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129 달/
脫出記//남자끼리 싸울 때 여자가 지킬 일
26일부터 오늘까지 중학교 3개 학년 1·2학기용 국어 교과서 여섯 권에서 시들만 골라서 읽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도 푹 빠져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통독했다.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신명기]에서 읽은 구절이고, 중학교 3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서는 다산 정약용 어른이 남긴 불후의 명시 [적성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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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맞붙어 싸우는데 한 사람의 아내가 얻어맞는 남편을 도울 셈으로 손을 내밀어 상대편 불알을 잡았을 경우에는 그 여자의 손을 잘라 버려야 한다. 조금도 애처롭게 여기지 말라. <신명기 25장 11·12절>---
이 엄격한 율법이 과연 어느 정도 지켜졌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의 남북한의 대치상황에 적용한다면, 보안법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이에 해당된다고 본다.
"보안법을 건드리는 자의 '주둥이'는 인두로 지져야 하느니라."라는 벌칙을 보안법에 집어넣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쓰잘 데 없는 망상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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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적성촌에서
정약용(丁若鏞) 지음
송재소(宋載邵) 옮김
시냇가 헌 집 헌 채 뚝배기 같고
북풍에 이엉 걷혀 서까래만 앙상하네.
묵은 재에 눈이 덮여 부엌은 차디차고
쳇눈처럼 뚫린 벽에 별빛이 비쳐드네.
집 안에 있는 물건 쓸쓸하기 짝이 없어
모조리 팔아도 칠판 푼이 안 되겠네.
개꼬리 같은 조 이삭 세 줄기와
닭 창자 같이 비틀어진 고추 한 꿰미
깨진 항아리 새는 곳은 헝겊으로 때웠으며
무너앉은 선반대는 새끼줄로 얽었도다.
구리 수저 이정(里丁)에게 빼앗긴지 오래인데
엊그젠 옆집 부자 무쇠솥 앗아 갔네.
닳아 해진 무명 이불 오직 한 채 뿐이라서
부부유별 이 집엔 가당치 않네.
어린 것 해진 옷은 어깨 팔뚝 다 나왔고
날 때부터 바지, 버선 걸쳐 보지 못하였네.
큰아이 다섯 살에 기병(騎兵)으로 등록되었고
세 살 난 작은놈도 군적에 올라 있어
두 아들 세공으로 오백 푼을 물고 나니
빨리 죽기 바라는데 옷이 다 무엇이랴.
강아지 세 마리가 새로 태어나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잠을 자는데
호랑이는 밤마다 울 밖에서 울어댄다.
남편은 나무하러 산으로 가고
아내는 이웃에 방아 품 팔러 가
대낮에도 사립 닫힌 그 모습 참담하다.
점심밥은 거르고 밤에 와서 밥을 짓고,
여름에는 갖옷 한 벌, 겨울엔 삼베 적삼.
땅이 녹아야 들냉이 싹 날 테고
이웃집 술 익어야 찌기라도 얻어먹지.
지난봄에 꾸어 온 환자미가 닷 말인데
금년도 이 꼴이니 무슨 수로 산단 말가.
나졸놈들 오는 것만 겁날 뿐이지
관가 곤장 맞을 일 두려워 않네.
오호라, 이런 집이 천지에 가득한데
구중궁궐 깊고 멀어 어찌 다 살펴보랴.
한(漢)나라 벼슬인 직지사자는
이천석 관리라도 마음대로 처분했네.
폐단과 어지러움 근원이 혼란하니
공수, 환패 다시 온들 바로 잡기 어려우리.
정협의 유민도를 넌지시 본받아서
시 한 편에 그려내어 임금님께 바치리다. <198, 19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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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原註)에 나의 주해를 덧붙임 ***
1) 적성촌 : 오늘의 경기도 연천에 있었던 마을
1) 쳇눈 : 가루를 걸러내는 체의 구멍
2) 이정(里丁) : 요즘의 지방공무원
3) 군적(軍籍) : 요즘의 병역대상자
4) 세공(歲貢) : 군포. 군인의 신분으로 등록된 사람이 군 복역하는 대신 나레에 바치던 삼베와 무명.
5) 사립 : 나뭇가지로 엮은 대문
6) 갖옷 : 가죽이나 털가죽으로 지은 옷
7) 환자미(還子米) : 관청에서 빌려 온 곡식
8) 직지사자(直指使者) : 직접 천자의 지휘를 받아 지방을 순찰하던 관리로서, 우리 나라 암행어사와 직책이 비슷함.
9) 이천석(二千石) : 지방방관, 특히 태수(太守)를 이름.
10) 공수, 황패 : 중국 한나라 때 백성을 잘 다스렸던 관리.
11) 정협 : 백성의 참상을 그린 그림을 임금에게 바친 화가.
* 교과서에서는 연 가르기를 하지 않았음.
나는 다산의 시를 거듭 읽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다산은 이 시를 지으면서 필시 눈물을 흘렸을 터. 송재소님도 눈물을 머금고 이 시를 번역했을 터. 나 역시 이 시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읊어보면서 가슴 한 구석에 눈물이 괴는 것을 겉잡을 수 없네. 북한의 어느 하늘 아래서 반동분자 가족이라고 학대받으면서 헐벗고 굶주리다가 숨을 거두었을는지도 모르는 어머니와 누이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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