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 퍼오는 사람은 패 쥬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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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지만원
Subject
통일의 허상과 능력의 실상
통일이 [민족의 절대적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통일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 기본적인 철학에서부터 사이가 벌어지면 대화가 어려워 진다. 나는 10년 전에 통일에 대한 강연을 많이 했다. 공무원, 경찰, 기업인, 종교인 집단 등 수 많은 계층의 청중을 모아놓고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옳으냐 손을 들어 보라 했더니 95%의 국민이 전자를 지지했다. 통일이 10년 이내에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 손을 들어 보라 했더니 90%가 손을 들었다. 그런데 벌써 10년이 흘렀다.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통일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10년 전에 강연을 했다. 통일이 어째서 불가능한 일인지, 통일되면 무슨 문제가 있는 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했다. 그리고 다시 의견을 물었다. 통일을 원하는 사람 손을 들어 보라고 했더니 손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10년 후에 통일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10년 전에는 노태우-김영삼 시대였다. 그 때에는 9.11테러도 없었고, 좌익이 대통령이 되어 오늘날과 같이 사회를 사상적으로 적화시키고 내통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때의 나의 통일관이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라는 책에 담겨져 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냉전 이후 최대의 가치관은 이데오르기가 아니라 삶의 질이다. 통일은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수단이지 그 자체로 절대적인 목표는 아니다. 나는 인위적인 통일을 싫어한다. 인위적인 통일에는 군비경쟁과 긴장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러운 통일을 원한다. 자연스러운 통일을 얻으려면 남북한은 먼저 영구분단을 해서 먹히지않는다는 신념하에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 인위적으로 통일하려면 남한은 남한 체제로 통일하고 싶어하고, 북한 역시 북한 체제로 통일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인위적인 통일의 길이 열려있으면 통일 당할 수 있는 길도 열려있다. 지금의 시국이 바로 통일당하고 있는 시국이다. 그래서 나는 영구분단을 원했다. 먹기도 싫고 먹히기도 싫은 것이다].
10년 전에 나는 [통일의 길이 열려있으면 남침의 길도 열려있다]고 썼다. 좀 쑥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그 때 했던 이 말은 지금 생각해도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10년 후인 지금의 말로 바꿔보면 [통일의 길이 열려있었기 때문에 내통-적화 통일의 길이 열렸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만일 그 때에 [영구분단]을 시스템화 해서 통일의 길을 막았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노심초사의 계절은 없었을 것이다.
1998년 8.31. 북한이 대포동 1호를 일본 상공으로 날릴 때, 나는 영남일보 [수요-시스템 칼럼]에 [미국과 북한은 단선로에서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가 됐다]고 예언한 적 있다. 지금 와서 보면 이 말은 틀림없이 맞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훌륭했던 안보전문가들 중에 나의 이 예언에 동의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9.11테러가 발생했다. 9.11테러는 마주 보고 달리는 두 개 기차의 속도를 가일층 가속시켰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국이다.
미국은 이제 시간이 없다. 미국은 김정일을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제거할 것이다. 이는 불과 2-5개월 내에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은 첫째, 핵무기를 용서할 수 없고 둘째, 인간 학대를 용서할 수 없다. 핵무기를 처리하는 데에도 시간이 없고, 북한 주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에도 시간이 없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북한을 점령하면 통일이 이루어질까? 통일이 이루어지면 남한에 대해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북한 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반면 중국은 미국이 북한 땅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을 수용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을 응징하는데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래서 점령된 북한은 국제관리 하에 또 다른 민주국가로 새로 태어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에 대해 아무런 요구를 할 수 없다. 이게 냉엄한 현실이다.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욕심과 뜻만 크게 키우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몸짓에서 떨어진 콩고물이요, 김일성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받는 것도 미국의 덕분이다. 우리 힘으로 한 일이 없지 않은가. 우리의 힘으로 한 유일한 것이 있다면 박대통령의 리더십 아래 세계사에서도 빛나는 경제 중흥을 이룬 것이다. 스스로의 힘과 능력이 얼마 만큼인지도 모르고 주제 넘게 우리는 입으로만 통일을 하겠다 한다.
우리가 무슨 힘으로 북한을 흡수통일할 수 있으며 무슨 힘으로 북한 주민을 김정일 치하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북한을 흡수하고 북한 인민을 해방시키기는 커녕 한심하게도 우리는 지금 통일 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얼마 전 40대 초반의 걺은 사람들이 애국모임을 만들었는데 그들 중에서 나의 통일론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를 영입하기를 꺼려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젊은이들이 떠나는 것이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만나서 통일을 이야기 해보자고 말하기도 싫었다. 통일론에 대해서는 전문가 마다 이론이 다르다. 유명한 안보 이론가인 이상우 교수는 나의 통일론에 눈을 흘긴다. 그는 북한을 무조건 통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확히 10년 전인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흡수통일이 임박했으니 통일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 연구소 소장들이 북으로 진출할 채비를 갖추려 했다. 중앙일보 통일연구소의 기자 출신 연구원이 나를 초청하여 통일 후의 국가경영에 대한 청사진을 만드는 데 동참해 달라고 제안했다, 나는 이들에 대해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었다.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중앙일보 기자의 표정이 지금도 뇌리에 남는다. 그는 나를 이단자 같다며 자제된 막말을 했다. “통일되면 혼 좀 나실 겁니다”. 대기업 연구소 간부들 역시 나의 논리에는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좀처럼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10년 전에 미국 스탠포드 대학 후버 연구소에 가서 처음으로 발표했던 [영구분단 통일론]에 대해 지금도 스스로 경의를 표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 남한과는 관계 없이 미국과 결산을 해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점령하려면 희생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전후의 처리 과정 역시 미국의 소관이다. 우리가 무슨 권리와 능력으로 미국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가?
하늘은 넓다. 우물 안 개구리는 한 아름 남짓한 우물 통 크기로 잘라진 좁은 하늘만 본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것이 하늘의 모두라고 착각한다.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안량한 능력의 대통령 하나 뽑아놓고 앉아 있으면서, 민족과 통일을 논한다. 그리고 북한을 우리 체제로 통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야말로 착각은 자유라는 생각이 든다.
2003.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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