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자유게시판 > 추미애의원과 박상천 의원

추미애 의원님,
저는 대전에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지난 대선 때 추의원께서 몸을 돌보시지 않고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로지 이회창씨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온 민주세력이 하나가 되어
단결된 힘으로 끝내 승리를 쟁취한 기억은 내내 잊기 힘들 것입니다.

저는 정당 정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지만 한 가지만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당이든 정치이든 뭐든간에 우리 민족 앞에 유익하고 우리 민족의 이익을 관철
하기 위한 방책이 되고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추의원
께서 갖고 계신 신념에 대해 존경하는 바입니다.

금번의 민주당 분당 사태를 놓고 저는 추의원께서 왜 지금과 같은 입장을 택하고
계신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또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현재 민주당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모임의 대표로 불리우는 박상천씨에 대해서
입니다. 그는 지난 1981년 제가 금강회라는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을 비롯한
7조 1,2,3항 등의 위반과 반공법, 계엄법,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을 때 담당
검사였습니다. 물론 저는 당시 공주사범대학 3학년에 재학중이었구요.

박상천씨는 지금은 민주투사로 변신해 있지만, 그 때는 입에 거품을 물며 검찰측
최후 논고에서 저희를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며 법정 최고형인 10년
을 구형하였습니다. 전형적인 군부독재의 하수인으로서 양심이나 이성이나 지성
이나 최소한의 인권에 대한 고려는 눈꼽만큼도 없었습니다. 그 시절엔 다들 그러
했었죠! 굳이 판, 검사들 뿐 아니라, 모든 공무원들 누구나 할 것 없이 총칼을 앞
세운 군사깡패한테 벌벌 기었습니다. 그래서 박상천씨의 범죄도 이해할 수는 있
습니다.

저희는 불법 연행되어 무려 47일간이나 욕조를 갖춘 지하실에서 심문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몰매를 맞고 거의 매일 발길로 몽둥이로 주먹으로 구타당
하며 죽지 못해 살아나왔습니다. 실제로 목을 메어보기도 하고 전기가 통하는
플러그에 손을 대어보기도 하고 방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죽어라고 달려가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부딪쳐보기도 하고 죽어보려고 시도하기를 몇 번 죽을 용기
조차 없어서 '인격이 파괴된 채로' 뭔가 살 명분도 찾지 못한 채 그냥 고기덩어리
그 자체로 다시 부여의 모 여인숙으로 끌려가 2 주간 마무리 조서 작업에 동원되
었습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자식 놈이 어디로 끌려갔는지를 모르셔서 전국을 다
헤매고 다니셨고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동원되었던 경찰들, 당시 전경들은 무슨 심정으로 저희를 고문하고 구타
하고 폭언폭행하고 하였는지 지금도 참 궁금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제게 내화된
상처들이 여전히 괴롭히고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세월이 이렇게 22년을
지나다보니 다 용서되고 그 사람들이 잊혀지고 있습니다. 그 때는 그들이 강자였기
에 지하실에 홀로 고립된 약자를 짐승처럼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하였던가요?

이 모든 과정을 박상천씨가 지휘한 것이 아니겠지요. 왜냐면 당시에 그 서슬퍼런
군부독재 시절에 어떤 검사가 감히 건방을 떨겠습니까! 다 보안대나 정보부에서
치안본부에서 지휘한 대로 사건이 조작되고 보도되고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나서
검찰에서 정해진 순서에 따라 마무리를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군부독재의 하수인
이었다고 한다면 너무 심한가요?

어쨌든 세월이 흐르면서 다 잊혀지고 별 일이 아니라고 치부하고 민주화운동보상
심의위에 보상 신청을 해놓은 상태로 그냥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정말 정말 정말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어젯날에 군부독재의 하수인으로서 저희를 짓뭉개고 떵떵거리던 사람이 어느사이
민주투사가 되어 민주당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니 정말 참을 수가 없군요. 정말 치가
떨립니다. 적어도 지난 날의 잘못에 대해 최소한의 의사 표현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노골적으로 사죄하기 힘들다면 비공개적으로라도 최소한 미안했다는
표현은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어쩌면 어리석은 기대인지도 모릅니다. 박상천씨는 지금도 여전히 저희를 좌익으
로 생각하고 좌익은 죄악이므로 안된다 하는 식으로 생각할 겁니다. 그러니 사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수도 있겠지요.
저는 그건 인정합니다. 한 사회 안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
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들도 수용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의사표현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해야 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장황해졌네요. 이게 단순히 개인 감정일까요? 제가 억울해서 일까요?
적어도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정통성이 도대체
어디에 있기에 박상천씨 같은 사람이 그 대표격이 되어 난동을 부리고 있을까요?
그 정통성이 5,6공 군부독재에 있는 건 아니겠지요.

추의원님, 저는 다 이해합니다만, 박상천씨가 대표 주자가 되어 움직이는 요즘의
사태를 보면서 소름이 끼치기까지 한답니다. 저희가 그토록 몸서리치게 당했던
군부독재의 음울한 지하실이 자꾸 떠오릅니다.

추의원님, 다 좋습니다만, 지금 지역을 볼모로 기득권을 유지해보겠다는 차원을
넘어서 그런 추악한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이 나라의 정상에서 너무도 사랑하는
내 조국, 한국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민주당을 유지하므로써 오는 전체의 이익을 많이 고려하시겠지만, 제발
이 번만은 결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바뀌어야 하는 건 시대의 요구요 추세이며
바뀌기 위해서는 언제나 산고가 따릅니다. 추의원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추의원님, 가족 분들, 비서관들 모두의 건강과 행운을 빌며...
한가위엔 만 가지 시름을 떨칠 수 있는 휴식을 가지시길 바래봅니다. 36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