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12월, 유엔군과 공산군은 포로의 처리문제를 다루기 위해 설치된 소위원회에서 각각 자신측이 억류하고 있는 상대방 포로들의 명단을 교환한후, 유엔군측과 공산측간이 해를 넘기며 지루한 협상끝에 포로교환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휴전이 성립된 뒤 2개월 안으로 송환을 희망하는 포로들을 맞바꾸는 한편,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을 ‘중립국송환위원회’에 넘겨주기로 한다. 송환을 끝내 거부하는 포로들은 다시 그로부터 3개월간 그들의 원 소속측이 파견한 대표들로부터 귀환을 권유받도록 한다.



그리고 다시 1개월 사이에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치회의’에서 이들의 처리에 관한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포로 신분에서 벗어나 민간인의 신분으로 석방될 준비에 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1개월 안에 각자가 선택하는 쪽으로 보내지거나 포로의 개별적인 희망에 따라 일단 중립국으로 이송된 다음, 그곳에서 석방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공산군 측의 요구가 대부분 받아들여진 합의 사항에 분노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은 공산 진영의 국가도 참여하는 중립국송환위원회에 반공포로의 신변이 넘어간다는 점에 대해서 우려가 많았다.

1953년 6월 8일, 우리 정부는 비상국무회의와 군부수뇌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6월 10일 군 수뇌들과 헌병총사령관 원용덕(元容德) 중장을 경무대로 불러 반공포로의 석방문제를 검토하고, 6월 11일 정오를 기하여 이를 실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아직 준비 미흡으로 반공포로 석방은 일시 연기되고, 6월 17일 저녁에 다시 명령이 내려집니다.

드디어 부산·대구·영천·마산·광주·논산·부평 등지에 있던 수용소에서 국군헌병대는 18일 새벽 0시를 기하여 미군이 경비중인 수용소의 전원을 끊고 철조망을 뚫은 다음 반공포로들의 구출작전을 전광석화처럼 실행한다. 그리고 서울중앙방송국은 헌병총사령관 원용덕 중장의 포고문을 특별방송으로 보도한다.

수용소 인근 주민들도 반공포로들을 도와주면서 3만 5451명의 반공포로들 가운데 2만 6424명이 탈출에 성공하고, 약 8000명 가량은 실패했다. 탈출에 성공한 포로들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 정착하여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수용소 부근의 주민들은 반공포로들을 맞아들여 옷을 갈아입히고 침식을 제공했으며, 이들을 다시 붙잡기 위하여 탱크와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미군의 수색망을 피하여 멀리 달아날 수 있도록 온갖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부평시가의 주민들은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고, 탈출한 포로들은 태극기와 플래카드로 뒤덮인 시위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몸을 숨기기도 했다.

유엔군에 속한 우방국들은 반공포로 석방소식에 크게 놀랐는데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아침에 면도를 하다가 이 소식을 듣고 놀란 나머지 얼굴을 베였다는 일화도 있다. 또한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단’에 분개하여 그를 제거하려는 계획까지 수립할 정도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휴전협상이 결렬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자유 진영의 여론도 반공포로 석방에 지지를 보내는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미국은 휴전협상의 결렬을 우려하여 <한미상호안전보장조약>의 체결, 장기간의 경제원조, 국군 증강 등을 조건으로 겨우 이승만대통령의 휴전동의를 얻게 된다. 공산군 측은 반공포로의 재수용을 주장하지만, 결국 휴전협정에 조인하면서 이승만대통령의 반공포로석방은 대 성공을 거두게 된다.

반공포로석방 사건은 이승만 대통령이 어떠한 일이라도 독단으로 단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엔군과 공산국들에 보여 준 것이었으며 또한 모든 국군과 군사시설이 비록 유엔군사령관의 지휘 아래 있다고 할지라도 한국 대통령이 휴전회담을 결렬시키기로 결심만 한다면 그것을 얼마든지 파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해 준 것이였다.

비록 한국 국민의 뜻과는 달리 휴전회담이 성립되었지만, 반공포로 석방은 강대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을 하는 국가로서 지닐 수 있는 강력한 자주성을 보여준 사건으로 세계사에 높이 평가되고 있다.

★ 백선엽장군의 회고/(軍과 나)

李대통령은 로버트슨과의 회담기간 중 잠을 거의 자지 못한 듯 피로와 고뇌의 표정이 역력했으나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어떻게 이대로 휴전을 하겠느냐.”, “우리는 죽음에서 생을 구해야 한다.”는 등 비장한 말을 우리에게 토로하기도 했다.

클라크 사령관은 경무대에서 “미국 역사에 관해서도 李대통령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다.”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으며, 명분을 적절히 구사해 실리를 얻어내는 외교적 수완을 도대체 어디에서 터득했는지 알 수 없다고 감탄했다. 그는 李대통령을 ‘위대한 사람(great man)’이라고 서슴없이 지칭했다.

동경의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으로부터도 두 차례나 항의 전화를 받았다. 클라크는 이 사태에 대해 자신을 포함한 미군 전원이 사전에 낌새조차 차리지 못한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는 이 사건이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거듭 물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어떠한 답변이나 해명도 할 수가 없었다. 미군측의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기 때문에 염려가 앞섰다.

나는 경무대로 전화를 연결했다. 한밤중에 대통령을 깨우는 전화를 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각하, 클라크를 위시해 미군들이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의 보고를 받은 李대통령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 알았어. 내가 했다고 그러게. 내가 아침에 프레스 릴리스(press release:논평 발표) 를 하겠어.”대통령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이 엄청난 사태를 혼자서 떠맡겠다는 것이 아닌가. 참모총인인 나나 헌병총사령관인 원용덕 소장에게 책임을 돌린다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고, 나는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중대한 사태에 임해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데는 감탄치 않을 수 없었다.

(박 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