발비 2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M사 대표 김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사적인 용도로 쓴 것이 아니라 회사 운영을 위해 돈을 썼고, 변제의 기회를 줘야 하며 불구속수사가 원칙"이라는 등의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지난 13일 횡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업체 두 곳의 금융계좌를 추적하기 위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의 금융계좌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두 차례 청구했으나 역시 모두 기각됐다.

검찰은 불만이다. "비슷한 유형의 사건에서 혐의가 더 가벼운 경우에도 기존에는 영장이 발부됐었다"며 "영장 발부와 기각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의심스러운 계좌를 살펴보기 위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는데 의심스러운 계좌를 콕 찍어서 영장을 청구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중앙지검이 집계를 해본 결과 지난 12∼18일까지 일주일 동안 청구한 구속영장 가운데 기각된 비율은 3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3월까지 서울중앙지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의 기각률이 22%였던 점에 비춰보면 10%포인트 정도 급증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에 대해 맹비난을 퍼부었던 지난 11일 이후 영장 기각이 갑자기 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김주현 3차장은 11일 "아무런 근거없는 예단과 추측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며 "피고인에게 불리한 핵심쟁점들은 고의적으로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고 법원을 공격했다.

이와 관련해 한 검찰 관계자는 "갑자기 영장 기각이 크게 늘어난 것과 지난주 검찰의 법원 비난이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 부서가 청구한 영장이 법원에 의해 다수 기각된 것으로 알려졌고 이를 두고 한 검찰 관계자는 "지난주 3차장 산하 영장이 전멸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일단 이번 주까지는 지켜보겠다"고 밝혔으나 법원의 고유권한인 영장 기각에 대해서는 사실상 뚜렷한 대응방법이 없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기각률은 일정기간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있고, 사건의 성격도 다를 것"이라며 "일시적 현상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을 너무 연관 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법원 관계자도 "영장 전담 판사들이 일정한 기준을 갖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영장을 발부하거나 기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검찰의 주장은 억측같다"고 일축했다.

CBS사회부 조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