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는 좌파임을 당당히 선언해왔다. 자랑스럽게 말이다. 그런데 그 놈의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황씨의 충고는 나로 하여금 혼란에 빠뜨렸다. 그리고 훌륭하게 보였던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갖고 있는 비양심과 비논리성 그리고 무원칙적인 변명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최근 정동영 장관의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나 역시도 정장관의 입장에 동의했었다. 하지만 황씨의 충고를 듣고 보니 그동안 나와 내가 속한 진보진영의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모순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 박정희의 경제개발성공을 민주화정책의 성과라고 주장하면?
김대중과 그 지지자들은 햇볕정책의 성과로 이산가족상봉, 금강상관광, 개성공단건설 등등을 이유로 꼽는다. 물론 나도 한때는 그러한 평가에 동의했으나 이성과 양심을 조금씩 찾으면서 그 허구성을 알게 되었다. 만약 어떤 재력가가 과거의 군사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협력해놓고... "내가 민주화정책에 협력했기에 군사독재정권이 경제개발에 성공할수 있었다" 라고 주장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물론 그 사람의 경제적 지원이 군사정권의 경제개발을 도왔을수는 있지만, 그것은 경제성과이지 민주화정책의 성과는 아니지 않겠는가?
2. '독재정권의 권력기반 강화'라는게 햇볕정책의 정의(定義)인가?
물론 경제개발성공은 하나의 성과일수 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에 성공했지만, 김일성은 실패한 경우를 보더라도 정치지도자의 능력을 무시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경제개발의 성과이지 민주화투쟁의 성과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김정일 정권에 뒷돈을 갖다바치고 그 돈으로 시작된 관광이나 공단건설은 김정일 독재정권의 권력기반 강화의 성과이지 어떻게 인권운동의 성과가 된다는 말인가? 독재자에게 돈을 주고 독재자는 그 돈을 받아 독재자에게 이익되는 사업을 했을 뿐인데, 그것이 어떻게 인권정책으로 둔갑될수 있는가?
3. 돈은 받아내는게 성과이지, 돈을 바쳐놓고 그것을 성과라고...?
우리는 예전에 미국으로부터 많은 경제적 원조를 받았다. 그리고 원조를 받는 입장에서는 더 많은 원조를 받아내는게 지도자의 협상능력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북한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자도자적 자질의 무능력을 인정하기 싫어서 남한으로부터의 지원자체를 비밀에 붙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만약 공개한다면... "위대하신 김정일 지도자의 영도력에 감명을 받은 남조선에서 공물을 갖다바치기로 했다" 식으로.. 자랑할 것이다. 김대중은 김정일의 자랑거리를 자신의 자랑거리고 우기고 있다.
4. '돈을 주는 대가로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햇볕정책의 정의인가?
그나마 봐줄수 있는게 이산가족상봉 정도인데... 그래도 이것을 햇볕정책의 성과라고 말한다면 창피스런 일이다. 물론 햇볕정책의 '정의(定義)' 가 '돈을 주는 대가로 약속을 얻어내는 일' 이라는 것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진정 그 목적이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는 것이라면 한심하다 못해 웃기는 일이다. 이산가족상봉은 과거 군사정권시절에도 간간히 있었지만 뒷돈을 갖다 바치는 대가로 성사시키지는 않았다. 진짜 어이없는 것은, 뒷돈주고 약속을 받아냈다는 사실보다도 그것을 햇볕정책의 성과로 선전할수 있는 그 뻔뻔함이다.
5. 독재자 김정일을 지원해놓고, 북한 인권향상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얼마전 국회에서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정부는 왜 북한 인권에 무관심한가” 라는 질문에 “사람의 인권 중에서 굶어죽지 않는 것만큼 절박한 것이 없다. 현 정부가 (북한 인권 향상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반박했다. 말하자면... "인간답게 살 최소한의 인권보다 굶어죽지 않는 인권이 더 중요하다" 는 논리인데 얼마나 그럴듯하게 들리는가? 그러니 나까지도 그런 논리에 지금껏 놀아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진보진영의 사람들은 왜 항상 자신들이 부정했던 논리를 자신들이 필요할때는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6. 그럼 박정희가 굶주림을 해결했으니 박정희야말로 인권주의자인가?
만약 정장관의 논리대로라면, 남한주민들의 가난과 배고픔을 해결한 박정희야말로 인권문제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역시 나는 좌파답게 깨끗하게 승복하지 못하고 변명하고 싶었다. "김대중이가 해결하려 했던 북한의 굶주림과 박정희가 해결한 남한의 굶주림은 그 차원이 다르다고.." 이렇게 말이다. 그래, 어쩌면 나의 변명이 옳은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박정희가 북한의 김정일처럼 악랄한 인권유린과 함께 남한의 경제를 망쳤다면 내가 사람들에게 박정희정권에 협력해야 한다고 강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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