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애국논객이신 조갑제(趙甲濟) 님께서 한자혼용을 종종 강조하다가 요즈음은 그 정도가 뜬금없이 심한 것 같아서 한마디 한다.
19세기 말을 비교해보자.
문화민족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는 98% 국민이 글을 모르는 문맹자였고, 야만민족이라는 일본은 국민의 85%가 글을 아는 문명자였다.
그 이유는, 조선은 상업을 천시하는 저생산구조 하에서 어려운 한자를 택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이 문자를 배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며, 일본은 막부시대 이후 상업을 진흥함에 있어 정부에서 그 자격을 부여하였는데, '부기'시험을 치러서 합격한 자에 한하여 상업허가를 하였던 것이다.
금전적 욕구동기를 문화적 정책목적에 부합시킨 것이다.
최근 우파인터넷에 "한글專用주의자는 보수주의자 아니다"식으로 일부러 한자를 주로 사용한 글이 등장하고, 대표논객 조갑제씨도 한자혼용을 주장하는데, 이에 한마디 하고자 한다.
지금 우리나라 학생들의 과목별 실력 중에 가장 문제되는 것이 있다면 영어·한문이 아니라 수학이다.
벡터나 삼각함수 미적분은 차치하고라도 기초 미적분과 확률통계도 모르는 공대생이 수두룩하다.
각종 인쇄용지 간의 길이 배율인 √2배와 넓이 배율인 2배에 대한 기초감각조차 없다.
심지어 혹자는 실생활에 적용되지도 않는 수학을 억지로 배워서 뭣하냐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동양이 서양보다 퇴보하게 된 근본원인 중에 학문분야를 들자면 "수학"부문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특히 기하부분은 더욱 심했다.
모든 공학은 수학이 존재하므로 성립하는 것이고, 세계 공통 문자는 아라비아 숫자이며, 미드웨이 해전에서 보듯이 2차 대전 이후 각종 전쟁사를 보면 수학적 판단력이 없는 지휘관은 곧 패장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었다.
지도자다운 품위를 갖추는 데는 한자가 필요하나, 한자는 그만한 생산성을 수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과도한 한자사용은 새로운 의사소통의 장벽이 된다.
또한, 골키퍼, 센서, 컴퓨터, 엔진 같은 말처럼 한자 조어를 통한 우리말로 변형하는 순간 오히려 의미가 헷갈리므로 그냥 원어 그대로 쓰는 것이 편한 경우도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과도한 한자사용을 강조하는 것은 마치 영어공용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영어 잘 한다는 자랑을 더럽게 할 데가 없어서 “절대로 어렵게 외우기만 해서는 안 되고 이해를 해야 한다.”식으로 주장하며, 저절로 이해가 잘된 자기 머리를 자랑하는 것과 같다.
영어교육에 대하여 조기유학 어쩌고 하며 아무리 투자해도 과거에 억지 외우기 한사람보다도 못한 현실을 보면 이는 확연하게 거짓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어에 달통하다고 해서 외국 선박설계도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박에 대한 공학적 지식 자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자 또한 달통하다고 해서 정보수집능력이 빠른 것도 아니다.
해당분야의 지식 컨텐츠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대신, 어휘의 조어에 밝기에 추론능력이나 언어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상당히 필요한 점은 인정한다.
이렇게 볼 때 교육을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자와 영어는 이해하기 위한 도구(Tool)이요, 전문지식은 내용(Contents)이며, 수학은 전자들을 활용하여 합리적 판단을 하기위한 논리 체계(System Software)로 볼 수 있다.
즉, 언어로 표현된 지식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데는 수학이 최고라는 뜻이다.
전자개표 조작이나 광우병 선동, 식량부족을 구실로 내세운 북한의 대북지원 요구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취약한 구조도 알고 보면 수학적 인식체계의 결여에서 나온 현상이다.
즉, 거짓을 깨는 데는 수학이 필수라는 것이다.
미국이 달 착륙한 지 40년째 접어들고 있다.
그 정도면 유인우주선 한번 띄우지 못한 우리로서는 지금의 탐사 수준은 알 수가 없다.
일본은 이번에도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 정도면 그들의 기초과학의 축적은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기껏 반도체·조선 가지고 일본 꺾었다고 생각하기엔 이르다.
이러한 현실을 놔두고, 한자교육의 강화를 주장하는 데는 나 자신도 동의할 수 없다.
이는 핵물리학자에게 갈릴레이의 실험을 안했기에 기초가 없다고 질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도 한문은 꽤 공부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문이 과연 일반인에게 그렇게 필요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알고 있는 한자 안 까먹으려고 애쓰다 보면 다른 일상이 느리게 진행되는 것 밖에 없었다.
특히 좌익들의 망동에 대한 비판과 투쟁에 있어서, 저들의 망동을 구별해내는 판단력의 기초가 한자이해 능력이었는지, 수학적 논리체계였는지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한자이해 능력은 아닌 것 같다.
부시맨에게 어음·수표 줘봐야 불살개로 쓰고 말듯이, 수학적 기초가 없으면 막대한 처리능력을 가진 컴퓨터도 오락기기에 불과할 뿐이다.
IT분야 1위이면서도 기껏 인터넷 검색순위를 보면 시사나 지식과 관련 없는 너무나 유치한 분야임을 볼 때, 이러한 문명의 이기(利器)를 통한 무지의 가속화 추세의 원인이 무엇이겠는가.
수학적 기반의 약화 때문이다.
특히 군사정부 이후 들어선 정권마다 너무나 수학과 거리가 먼 인사들이었음에 주목된다.
그래서인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일상의 표현에 있어서 수사(數詞)로 표현해야 할 말을 형용사(形容詞)로 많이 표현하게 된 것이 상당히 느껴진다.
그 때문에 좌파들의 어거지가 먹혀들고, 김빠지는 논쟁이 많아지고, 거짓이 난무하게 된 것으로 본다.
어쨌든, 1,800자 정도의 상용한자 교육은 필요하다. 그래야 최소한의 무지를 깰 준비가 된다.
그 이상의 한자는 고고학자 등 분야별로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사람의 영역이라고 본다.
하지만, 국력의 기초는 문명수준과 의식수준이며, 그 척도는 수학적 사고방식의 정도로 가늠된다.
지금 같은 시기에 뜬금없이 한자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명석함을 자랑하려는 태도 밖에 안 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애국우익 논객이신 분의 2가지 실수라면, “전자개표 문제에 대한 몰이해”와 “한자사용의 강조”를 들고 싶다.
공교롭게도 둘 다 수학적 사고방식과 배치되는 현상인 점도 신기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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