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인만
■“중국에 박 대통령 같은 주석이 있었다면…”
중국 지도부가 박근혜 대표를 극진히 예우하는 것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이라고 신문에서는 쓰고 있지만, 그것은 박 대통령이 이룩한 ‘한국의 격렬한 탈바꿈’과 거기에 영혼을 바친 한 지도자에 대한 당연한 평가다. 그리고 거기에 박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그들의 숨김없는 선망과 경의가 굳게 자리잡고 있음 또한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가. 지난날 서양으로부터, 가까이는 일본으로부터 수모와 아픔을 겪은 나라로서 아마도 국력 키우기에 대한 한맺힌 갈망은 우리 못지 않을 것이다. 그런 중국에게 한국의 박정희는 참으로 놀라운 존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가난뱅이가 부자되는 것은 얼마든지 볼 수 있어도 세계에서 100등 밖에 버려져 있던 극빈의 나라가 불과 몇십년도 안되는 세월에 10위권으로 올라서는 것은 부(富)가 부를 낳고 가난은 가난을 낳는 냉엄한 역사 흐름에서 좀체로 볼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한번 찾아보라. 세계를 다 뒤져서 한국 같은 환골탈태가 있는지, 더욱 냉전과 분단의 고통 속에서 한마디로 ‘나라 팔자’를 고친 사례가 있는지를 보라.
중국인들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 한국인이 북경에서 상해를 가는 14시간 동안의 기차여행에서 신화사 통신에 근무하는 청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 적이 있다.
“…60년대 당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은 자원도 기술도 전무한 상황이라 경제발전의 단초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산업이라는 것 자체가 전무라 해도 좋았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경제발전이란 눈사람을 만드는 일과 같다. 눈사람을 만들려면 주먹만한 눈을 뭉칠 수가 있어야 하는데 이 주먹만한 눈뭉치조차 만들 만한 눈이 한국에는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청년은 우리의 누나나 어머니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수출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여기서 박 대통령의 능력이 놀랍다고 했습니다. 국가 자원을 총동원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랍니다. …20년 동안 한국인은 고생했답니다. 노동자가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였고, 후세의 지금 당신들이 누리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위상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60년대에 중국에 박 대통령 같은 주석이 있었다면 지금의 미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곳 디지털국회에 공서환님이 올렸던 글이다.
만일 한국이 오늘처럼 변하지 못하고 북한처럼 지지리 궁상이라면 중국이 관심을 가질 까닭이 없다. 한국은 근현대사의 희한한 성공사례이며 그것이 한 지도자의 집념에 의해 가능했음을 보면서, 거기에 중국인들이 큰 자극을 받았음은 이번 박근혜 대표의 중국 방문만이 아니라 그 전부터 여러 가지 모습으로 관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유신공주’를 환대하는 수구꼴통의 중국 지도부?
박근혜 대표의 중국 방문은 중국인들이 보는 박정희에 대한 답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한나라당 국회의원 몇명이 북경에서 탈북자들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려다가 공안으로부터 제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 몇개월 전이다. 이번 박대표를 수행한 의원들은 생딴판이다. 영빈관에서 머물며 중국측이 제공하는 고급 승용차를 이용해서 교통이 통제된 거리를 에스코트까지 받아가며 막힘없이 질주하고 있다. 사람 대접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어 어안이벙벙할 지경에다, 박대표가 감기가 심한 것을 배려해서 중국측이 다른 사람 사정은 볼 것도 없이 에어컨을 끄는 바람에 ‘더워서 죽을 뻔했다’는 전여옥 대변인의 말에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한편 중국측이 박대표 일행에게 박 대통령에 관한 책을 부탁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책은 책이로되 <만화 박정희>를 만들어 ‘박정희 때리기’에 열을 올리는 권력 외곽의 기회주의가 판을 치는 이 나라의 비정상으로 뒤틀린 정치 현실에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정치가 정상이라면 중국 지도부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박정희 전임 대통령의 업적을 말하고 그의 지도력을 엿볼 수 있는 책을 부탁했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가상이라도 할 일인가.
중국은 박정희를 배우려 하고, 우리는 박정희를 때린다!
중국이 저런다고, ‘유신공주’를 환대하는 수구꼴통의 중국 지도부라고 욕하겠는가? 볼멘소리를 군시렁거리기는 하겠지만 어쩔 것인가. 이 땅의 집권 세력과 반(反)박정희주의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중국 지도부가 저러하니 대륙 전체에 박정희 향수병이 만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렇다면 박근혜 대표에게 하듯 중국에 대해 빈정거리고 향수병자 운운하며 욕설을 퍼붓겠는가. 한심한 것이 ‘박정희 때리기’는 어디까지나 국내용 선전선동일 따름이니 그들 스스로 우물안 개구리임을 자인하고 있음에랴.
집권 세력의 빅이벤트인 ‘박정희 때리기’는 명백한 정치 테러다. ‘살아 있는 입’ 수만개가 ‘한 망자(亡者)의 침묵’에 집단 린치를 가했지만, 그러나 ‘살아 있는 입’들은 ‘침묵’ 앞에 패배했다. 판정을 내린 것은 여론이다. 국민이다. 호남에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데도 박근혜 대표는 장대높이뛰기를 하고 있음과, 광주에 가면 극소수 해코지하는 사람을 빼놓고는 수많은 길거리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고 있음과, 그리고 박근혜 미니홈피 방명록에 투표권도 없는 10대들이 몰려들고 홈피 개설 1년만에 방문 조회수가 3백만을 육박하고 그 다음 간다는 정치인이 고작 몇만을 기록하고 있음 등등이 사실상 ‘박정희 때리기’가 국민에 의해 제지당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이 안되고 있다.
■고독한 정열, 부정할 수 없는 매력
얼마 전에 결혼식 주례를 하러 인천에 왔던 소설가 H씨는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말 끝에 노무현 정권 이야기가 나오자, 일단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접시에 내려놓았고, 다음에 종이컵을 들더니 소주를 따라 두어차례 마셨고, 그런 다음 얼굴에 조소(嘲笑)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가만 있는 박정희는 왜 끌어내 짓밟느냐 말이야.”
그는 노정권의 ‘박정희 때리기’가 박정희 전대통령에게 반감이나 유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오히려 박정희 옹호론자로 만들고 있다면서, 그 자신도 유감을 가진 사람인데 곰곰 생각하면 박정희의 ‘고독한 정열’만은 부정할 수 없는 매력이라고 했다.
고독한 정열!
부정할 수 없는 매력!
그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이미지를 예리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언론사와 출판사 출신들, 문인과 화가들 몇몇이 한달에 한번씩 만나 소주를 마시는 친목 모임이 있다. 술청 선반에 올려진 텔레비전에서 9시 뉴스데스크가 ‘보기 싫은 그림’을 비추자, 통신사 외신부장을 지낸 원로 한 분이 잠깐 체통을 잊은 듯 느닷없이 텔레비전 뉴스의 주인공에게 ‘모욕적인 주먹총’을 들이댔다.
“아주머니, 저것 좀 끌 수 없어요?”
일행의 성화에 텔레비전은 먹통이 되었다.
어쨌든 그 바람에 정치 얘기가 잠깐 술상에 올랐다가 치워졌는데, 박정희 전대통령과 과거사 부분에 관하여 집권 세력에게 던지는 대강의 말은 이러했다.
“제까짓 것들이 뭔데, 뭘 안다고, 뭘 했다고, 무슨 자격으로!”
집권 세력의 정치 행태를 한마디로 ‘까불고 있다’고 폄하하는 말이 주류였고,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박근혜 죽이기’ 손익계산
정치 얘기가 술맛을 돋구는 곳도 있었다. 지난 4월말 재보선 얘기다.
“아무리 성적이 불량해도 그렇지, 학생이 시험을 안치르면 모르되 시험을 치렀는데 객관식 23문제 중에 한개도 못맞춘단 말인가. 아닌말로 연필만 굴려도 바닥 점수는 나올 것이요, 23문제 모두 열린당 기호대로 1번에다 동그라미를 쳐도 몇점은 나올 게 아닌가. 그런데 빵점이 뭐야, 빵점이. 이건 기네스북 감이야.”
박근혜 대표를 좋아하는 여성 한 사람은 23대0 재보선 결과가 믿기지 않아 대낮에 길거리를 걸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고 말한다. 원래가 조신하고 자기 억제력이 강한 여성인데 재보선 결과가 그녀를 그만 흐트려놓아 ‘미친 년처럼 웃고 다녔다’고 스스로 털어놓으면서 얼굴을 붉혔다.
청와대와 열린당은 시중의 여론이 어떻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다. 그동안 가열차게 파상적으로 전개해 온 ‘박정희 때리기’의 손익계산서를 놓고 손해본 장사였다고, 적자도 엄청난 적자였다고 비로소 절감하는 모습이 빤히 보이고 있다. 그들이 기대했던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반감 부추기는 거꾸로 그들에 대한 반감과 혐오감을 증폭시켰음과, 그리고 그것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박근혜 한사람이 휘젓고 다닌 재보선에서 참패로 나타났음과, 총체적으로 결국 ‘박정희 때리기’는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를 찍어 누르고 그들이 바라는 정권 재창출을 이룩하는 선전선동의 대박 카드가 아니라 자충수요, 자살골밖에 안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더이상 드러내 놓고 소동을 피우지 못할 지경인지라, 알게 모르게 박근혜 대표에 대한 표면적인 공격은 슬그머니 중단된 채 지하로 또는 외곽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술상의 변화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박근혜 대표가 과거 야당 대표들처럼 외국에 나가 집권 세력을 비난하는 소리라도 한다면, 옳다구나 해서 박대표를 무차별 몰아칠 텐데, 그게 아니다. 저들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얘기를 해주고 오히려 도와주는 국익외교를 하고 있으니 고맙지 않아도 고마운 체하기도 그렇고, 좋지 않으면서 좋은 체하기도 그렇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정신이 혼미할 지경일 터이다.
■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만리장성을 걸으며
박대표 일행의 중국 방문 핵심 테마는 북핵과 6자회담이다. 수없이 띄워지는 북경발 외신이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는 식이라 북핵에 관한 중국의 입장이 뭔지 가닥이 잡히지 않았는데, 중국 지도부는 박대표 일행에게 저들의 생각을 솔직히 전해준 것으로 보인다.
내외적으로 공감하듯이 평양에 북핵 특사가 간다면 박근혜 대표만한 적임자가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으로선 못할 짓인 모양이다. 죽으면 죽었지 못할 짓이라는 표정이 빤하다. 박대표가 평양에 가서 획기적인 성과를 끌어내기라도 한다면 다음 대권은 물 건너가지 않겠는가. 국제사회의 중대 현안을 해결하고 한반도에 드리운 먹구름을 걷어버리는 일이지만 정권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여기엔 국익도 없고, 국민의 안위도 없다. 권력의 소름 끼치는 속성만이 도사려 있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의 정치색은 처음에 증오였다. 증오에서 다음엔 독선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오기가 판을 치고 있다. 보수집단에서는 저들을 좌파라고 하고, 그들 자신도 처음엔 다수가 이를 시인하더니 중도 좌파, 중도 우파 등으로 왔다리갔다리하고 있다. 또 반미친북이니, 반미친중이라고도 하지만 두루뭉술한 정체성이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것을 보노라니 결국은 씨알맹이도 없는데 다만 한가지 과거사를 뒤집겠다는 오기만은 버리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한지라, 좌파적 향수병에 깊이 매몰되어 허우적거림이 족보상 한참 높은 항렬에 있는 중국이나 북한에서 보기에 얼마나 가소로울 것인가.
알다시피 홍위병의 돌개바람, 천안문 사태 등을 겪은 중국이다. 그러나 20년 전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혁명의 수출을 포기하고 개방과 실용주의로 전환하면서 마오쩌뚱을 뒤집어버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마오쩌뚱은 중국의 자존심 그 자체인 것이다. 그 이후 어떤 지도자도 과거의 아픔을 장강(長江)에 던져버린 양, 세월 흐름에 맡겨 치유를 기다리며 과거 정권의 연장선상에서 중국이란 나라를 경영해 왔다. ‘박정희 때리기’로 과거를 욕보이는 데 엄청난 정치력을 소모하는 우리와 다른 점이 그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박근혜 대표와의 만남을 통해서 이 나라 집권층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당신들은 역사를 잘못 읽고 있습니다.”
나는 이 무언의 메시지를 읽고 있다.
박근혜 대표가 만리장성을 산책하는 그림을 보았다. 인공위성에서도 육안으로 보인다는 만리장성은 장구한 중국 역사의 상징이며 동북아를 조망하는 시대적 공간이랄 수가 있다. 북한산을 오르듯 가벼운 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스스럼없이 만리장성을 산책하는 박근혜, 그는 동북아의 현실 속에 자신을 세워놓고 있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오만해진 일본, 예측불허의 북한, 그리고 한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대비하여 동북3성 조선족 사회에 대한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중국 등 동북아의 격랑 속에 그가 들어가 있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고 국가와 운명을 함께 하는 지도자의 길로 그가 발을 깊숙히 들여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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