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6월 25일 ‘6·15공동선언 9돌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위원들과의 오찬석상에서 비분강개한 어조로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관계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이명박 정권에] 맞서 비폭력 방식으로 싸우자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DJ의 발언 내용 중 특별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남북관계에 관한 것이다. 그의 발언내용을 남북관계만을 떼어서 정리하면 ‘위기에 처한 남북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이명박 정권에 맞서 비폭력 방식으로 싸우자’가 된다.  

현재 남북관계가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은 북한 김정일 정권의 도발에 있다. 금강산에 관광 간 남한의 민간인 관광객을 총살 해놓고서는 그에 대한 남북의 합동조사조차도 거부한 북한 김정일 정권의 잘못된 행동에서부터 남북관계의 악화가 시작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북한 김정일 정권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과 핵폭탄 실험을 자행했으며, 남한에 대해 군사공격을 가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명박 정권은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조치를 먼저 취한 바 없으며, 북한이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까 봐 극히 조심해왔다. 백보를 양보해서 말하더라도, 이명박 정권이 대북정책을 훌륭하게 실천해왔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기 위해 공세적인 조치를 취한 일은 없다. 오히려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해 불쌍하다 싶을 정도로 조심해왔다. 

이처럼 남북관계 위기의 원인이 북한 김정일 정권의 도발에 있음으로 남북관계 위기타개를 위해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당연히 북한 김정일 정권이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DJ는 남북관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엉뚱하게도 남한의 이명박 정권을 상대로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한 것이다.  

“DJ가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하는 원인이 뭘까?”를 따져보던 필자는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이 DJ에 대해 한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YS는 지난 12일 DJ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성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다 죽어가던 북한 독재자 김정일에게 사망 직전의 중환자에게 마약 투여하듯 엄청난 돈을 퍼줘 회생시킨 자가 바로 김대중씨다. 대한민국을 존망의 안보위기 상태로 몰아넣은 자신의 크나큰 죄악을 인정하고 백배사죄해도 부족할 시점에 독재자 김정일을 살리기 위해 망발하는 것을 국민이 용납해서는 안 된다.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미사일을 난사한 국가위기 상황에서 김정일을 두둔하는 것은 김대중씨가 공산주의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YS의 말은 “김대중씨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국가위기 상황에서 김정일을 두둔한다”는 것이다. YS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다시 말해서 DJ가 공산주의자라면, 남북관계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이명박 정권에 맞서 싸우자는 DJ의 촉구는 엉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히 당연한 것이 된다. 

이 대목에서 필자를 괴롭히는 것은 DJ가 정말로 공산주의자이냐 하는 문제이다. 필자는 DJ의 정치행태와 대북정책을 비판해온 사람이지만 다른 DJ비판자들이 사석에서 ‘김대중은 공산주의자다’라고 주장하면, 항상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런 필자이지만 DJ의 최근 언동과 DJ를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는 YS의 공개발언에 대한 DJ의 침묵을 보면서 자신의 종전 입장을 고수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YS가 DJ를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몇 차례 동일한 내용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이상한 것은 자기를 공산주의자라고 말하는 YS의 공개발언에 대해 DJ가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YS의 발언을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하지도 않았고, YS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도 않았다. 제3자의 눈에는 이러한 DJ의 태도가 YS의 발언에 대한 묵인으로 보인다.  

DJ는 자기가 공산주의자라는 YS의 주장을 참으로 묵인한 것일까? DJ는 전직 대통령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 나라 정치에 매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정치인이다. 따라서 DJ가 공산주의자인지 여부, 나아가서 그가 북한 정권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항이며(결코, 노정객들의 감정적 말싸움으로 가볍게 생각할 사항이 아니다), 이 나라의 정치적 장래가 위태로워지지 않으려면 분명하게 판가름되어야 할 문제이다. 
 
DJ는 자기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YS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할 정치·도덕적 의무가 있다. 그리고 YS는 DJ의 고소 여부와 상관없이 DJ가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국민에게 제시해야 할 정치·도덕적 의무가 있다. 국민들도 DJ가 공산주의자인지 여부를 명확하게 판가름하기 위해 DJ와 YS가 자기들의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http://blog.daum.net/pre-agora)

양동안(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