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선 당시, 민주당은 새정치국민회의로 분당해 나간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로 인해 같은 개혁세력이지만 민주당은 새정치국민회의보다는 오히려 이회창 후보가 이끄는 신한국당과 정서적으로 맞닿아 있었다.
조순 전 서울시장을 대선후보로 영입한 민주당은 대선이 다가올수록 신한국당과 합당론에 무게를 싣고 있었다. 그러다 1997년 11월 12일 드디어 민주당은 신한국당과의 합당을 선언하게 되었다.
이 당시 신한국당과의 합당에 결사반대 입장을 표명한 세력이 있었다.
바로 민주당의 이부영 부총재였다. 이부영 부총재는 신한국당과의 전면적 합당 대신 ‘이회창 - ¬이인제 단일화’를 위한 협상대표단을 구성하자는 제안을 내놓았으나 부결됐다.
그뒤 이부영은 "이날 결정으로 디제이피(김대중김종필)의 집권을 가로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두고 두고 아쉬워했다.
그는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보다도 김대중 집권저지를 더 소중한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신한국당과의 합당을 반대했던 그였지만 일단 합당이 된 뒤에는 그의 목표였던 김대중 집권 저지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발로 뛰기 시작했다.
그는 이철, 제정구, 김홍신 등과 함께 새물결유세단을 조직하여 거리 곳곳을 누비며 이회창 당선을 외치고 다녔다.
대선 결과가 김대중의 당선으로 나타나자 그는 예의 야권투사로 변모하여 정국을 냉각기류로 이끄는데 기여한다.
그는 당시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뒤, 총재직을 맡은 이회창의 전략가로 활동하였다.
특히 그는 야당파괴저지투쟁위의 위원장을 맡으며 이회창 총재를 거리로 불러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인천을 비롯한 곳곳에서 김대중정권 규탄집회를 이끌었고, 이회창 총재는 그런 그를 신임하였다. 이 시절 그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의원들을 대상으로 '영정 화형식'을 거행해 국민회의 측으로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했었다.
그는 점차 대립되는 여야관계 속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광주시민들의 피의 대가로 20억원을 전달해준 김중권 비서실장과 함께 부정부패의 몸통과 마당쇠이다. 김 대통령과 야당 생활을 함께했기 때문에 그가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얼마나 거둬 먹었는지 잘 알고 있다"며 저격수로서의 면모도 마음껏 과시했다.
이 당시의 그의 발언은 이부영 어록으로 묶여질 만한 수준의 것들이었다.
조선일보는 이부영 발언만을 모아 특집으로 DJ 공격용으로 편집보도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은 공천헌금을 받아 챙겨 치부(치부)하고, 어마어마한 가족 무덤을 만들고, 일산에 아방궁 같은 집을 짓고서도 자기는 깨끗하다고 사기를 치고 있다"
"제정구 의원은 김 대통령에게 억압받다 속이 터져서 「DJ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자기 밑의 특정 사람만 등용하고, 구조개편을 하면서도 가까운사람만 갖다놓는 썩어빠진 김대중 정권을 심판하자"
더구나 이 시기에 불거진 중앙일보와 김대중 정권과의 갈등에서 이부영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중앙일보를 옹호하기도 했었다.
그는 "현 정권의 중앙일보에 대한 기사와 인사 개입에 대해서는 진상을 밝혀야 한다.
현 정권의 언론탄압은 비단 중앙일보뿐 아니라 다른 언론에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고 본다.
이런 일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국민의 정부에서 일어났다는 데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며 김대중 정권의 언론탑압을 비판했다.
재미있는 점은 현 노무현 정권에서 핵심적인 개혁과제를 언론개혁에 두고 있고, 이부영이 중앙일보를 옹호하던 이 때, 당시 노무현은 김대중 정권 내에서 대 언론공격수로 활약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부영이 이때의 거대언론사 옹호관을 버리고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족벌언론과의 싸움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이부영은 동아투위 당시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이라, 훗날 동아투위 동료들과 함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비판하기도 했었다. 단 동아일보의 해직 관련에만 국한해서였다.
이부영의 김대중 죽이기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심지어 2001년도에는 YS에게 DJ 비자금을 밝혀달라고 부탁하는 일까지 벌일 정도였다.
"김영삼(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김대중(김대중) 대통령 비자금 관련 사실을 밝히라고 요구하자. YS와 DJ가 서로 겨루기만 하다가 사건의 본질이 덮어지는 것 아니냐"라는 강성발언을 하여 한나라당 온건파들이 만류하기도 했었다.
2002년 대선에서는 1997년 대선 때와 달리 그는 그다지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다만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에 대해서만 "“단일화를 해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는 사람들을 뒤에서 조종해 밀고가는 것은 국민들을 또다시 불행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비난했을 뿐이다. 아마도 노무현에 대한 증오가 김대중에 대한 증오보다는 덜한 결과일 것이다.
이런 이부영이 열린우리당 3기 당의장이 되었다.
지역문제 하나만으로 볼 때, 열린우리당은 몸은 호남에 기대고 있으면서 눈은 영남만을 바라보는 형국이다.
영남의 표를 얻으로 끝없이 구애하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숙명이지만, 그러다가 호남의 표도 날아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부영은 바로 이러한 위험도를 극단적으로 높일만한 인물이다.
이부영은 호남차별의 역사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1996년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한 이래 끝없이 반김대중의 노선을 걸어왔다. 김대중을 파멸시키기 위해서라면 이회창 밑에라도 기어들어갔던 것이 그의 정치 인생이었다.
특히 김대중이 복귀하면서 내놓았던 '지역등권론'은 이부영의 눈으로 보면 호남지역주의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의 지역론의 시각은 딱 그 정도에 멈추어 있다. 호남출신이라는 멍에 탓에 어쩔 수 없이 반호남적 행태를 보여온 신기남이나 천정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는 스스로 선택한 반호남의 길을 걸어왔다.
또한 이부영 자신부터 원외이기 때문에 영남권에서 대거 낙선한 원외 인물들과 손을 잡게 될 가능성도 크다.
어차피 그는 당의 세력 관계 내에서 천신정 등의 당권파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부영 체제가 확립되면 열린우리당은 영남권의 원외인사들이 대거 당에 진출하며 지금보다 호남의 색을 벗고 영남으로 다가가기 좋은 모양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과연 영남의 표심이 현재의 열린당을 받아줄 수 있을까?
오히려 호남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김대중이라는 인물과 적대전선을 그어왔던 그가, 호남의 표만 날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10월 재보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평가도 그리 오래걸릴 것 같지 않다.
전임 신기남 의장이 재보선 이후 진퇴 논란에 휘말렸듯이 그 역시 이러한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래 저래 이부영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떨쳐내고 싶어했던 DJ와 호남의 그림자를 한방에 날려줄 수 있는 카드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희극이 될지 비극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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