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실용파’와 ‘강경파’간 대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두측의 팽팽한 분위기는 곧바로 극단적 ‘노선투쟁’ 조짐으로 비쳐지며 열린당 내부는 그야말로 ‘폭풍전야’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는 4.30 선거 패배 이후에도 실용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문희상 지도부에 ‘칼날’을 들이대며 당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강경파에 맞서 실용파가 조직적으로 맞설 태세를 보이며 촉발됐다.

중도실용 성향의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이 이미 당내 강경파를 향해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한 데 이어 최근에는 임채정 전 의장, 김덕규 국회 부의장 등 중진들을 중심으로 강경파를 견제하기 위한 중도 성향의 의원 모임이 꾸려질 분위기다.

특히 이들 중진들은 강경파가 주도하는 당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함께 하고 향후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동시에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방침이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에 더해 4·2 전당대회 이후 선거참패 책임론에 휩싸여 제목소리 한번 내지 못한 문 의장이 본격적인 당 전열정비를 위한 물밑작업에 나선 모양새며 당내 일각에서도 ‘지도부의 운신폭을 넓혀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동정론’도 공개적으로 일고 있다.

이와 관련, 문 의장은 최근 “무임승차를 한 사람들이 자기 혼자만 개혁한다고 주장하는 건 자기만 옳다는 도그마에 빠진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사실상 유시민 의원 등 당내 강경파를 겨냥하면서 속내를 털어놨다.

이와 맞물려 최근 실무당직자 인사를 놓고서도 문 의장이 ‘의장 중심의 당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개혁당 출신의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대거 구조조정 작업에 돌입했다는 설도 흘러나오면서 문 의장의 ‘물밑다지기’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모양새다.

동시에 정세균 원내대표는 최근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지도부가 선거를 다 지휘한 것도 아닌데, 선거 결과를 뒤집어쓰고 꼼짝못하는 것은 당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도부 운신폭을 넓혀주는 발언을 한 점도 ‘문희상 체제의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게 당 안팎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아울러 중도성향의 ‘안개모’도 드러내놓고 내색은 하지 않지만 선거참패 원인 논란에 대해 ‘개혁의 중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당내 강경파의 시각을 일축하며 “현실과 괴리된 기간당원에 의한 공직후보자 선정이 더 문제”라며 당 지도부를 구하기 위한 사실상의 ‘백기사’를 자임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문희상 지도부’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안개모’는 특히 “열린당의 향후 노선은 민생경제를 최우선으로 챙기는 실용주의를 견지해야 할 것이며, 기간당원 경선을 통한 공직후보자 선정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당헌·당규 등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개선하는 데 힘을 모으고 당내 입지를 넓혀 나가겠다”며 당내 강경파를 겨냥한 일종의 ‘선전포고’까지 했다.

이와 함께 임채정 전 의장, 김덕규 국회부의장 등 중진들을 중심으로 원혜영 정책위의장, 유인태·배기선·김부겸·임종석·민병두 의원 등도 강경파가 주도하는 분위기에 적잖은 불만을 토로하며 당의 중심을 잡기 위한 중도성향의 의원모임 준비에 나선 것도 귀추가 주목된다.

이들은 특히 중도세력이 결집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지만, ‘안개모’와 청와대·관료 출신들이 주축을 이룬 ‘일토삼목회’ 등의 참여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소속 의원 9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계파’로 발돋움할 조짐이다.

이들은 그러나 모임이 결성되더라고 세를 과시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지금과 같은 양대 계파 체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들의 성향이 당내 실용노선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강경파와의 한바탕 접전이 벌어질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상된다.

이에 맞선 강경파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현재 유시민 의원이 좌장격으로 있는 ‘참여정치연구회’와 장영달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국민정치연구회’를 통합해 ‘범 개혁세력’을 아우르는 세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당의 한 관계자는 “재보선 참패 이후 양 세력은 모두 이번 기회에 전면적인 노선투쟁을 통해 털 것은 털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전해 극단적인 노선투쟁 가능성을 예고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과거 민주당 시절 대선 6개월을 앞두고 빚어졌던 당내 갈등을 언급하며 “어차피 대선을 겨냥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확실히 털고 차기 대선 주자에 올인할 수 있는 당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편, 17일 광주에서 진행된 열린당 혁신위원회 회의에서는 기간당원에 의한 공직후보자 경선을 놓고 실용파는 ‘당심’과 ‘민심’의 괴리현상을 지적하며 개선을 언급한 반면, 강경파는 현행 제도로도 지역민 의사를 반영할 수 있다며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