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 개혁 :
체제적 접근 전체적으로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하게 되어 많은 한계와 문제점이 충분히 해결되지 못하였으며, 특히 개혁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하지 못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며, 연구자의 추가적인 노력과 많은 분들의 비판을 통하여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Ⅰ. 서론
과거의 정부와 마찬가지로 현 정부하에서도 부패에 대한 논의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역대 정부의 반부패에 대한 정책을 보면 제시된 방안면에서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으며(윤태범,1998), 또한 외국의 사례를 통하여 많은 안들도 새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부패에 대한 성과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인 평가는 하고 있다. 물론 현정부하에서도 무엇인가 새로운 안을 제시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안이 확립되지 못한 상태이다. 과거 정부와 차이가 있다면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소위 부패방지법이라는 것을 제정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부패방지법의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지 전부터 벌써 냉소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만들어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부패방지정책에 관한한 이제 대부분의 식자들은 기대감보다는 냉소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체념의 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역대 정부의 수 많은 반부패정책이 현란한 구호들에 불과하였을 뿐이라는 실망감과 또 한편에서는 이제는 우리의 부패상황이 정부에서 제시하는 것과 같은 대증적인 처방으로는 치유불가능하다는 무력감에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심각한 수준의 부패상황이 아니라 부패에 대한 저항의식의 결여와 반부패에 대한 냉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의 일단은 부패에 대한 접근법에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부패에 대한 논의를 함에 있어서 주류를 이루었던 논의는 주로 개인 혹은 제도수준에서의 것이었다(Johnston,1982:12-16;Werner,1983). 예를 들어서 개인의 수준에서 부패를 논하였으며, 부패의 원인과 처방도 부패한 공무원 개인을 조직에서 추방하거나 혹은 공무원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부패한 공무원의 추방과 제도의 마련조차도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연구에서는 기존의 논의를 보완할 수 있는 측면에서 체제적 접근을 제시하고, 이를 활용하여 부패 사례를 분석하고자 한다. 본문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체제적 접근이 기존의 접근법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기존의 접근법을 통합 내지는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부패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분석적인 입장보다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비판이 이루어져 왔다는 측면에서, 체제적 접근은 관료부패와 관료를 좀더 중립적인 시각에서 비판할 수 있도록 한다.
Ⅱ. 관료 부패의 특성과 접근법
1. 관료 부패의 개념과 특성 부패의 개념과 관련하여, TI의 정의와 이 기관에 의한 조사결과가 빈번히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TI도 부패의 정의(사익을 위한 공권력의 오용, 예를 들어서 뇌물수수, 정부조달상의 횡령 등)와 조사의 내용을 일치시키지 못하였다고 하여, TI의 논의도 불신되고 있다(Heywood,1997:9)
관료부패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정의는 “관료가 직무와 관련하여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하여 사익을 추구하거나 혹은 공익을 침해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윤태범,1993:18-24: Heidenheimer,1990:51-66). 학자에 따라서 부분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개 이와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정의의 경향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관료부패에 대한 개념정의는 “관료의 행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즉 개인으로서의 공무원에게서 발견되는 불법부당한 행위를 관료부패로서 인식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개념정의도 관료부패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할 경우, 문제의 일부만을 보게 하여 결과적으로 관료부패에 대한 편향적 판단을 하게 할 수 있다. 관료가 고립하여 존재할 수 없듯이 관료부패도 고립하여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수용한다면, 당연히 관료부패를 정의함에 있어서 관료에게 지나치게 초점을 두는 것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관료부패에서는 크게 5가지의 개념이 도출될 수 있는 속성이 발견된다 본고에서도 논의하였지만, 관료부패에 대한 개념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은, 개념 자체의 중요성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료부패가 기본적으로 해당 국가의 정치․행정체제의 규범적 조건이나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Philp,199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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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과정 - 규제절차의 문제
․부패 상태 - 결과의 문제
․부패 관계 - 재량권 등 권한 행사의 문제
․부패 주체 - 공무원 혹은 기타
․부패 목적 - 경제적 혹은 비경제적
위에서 어떠한 속성에 초점을 두고 분석하느냐에 따라서 관료부패에 대한 개념정의는 다양한 양태를 지닐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관료부패에 대한 속성에 있어서 공무원이라는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비록 부패의 주체라는 측면에서는 가장 분명하게 노출되지만, 이것은 부분일 뿐이다(윤태범,1993:77). 따라서 관료를 부패의 핵심으로 보기 보다는 부패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인식하는 것이 보다 필요하다. 물론 이것이 부패형성에 있어서 관료의 역할의 중요성을 반감시키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관료부패는 매우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일률적인 규정에 한계가 있다(Heywood,1997:6). 이러한 관료부패의 특성의 다양성은 부패의 내용과 범위 혹은 정도 등 매우 다양하게 논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문제는 “부패”를 논함은 “부패하지 않음”의 상태를 전제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한 합의도 또한 어렵다는 점에서 부패의 개념정의에 대한 어려움을 확인할 수 있다(Heywood,1997:6).
. 뿐만 아니라 부패는 문화적으로도 결정되기 때문에, 부패의 정의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는 나라별로, 계층별로 혹은 시기별로 동일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Robinson,1998:18-22 ; Porta & Vannucci,1999:16). 가장 간단한 예로서 선물과 뇌물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상당한 금액까지 선물로 인정하는 반면, 미국 등의 경우에는 그 범위를 매우 제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물 수수행위를 부패 행위의 하나로 까지 확대하고 있다(정영국,1999:85-87). 따라서 특정 국가의 관료부패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관료부패의 특성에 대한 분석과 이에 적합한 접근법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관료부패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발견되는데, 이와 같은 특징은 관료부패의 성격을 규정하여 주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관료부패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 제약을 가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관료부패의 다양성을 들 수 있다. 즉 다양한 유형의 부패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서 『뇌물수수』와 같은 전형적인 유형에서 정보의 왜곡이나 부당한 활용과 『정직한 독직(honest graft)』이나 『자동부패(auto corruption)』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는 무제한적이다(George & Maaranen,1978:57-58). 이러한 다양성은 곧 관료부패에 대한 명료한 정의나 접근을 어렵게 한다.
둘째, 관료부패 발생의 다차원성을 들 수 있다. 통상 관료부패는 관료 개인수준에서 발생 혹은 발견되지만, 이 이외에도 조직, 집단, 그리고 정권수준에서도 발생한다(Caiden & Caiden,1977:306-308). 물론 조직이나 집단차원에서도 관료 개인 차원의 부패가 발생하지만, 부패에 대한 관료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상이할 수 있다. 조직수준에서의 부패라면, 중요한 것은 관료가 아니라 조직문화나 관행, 혹은 조직과 타조직과의 관계일 수 있다.
셋째, 관료부패는 다양한 요소들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사람, 제도, 법, 뇌물 등 관료부패를 발생시키는 변수도 다양한 것처럼, 관료부패라는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도 다양하다(윤태범,1993:76-79). 단순히 사람의 문제에 의하여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도적인 결함에 의하여 부패가 보다 용이하게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관료부패를 구성하는 요소는 매우 복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네째, 관료부패에 대한 인식의 다양성이다. 동일한 형태의 부패에 대해서도 시기와 장소에 따라 서로 상이하게 인식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관료부패에 대한 인식의 다양성으로 인하여 관료부패 자체도 다양하게 분석되고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10만원 정도의 선물이 평상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최근과 같이 반부패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하에서는 보다 엄격하게 적용될 수도 있다. 그리고 2-3만원 정도의 선물은 우리 나라의 경우 아무 문제도 없지만, 미국의 경우에도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정영국,1999:86).
다섯째, 부패의 확산성이다. 어떤 학자는 관료부패는 자기확산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Werner,1983:151). 즉 부패행위가 발생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부패행위로 인하여 추구할 수 있는 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부패행위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익에 대한 부당한 추구가 억제되지 못한다면 이것으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대 재생산(spill-over)된다는 것이다(Werner, 1983:149). 부패에 개입한 사람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부패 자체에 무감각해지게 된다. 부패와 정의간에 구별이 모호해진다. 공동의 정의가 없어지며, 오직 개인만을 위한 정의만이 남는다.
2. 관료부패에 대한 접근법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관료부패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부패 사례별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즉 관료부패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이 가능하며(전수일1996:26), 또한 다양한 접근법에 따라서 다양한 논의와 해석, 그리고 나아가서는 처방도 다양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대만이나 싱가포르의 부패방지책의 경우, 매우 강도 높은 정책에 의하여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Quah, 1990:841-853) , 그것은 이들 국가의 특수성과 관련되어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며, 우리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관료부패에 대하여 적용되고 있는 접근법들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서 문화적, 제도적, 윤리적 접근법을 들 수 있다. 물론 이 접근법들은 주로 특정한 시각에서 관료부패를 해석하고자 하는 것으로, 당연히 부분적인 설명력만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첫째, 문화적 접근법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는 많지는 않다. 이러한 입장은 특히 동양이나 아프리카와 같은 국가의 관료부패를 분석하는 영미 계통 학자들의 입장이다(Huntington,1968:59-71). 이들의 시각에서 볼 때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는 영미권에 비하여 부정부패가 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아시아적 생활양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적 접근법을 활용하는 경우에는 대개 국가간 비교연구를 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문화적 접근법을 활용하는 경우, 일견 문화적 특수성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중립적인 연구를 지향하는 듯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접근법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로 동아시아를 분석하는 영미권의 학자들에 의하여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Theobald,1990:8), 이러한 접근과 시각에서 보면 우리 나라에서의 부패는 필연적인 것이며, 문화가 바뀌기 않는 한 우리는 부패로부터 자유로유로울 수 없다는 결론을 유도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우리의 경우를 부패사례로 소개한 Huntington(1968)이나 Myrdal(1971)의 논거가 상대적 설득력만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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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제도적 접근법이다. 이 접근법에서는 관료부패가 발생하는 이유는 제도 혹은 법률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부패가 발생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즉 제도적 장치(institutional setting)의 결함이 잘못된 유형의 결합과 사회적 행위를 만든다(Heywood,1997:11). 이 경우 관료부패 발생의 주체인 관료에게 그 책임을 묻기 보다는 제도적 법적 결함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관료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중립적인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Lapalombara,1994:325-330). 예를 들어서 한 때 자동차 등록과 관련된 부패가 빈번히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사례는 자동차 등록절차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 관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제도를 바꾸어서 자동차 등록과 관련된 비리는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앞서의 문화적 접근법에 비하여 전략적으로 수용가능성이 높은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제도나 법의 변화는 권력이나 가치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지배집단에 의해서는 도입되기 어려우며, 설사 도입된다 하여도 형식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 그 동안 이러한 제도적 접근법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다는 점에서(윤태범,1998), 어느 정도 적용의 소망성은 존재한다.
셋째, 윤리적 접근법이다. 이러한 시각은 관료가 윤리적으로 타락하여 부패가 발생한다는 것으로서, 부패라는 용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가장 부합되는 접근법이다. 분명히 부패 자체는 비윤리적인 상태를 지칭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Frederickson,1993:29-30). 예를 들어서 부천 세무비리 사건의 경우처럼, 모든 사람이 사건에 연루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연루되는데, 이것은 제도상의 결함도 있지만 결국은 해당 사건에 연루된 관료의 윤리적 타락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윤리적 접근은 다른 접근에 비하여 포괄하는 범위가 가장 넓고 해석이 용이하다는 상대적 장점이 있으나, 결국은 부패의 책임을 관료 개인으로 귀착시킨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접근법과 유사한 경향을 지닌다 같은 윤리적 접근이라도, 이를 『도덕적 비용(moral cost)』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기도 하여, 동일한 명칭의 접근법이라도 상이하게 설명된다(Porta & Vannucci,19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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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들 접근들은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며 일정 부분 공유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접근법을 선택한다 하여도 이것이 부패사례의 모든 내용을 포괄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다만 상대적인 설명력의 차이에 따른 선택이 가능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접근법간에는 서로 상반되는 입장이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문화적 접근법과 윤리적 접근법은 서로 가치충돌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가장 중립적인 입장은 제도적 입장이다. 문화적 입장이나 윤리적 입장은 가변적인 것으로서 부패 사례별 설명력을 지닐 수 있지만, 지속적이지는 못하며 부패방지안의 도출에 있어서도 규범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는 제약도 있다. 반면 제도적 접근의 경우 다른 접근법에 비하여 설명의 구체성은 높을 수 있다. 그리고 처방도 비교적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지만, 형식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윤리적 혹은 제도적 접근법에 비하여 무조건 실효성이 높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극단적인 경우에도 부패의 사례별로 그 때에 맞는 접근법을 선택하거나 조합을 구성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Ⅲ. 체제적 접근의 의미와 방법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각 접근법들이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듯이,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여 적용하는데는 부패사건의 특성에 따라서 결정될 수 있다. 그런데 부패 사례 중에는 이와 같은 기존의 접근법으로는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는 경우가 근래 들어와서 상당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물론 접근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본고에서는 기존의 부족한 논의를 보완한다는 차원에서 체제적 접근을 논의하고자 한다.
1. 관료부패에 대한 체제적 접근의 의미
관료부패에 대한 체제적 접근은 관료부패를 체제론적 관점에서 접근함을 의미한다. 즉관료부패 자체가 하나의 체제일 뿐만 아니라, 관료부패는 또한 체제의 한 속성 내지는 산물임을 의미한다(김해동․윤태범1994:33). 따라서 체제적 접근에서는 관료부패를 관료의 개인 수준에서만 설명하기 보다는, 다른 요소와의 상호작용속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관료부패에 대한 체제적 접근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 관료부패의 체제적 원인 혹은 속성에 대한 분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즉 관료가 국가나 사회의 영향 하에 존재하듯이, 관료부패 또한 동일한 영향의 존재하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때문에 관료부패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관료부패 자체에 대한 접근도 필요하지만, 폭력과 마찬가지로 부패도 정치 혹은 행정과정의 한 부분(deLeon,1993:25)이라는 점에서, 관료부패가 발생하게 된 체제적 원인에 대한 접근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따라서 이 접근법에서는 무엇보다도 관료부패의 원인 규명과 해석에 주목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체제적 접근은 근대화론에서 제기되고 있는 관료부패론에 대한 설명이나 혹은 앞서 언급하였던 것중에서 문화적 접근법의 내용과 일부 유사한 부분이 발견된다. 즉 체제적 접근법에서 제시되는 부패 발생의 구조적 요인의 하나로서 지적되는 『고객-후원자 체제(patron-client system)』는 정치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관료가 대부분 지대추구적인 후진국의 기본적인 체제라고 설명한다(Philp,1997:33).
둘째, 관료부패의 체제성에 대한 분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관료부패 자체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되, 관료부패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분석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관료부패를 하나의 체제로서 인식하여 분석하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관료부패를 하나의 체제로서 인식할 경우, 관료부패를 구성하고 있는 구조적 요소에 대한 분석은 필수적이다(윤태범,1993:98). 따라서 이 접근법에서는 관료부패를 구성하는 변수와 그 속성, 그리고 이들 변수간 상호작용이나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김해동,1991:70). 그러나 이러한 분석을 위해서는 첫 번째 언급한 관료부패의 체제적 원인에 접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두가지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정부 혹은 관료는 단독으로 고립되어 활동하지 않는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 기관, 그리고 이들에 의한 다양한 요구와 압력 등에 의하여 특정한 행위나 활동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체제적 접근에서는 부패를 정부와 타 부문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본다. 때문에 이 입장에서는 관료부패를 보다 중립적인 것으로 인식하며, 분석적인 측면에서는 부패를 개인 혹은 제도의 실패로 보기보다는 일종의 『영향력의 한 형태(a form of influence)』로 인식한다(Johnston,1982:15). 이렇게 부패를 영향력의 한 형태로 인식한다면, 당연히 다른 형태의 영향력과 비교되어 연구될 수도 있다. 체제적 접근을 하는 학자들은 관료부패가 민주적 가치, 제도, 그리고 과정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체제적 접근도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장점을 보면, 이 접근은 부패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설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 접근에서는 관료부패를 체제내에서의 영향력의 한 형태로서 간주하기 때문에, 부패를 제거함에 있어서 지니게 되는 어려움이나 한계를 상당 수준 설명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법이나 여론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편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부패에 개입한다고 설명한다. 법은 (정치적 혹은 행정적) 영향력에 의하여 형성된다. 그리고 이것은 영향력 행사(법, 부패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를 위한 하나의 루트로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전반적인 체제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체제적 접근은 부패에 대한 연구를 다른 부분에서의 이론이나 탐색과 연결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체제적 접근은 부패를 단순하게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부패문제에 대하여 우리들이 단 한번에 효과를 발휘하는 즉효약에 대한 탐색에 현혹되지 않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부패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바로 부패에 대한 『이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체제적 접근은 도덕적 접근이 아닌 분석적 접근으로서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된다(김해동,1991:77-80).
체제적 접근은 이러한 장점을 지니고 있는 반면, 사례에 대한 분석을 함에 있어서 제도나 개인뿐만 아니라 많은 체제 요소들을 포함하여 너무 완벽한 구조를 구성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들 요소간의 명쾌한 인과관계나 활용이 용이한 처방을 제시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체제적 접근에서는 자칫 부패는 필연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예를 들어서 체제적 접근에서 제시되는 체제적 부패의 요인중 지적되는 것이 『고객주의(clientalism)』와 빈약한 행정 시스템인데, 이들은 부패와 악순환의 관계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서 『고객주의-부패-고객주』의, 혹은 『빈약한 행정체제-부패-빈약한 행정체제』의 순환고리를 형성한다(Porta & Vannucci,1999:261-263).
. 그리고 체제적 접근에서 논의하는 부패 사례들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매우 친숙한 것들이기 때문에 자칫 규범적 분석과 낭만주의간의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즉 부패를 낭만주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도 있다. 즉 체제적 접근하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역으로 오히려 낭만주의적으로 자유로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많은 식구들과 친족들을 거느리고 있는 마피아를 동경하거나, 김두한의 의리를 동경하거나, 워터게이트의 닉슨은 미디어의 순진한 희생자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물론 마피아, 김두한, 닉슨은 체제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결국 이들의 부당한 행동이 상황에 의하여 정당화될 수 있으며, 보다 심각한 부정과 사회적 비용에 대한 무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체제적 접근의 유용성이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하에서 이다(Johnston,1982:16). 먼저, 관료부패를 『체제적(systemic)』인 것으로 본다고 해서 모든 체제가 전적으로 부패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행정체제는 인간이 자신들의 집합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며, 막상 이를 대체할만한 다른 완벽한 방법을 찾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렇게 체제적 결함을 지적하는 것이 체제를 보다 더 바림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방법이다. 둘째, 전반적으로 체제적 접근에 의존한다고 해서 개인적 혹은 제도적 접근을 무시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개인적 혹은 제도적 접근법도 보다 폭넓은 체제적 이해 속에서 수용될 수 있다면 보다 가치있는 접근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본 연구에서 분석대상인 수서사건이 체제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수서사건이 발생한 경과를 설명함에 있어서 개인적 혹은 제도적 요소가 유용할 것임도 알고 있다. 셋째, 부패의 원인을 뿌리깊은 체제적 문제에 둔다 하더라도, 개혁에 대한 노력이 전체적인 체제의 복잡성 속에서만 고려될 때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부분적인 노력이나 접근도 얼마든지 체제의 개선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한가지 혼동될 수 있는 것이 체제적 접근과 체제적 부패의 관계이다. 이 양자도 별개로 논의될 수 있지만 서로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체제적 접근은 부패에 대한 연구방법의 하나이지만, 체제적 부패는 부패의 다양한 형태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체제적 부패(systemic corruption)』는 개인 수준에서 결정되는 부패가 아니라 체제수준에서 결정되는 부패를 의미한다. 부패가 정상적인 규범으로 인정되는 경우를 체제적 부패라고 한다(Caiden & Caiden,1977:306-308). 예를 들어서 권력 있는 사람이 권력이 없는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이 당연한 상황, 권력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돈을 받고 돌봐주는 것이 정상인 경우이다. 공무원과 민원인이 선물을 수수함에 있어서 10만원 정도의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우리 사회의 경우, 미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체제부패의 사회이다. 따라서 체제부패는 상대적 개념이다. 체제부패는 우리 스스로 자각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개방되고 다른 국가와의 거래가 빈번해짐에 따라서 외부적으로 인식되기가 용이하다. 때문에 이러한 외부의 문제 제기에 대하여 초기에는 문화적 차이라는 식으로 문제 제기 자체를 거부하거나 외면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국가와의 규범을 비교함에 따라서 피동적으로 부패의 상황이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됨. 따라서 체제적 부패가 자발적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높은 수준의 규범의식 혹은 윤리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경우 공무원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소액(?)의 금품수수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우리 사회가 체제부패의 단계에 편입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수서사건의 경우, 조합원들이 불법인줄 알면서도 조합에 가입하고 또 특혜공급을 위한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우리가 체제부패단계에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점에서 체제적 접근과 체제부패는 방법과 유형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사한 특징과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체제적 부패는 기본의 접근법으로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체제적 접근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기존의 접근법에서 보면 체제적 접근에서는 부패가 아닌 것을 부패라고 하며 분석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2. 체제적 접근의 필요성
1) 관료부패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분석
관료부패의 원인에는 개인적 일탈과 같은 것도 있지만 많은 부분은 관료가 처하고 있는 구조적 환경과 관련되어 있다. 이 구조적 환경은 개인 차원의 것에서부터 단위 조직, 행정조직 전반, 정치구조 등에 걸쳐서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다(Lapalombara,1994:325-351 ; Heywood,1997:6).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환자 본인은 물론 환자 가족의 병력을 자세히 조사하는 것은 환자의 질병에 대한 구조적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으로서, 겉으로 드러난 병세에 대한 대증적인 치료로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체제적 접근은 이와 같이 겉으로 드러난 증세뿐만 아니라 그러한 증세가 발생하게 된 근원적인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데 필요하다. 따라서 체제적 접근에서는 부패를 일련의 부당한 교환의 네트워크를 야기하는 결과로서 인식하여, 사회의 지배적인 『제도적 교환(institutional exchange)』과 『부패 교환(corrupt exchange)』의 네트워크에 주목한다( Porta & Vannucci,1999:20-21).
2) 제도화된 부패에 대한 분석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관료부패를 지칭할 때 보통 『제도화된 부패(institutionalized corruption)』라는 용어를 잘 사용한다(Little & Eduardo,1996:7). 이것은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부패의 대부분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그리고 일정한 유형으로 고착되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생활양식(a way of life)과 같이 존재한다. 따라서 제도화된 부패라면 이것은 내부자의 입장에서는 부패로 인식되지 못하며, 다만 이에 익숙하지 못한 외부인의 입장에서 부패로 인식될 수 있을 뿐이다. 제도화된 『부패망(corruption network)』이라고 할 수 있다(Cartier-Bresson,1997:47-60). 물론 해당 국가나 조직의 경우에도 이러한 제도화된 부패를 적법한 것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니며, 공식적 법규상으로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규정이 전혀 무의미할 뿐이다. 법규와 현실의 괴리가 일상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료부패에 대한 분석은 부패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분석하지 않고서는 사례를 올바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체제적 접근의 필요성을 지적할 수 있다. 부패사례만을 보는 것은 오히려 무의미하여, 그러한 부패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3) 관료부패의 확산에 대한 분석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관료부패에 대한 제도화의 문제를 언급하게 되면, 이제 관료부패는 자기영속적인 성향(Werner,1983:149)을 지니고 있다는 학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게 된다. 즉 한 관료에 의한 비윤리적 판단에 의한 관료부패가 반복될 때, 그리고 이러한 반복된 관료부패에 대하여 정부내에서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동조자를 얻게 될 때, 관료부패는 정부조직내의 지배적 관행으로서 자리잡게 된다. 관료부패는 기본적으로 확산지향적이며 순환적이라고 할 수 있다(Porta & Vannucci,1999:261-264). 따라서 관료부패를 논의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관료부패가 확산되기 용이한 환경 조건에 대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김해동 교수가 이야기하는 부패 배양균의 조건이다(김해동,1983,127). 관료부패라는 균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부패한 음식물만 제거해서는 불가능하며, 음식물이 부패할 수밖에 없는 위생조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체제적 접근은 바로 이와 같은 부분에 기여하고자 한다. 즉 관료부패가 어떠한 환경속에서 보다 자생력을 지니게 되는가 혹은 자생의 조건에 대한 분석을 함에 있엇 체제적 접근이 도움이 될 수 있다.
4) 윤리적 접근의 한계 극복
부패의 문제가 그러하듯 윤리의 문제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체성을 결여하기가 쉬우며 추상성을 면하기가 쉽지 않아서, 현실 문제와의 관련에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논의될 수 밖에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Findlay & Stewart,1992;67-85). 본질의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논의해야 할 것이지만, 또 이것 때문에 현실감있게 논의하는데 한계가 있다. 또한 윤리적 판단에 근거한 비판과 지향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결국 윤리적 접근은 부패문제의 근원을 개인의 윤리 문제로 환원시킨다는 점에서 설명의 폭을 제한하게 된다. 체제적 접근을 통하여 기대하고자 하는 것중의 하나는 바로 이와 같이 윤리적 접근이 지니고 있는 추상성과 개인 지향성, 그리고 전략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5) 관료부패에 대한 구조적 방지책
관료부패에 대한 통제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합의가 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는 제도와 사람의 문제이다(Robinson1998:91). 즉 제도를 바꿀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바꿀 것인가의 문제이다. 물론 제도와 사람에 다 문제가 있다면 제도와 사람을 다 바꾸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체제적 인식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이러한 논의는 피상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패방지를 위한 제도를 만들지만 상당 부분은 형식에 그치고 내용과 운영에 있어서 형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현재 정부에서 부패방지법을 제정함에 있어서 돈세탁에 대한 금지조항을 삽입하면서 한편으로는 금융실명제를 무의미하게 만든 것은 관료부패에 대한 체제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윤태범,1998:224). 금융실명은 전제조건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체제적 접근에서는 형법상의 뇌물수수죄의 강화 보다는 돈세탁방지 혹은 금융실명제를 강조하는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6) 관료부패 개념의 확장
관료부패에 대한 정의를 함에 있어서 그 동안 대부분의 정의는 관료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서 직무와 관련하여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는 관료의 권한의 불법적 사용과 같은 정의이다. 이러한 개인 수준에서의 정의는 결국 관료부패를 매우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즉 관료에 의하여 발생하는 문제로 인식하게 되어, 그 범위를 개인과 개인에 의한 행동이나 그 결과로 축소하게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관료부패는 개인적인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관료제 내부와 구조와 상황, 그리고 나아가서 관료제를 둘러싸고 조건에 의해서도 결정된다는 점에서(Cartier-Bresson,1997:50-51) 관료부패의 범위를 확장할 필요성이 있다. 예를 들어서 관료권과 관련하여 발생한 부패로 정의할 수 있다. 이 경우 베커류(Beckerian Approach)의 관료부패에 대한 분석은 그 효용성이 크게 제약된다.
체제적 접근에서 관료부패를 분석하게 되면, 관료가 부패의 주된 역할을 한 경우에는 기존의 논의와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관료가 종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관료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약해진다(윤태범,1993).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패사건에 있어서 관료의 역할이 저평가되거나 혹은 관료부패가 덜 비난받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패의 구성요소인 관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이를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들에 대한 비판을 함으로서 비판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체제적 접근에서는 특정 관료부패 사건에 공식적으로 연루되어 있지 않은 일반 시민까지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즉 엄격하고 비판적인 시민의 존재는 관료부패를 억제시킬 수 있는 매우 유효한 억지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체제적 접근을 하는 이유는 관료부패에 대한 분석을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확장시키는데 있다. 양적으로는 부패에 개입한 요소들을 확장시키는 것이고, 질적으로는 부패에 개입한 요소들의 개입의 이유와 영향력의 범위, 그리고 처방의 방향과 내용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체제적 접근의 확대는 곧 비판의 범주의 확대이다. 관료부패에 있어서 비판의 대상을 관료에서 관료와 여타 부문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관료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대상은 체제적 접근에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부패는 사회적․법적 네트워크의 확장의 하나이기 때문이다(Cartier-Bresson,1997:52).
7) 관료부패에 통제의 신화
관료제에 대한 신화 이상으로 관료부패에 대한 신화가 존재한다. 즉 관료부패의 핵심은 관료이며, 이 관료에 대한 충분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관료부패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들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신화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많은 부패사례에서 보듯이 관료가 부패사례의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형식에 불과하며, 오히려 결정인자는 다른 요인들에 있음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주범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종범의 지위에 머물고 있다(윤태범,1993:76)). 체제적 접근은 이와 같은 관료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을 억제하고, 보다 중립적인 시각에서 관료부패를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료부패에 대한 통제의 목적은 단순히 관료권의 억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료권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공익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관료를 지나치게 통제한다면 이것은 공익의 실현을 개인에게 맞기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관료부패에 대한 중립적이고 공정한 분석을 함에 있어서도 체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3. 부패 사례에 대한 체제적 접근의 방법
개별적인 부패 사례에 대하여 체제적 접근을 함에 있어서 규범적인 방법이 그대로 적용되는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수서문제에 대한 분석을 전제로 적용하고자 하는 체제적 접근의 방법을 정리하고자 한다.
1) 분석 단위
체제적 접근에 있어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 바로 분석 단위의 선정이다. 체제적 접근의 분석단위는 체제의 구성요소들이기 때문에 개인에서부터 단위 부서(집단), 단위 조직, 그리고 행정조직, 정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다. 수서사건의 경우 분석단위로서 개인과 조직단위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명확히 구분하여 분석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서 김○○ 의원의 경우 순수하게 개인 단위에서 개입되어 있지만, 오○○ 의원의 경우에는 개인단위와 조직단위가 혼재되어 개입되어 있다. 그리고 건설부나 서울시의 경우에도 수서사건에는 구체적인 개인이 개입되어 있지만, 이들은 오히려 개인단위 보다는 조직단위로 설명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2) 분석 수준
체제적 접근에서의 분석 수준은 개인, 조직, 체제가 된다. 체제적 접근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기존의 개인적 접근이나 제도적 접근과 같이 단일 차원에서의 접근이 아니라 복합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보다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패사례에 따라서 개인 차원에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개인과 조직의 양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수서사건의 경우에는 개인과 조직의 양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만 사례 자체에는 개인 단위의 개입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구성요소간 관계의 분석에 있어서는 개인 수준에서의 접근이, 그리고 이들 구성요소의 성격이나 역할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는 조직 차원에서의 설명이 설득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3) 분석 범위
체제적 접근의 분석 범위는 사례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구성요소, 각 구성요소의 특성, 구성요소간 관계, 그리고 각 요소가 처하고 있는 환경이 된다. 체제적 접근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분석이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김해동,1991:77). 수서사건의 경우 사건을 구성하는 개별적인 구성요소, 구성요소의 특성, 그리고 이들 요소간의 관계에 대한 분석은 비교적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기존의 검찰조사자료나 법원의 판결자료 등을 통하여 상당한 수준까지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구성요소들이 수서사건에 개입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공개되어 있는 자료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각 요소들간의 인과관계를 명백히 구성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 부분이 체제적 접근의 강점이자 약점이 된다.
4) 분석 대상
체제적 접근의 분석 대상은 모든 부패가 해당한다. 즉 부패의 유형은 사례 만큼이나 다양하다고 할 수 있는데, 체제적 접근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유형의 부패를 분석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다만 체제적 접근의 특성을 보다 분명히 제시함에 있어서는 수사사례와 같은 체제적 부패가 보다 용이하다고 할 수 있다.
<표 1> 접근 유형별 내용
체제적 접근
문화적 접근
제도적 접근
윤리적 접근
분석단위
개인, 집합, 조직
조직문화
제도
개인윤리
분석수준
개인, 조직, 정부
조직, 사회
조직, 정부
개인
분석범위
속성, 관계
양식, 행태
법, 제도
의식
분석대상
개인,조직,체제부패
개인부패
개인, 조직부패
개인부패
Ⅳ. 사례의 연구 : 수서 부패에 대한 체제적 접근 본 연구에서 분석한 수서사건에 대한 자료는 언론에 보도된 자료만이 아니라 검찰조사자료, 법원판결자료, 국회조사자료 등을 재정리하여 활용하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자료의 출처가 명기되어 있지 않다.
1. 사례 선정의 이유
본 연구에서 분석한 수서사건은 본 연구의 접근법이 체제적 접근법의 적용이 비교적 용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수사사건이 본 연구의 분석대상으로 선정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체적으로 분석의 용이성에 의하여 선정하였다.
첫째, 수서사건은 진행 당시 상당한 사회적 주목을 받았던 부패사건이다. 즉 이 사건은 대기업에서부터 국회의원, 그리고 고위 공직자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는 사건으로서, 우리 정부사에서 대표적인 부패사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수서사건은 다양한 요소가 결합한 사건이다. 관료에서부터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개인에서부터 조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의 결합에 의하여 발생한 사건으로서, 여기서 어느 요소도 독점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며, 모든 구성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결합하였다.
셋째, 체제적 접근이 보다 필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부패에 개입되어 있는 관료의 역할에 대한 공정한 평가로서, 이것이 보다 용이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관료가 주가 되지 못하는 사건이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관료의 역할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경우에도 관료가 개입되는 관료부패에서 관료의 역할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수서사건의 경우, 관료의 역할이 핵심적이지만 관료부패의 발생의 주된 역할 인자는 아니라는 점에서 사례로서 보다 용이하다.
넷째, 체제적 접근에서 보면 수서사건은 명쾌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상당 부분이 불명확하게 남아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접근법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즉 기존의 관료 중심적인 접근에서 보면 관료가 수수한 뇌물과 목적이 문병하기 때문에 명료하게 밝혀진 사건이다. 그러나 체제적 접근에서 보면 관료부패가 발생하게 된 구성요소들이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섯째, 수서사건은 사회적 경향을 반영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특성을 반영하였다. 수서사건은 당시 우리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경제문제의 하나였던 주택문제와 관련된 것으로서, 소위 조합주택의 지대와 관련된 것으로서, 당시 우리 나라의 경제적 상황과 조건, 그리고 기타 정치적, 행정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수서사건에서 사건에 개입된 요소들은 개인 차원에서 개입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조직단위에서 개입하였다. 조직단위 개입이지만 역할은 개인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비체제적 접근에서 보면, 개인 수준의 해석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수서사건의 경우 명백하게 조직 단위의 개입이 있기 때문에 체제적 접근에 의한 분석이 용이하다.
2. 사례의 내용
6공화국 최대의 부패사건으로 불리는 수서사건은 강남구 수서지구 택지 3만5천여평을 농협 등 26개 연합주택조합에 특별공급하면서 야기된 사건으로, 청와대로부터 건설부, 서울시 등 정부기관과 민자당, 평민당, 국회 건설위원회 등의 정치권, 그리고 대기업과 주택조합이 공동으로 구성한 사건으로서, 지난 1988년 1월부터 1991년 1월까지 3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수서사건은 법률상으로는 이미 종결되었지만, 구체적인 진상이 상당 부분 밝혀지지 않은 채 미완으로 정리된 사건로서, 전형적인 부패사건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3년여에 걸쳐 이루어졌던 수서사건은 우리 나라 부패구조의 총체성을 보여주는 듯 동원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권력들이 동원된 구조적 부패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산업은행, 농협, 서울지방국세청, 경제기획원 등 26개 연합주택조합은 1988년 4월부터 수서지역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된 ‘89. 3.21 이후까지 수서지구내 자연녹지 4만9천여 평을 한보주택으로부터 매입하였고, 이 땅이 공영개발방식에 따라 강제수용되자 토지연고권을 이유로 지구지정일 이전에 매입한 3만5천5백평의 특별공급을 요구하였다.
수서지구는 원래 자연녹지지역인 데다 일부 지역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5층 이상 건축을 할 수 없는 등 애초부터 아파트 건립이 불가능한 땅이었다. 그러나 연합주택조합은 이를 알면서도 한보의 로비력에 기대를 걸고 이 땅을 아파트 부지로 사들여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에 특별공급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였고, 이에 대해 사업시행자인 서울시는 1989년 두차례나 불가 회신을 보냈으며, 1990년 10월에도 당시 고건 서울시장이 `시민과의 대화' 자리에서 특별공급 불가 방침을 발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의 이러한 특별공급 불가 태도는 반대입장을 고수해온 고건시장이 박세직시장으로 전격 교체되고 1990년 12월에 국회 건설위원회 청원심사 결과가 통보된 이후 이를 인정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또한 민자당 정책위원회는 1990년 6월 농협주택조합이 민자당에 제기한 민원에 대해 1990년 8월 17일 건설부장관, 서울시부시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회의를 갖고 주택조합에 대한 택지특별공급을 지시하였으며, 그후 서울시는 건설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특별공급을 할 수 있다는 해석을 받았다.
그리고 1991년 1월19일 박세직 서울시장은 원래 예정에 없던 정책회의를 장병조 청와대 문화체육담당 비서관의 요구로 소집하였고, 장병조 비서관과 이태섭 민자당의원, 건설부 관련 국장 등 외부 참석자들이 `수서민원'은 법적 하자가 없으며, 3천3백가구가 넘는 집단민원이므로 반드시 해결해줘야 한다고 특별공급을 강력히 요구하자, 일부 시 간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특별공급을 결정하고 3일 뒤인 1991년 1월22일에 특별공급 허가를 발표함으로써 3년여에 걸친 민원을 종결지었다.
3. 사례의 분석 분석을 위하여 활용한 주요 자료들의 출처는 다음과 같으며, 이를 정리하여 분석하였다.
① 주택조합이 국회, 서울시, 건설부, 청와대 등에 제출한 청원, 진정 등의 자료.
② 건설부, 서울시의 수서민원 심의자료.
③ 국회 건설위원회의 수서 검토보고서.
④ 국회 청원심사소위원회 심사보고서.
⑤ 서울시의 시민과의 대화관련 자료.
⑥ 대검찰청 수사결과 발표문.
⑦ 대검찰청 공소장.
⑧ 민주당 내부자료.
⑨ 서울고법 판결문.
⑩ 기타 언론 등의 보도자료.
1) 수서사건의 구성요소와 특성
(1) 기업
수서사건의 핵심은 한보주택이다. 일반적으로 부패구조에서 기업의 역할은 경제적인 유인수단과 관련되어 있다. 즉 기업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적 부가가치의 극대화라는 점에서, 기업의 이윤(예를 들어서 rent)을 유지하거나 확장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부패구조를 형성하기도 한다. 수서사건에 있어서 한보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서지구에 대한 불법적인 개발을 통하여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고자 청와대, 정치권, 그리고 행정권을 광범위하게 동원하여 체계적인 부패구조를 형성하였다.
(2) 주택조합
수서사건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한보가 부패구조를 형성함에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주택조합에 의한 진정과 청원 등의 방법을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면에서는 부패구조의 각 요소에 대한 뇌물 제공을 통하여 부당한 특혜를 추구하였다. 표면상으로만 보면 한보주택은 주택조합의 의뢰로 건설을 담당하는 것뿐이라는 위장을 한 것으로서, 수서사건의 형성과정은 민원이라는 형식을 활용하여 이루어졌다. 물론 주택조합과 한보가 쉽게 밀착할 수 있었던 것은 양자간에 추구하는 이익이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즉 당시의 우리 나라의 주택사정을 보면, 수서지역은 강남에 미개발로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던 소위 ‘노른자위 땅’으로서, 어떤 식으로든지 개발을 하고 또 입주를 하게 되면, 개발업자나 입주자 모두 막대한 『지대(rent)』를 획득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특히 주택조합에 위한 건설과 제한된 입주는 당시의 공영개발 방식에 정면 배치되는 특혜적인 개발로서, 한보나 당시의 주택조합이 손쉽게 유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 조합은 대부분 공무원과 금융기관 종사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3) 청와대
수서사건을 언론에서 『권력형 비리』라고 보도하였던 이유는 우리 나라 권력의 심장인 청와대가 연계되어 부패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단순히 부패구조의 한 요소로서만 개별적으로 기능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수서부패가 가능하도록 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다. 전체적인 수서부패구조 형성의 주체는 한보이지만, 수서 부패구조가 강한 구조를 형성하도록 하고, 나아가서 특혜제공이 가능하도록 한 유인이 바로 청와대이기 때문이다. 사건 처리결과를 보면, 청와대가 개입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에 근무하는 한 명의 비서관(장○○)이 한보로부터 뇌물을 받고 개인 차원에서 각 행정기관에 압력을 행사하여 부패구조를 형성한 것으로 정리하였다. 그러나 수서사건의 형성과정을 보면, 한 명의 비서관이 동원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징후들이 물론 보인다. 뿐만 아니라 명백하게 불법적인 일이 한 비서관의 압력에 서울시, 건설부, 국회 등 관련된 모든 기관의 장․차관, 국장들이 나서서 불법적인 일을 추진하였을까 하는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면, 사실 문제는 더욱 심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장․차관 등의 고위 공직자가 청와대에 근무하는 한 명의 비서관에 자발적으로 알아서 협조하였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관련되는 비리에 대한 과거의 처리가 그랬던 것처럼, 수서사건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 개인에 의한 비리로서 종결되고, 더 이상의 위선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4) 행정기관(서울시, 건설부 등)
수서사건에 등장한 대표적 행정기관은 서울시와 건설부이다. 이 두 기관이 수서사건에 개입하게 된 이유는 수서 특혜공급에 대한 직접권인 결정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보 입장에서도 이들 기관과 부패구조를 형성할 필요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이 기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잠재적인 부패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잠재적인 부패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행정기관(공무원)이 부패구조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유인가(incentive)』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수서사건의 경우에도 여기서 물론 예외는 아니지만, 한보와 이들 기관간의 뇌물-특혜의 거래에 있어서는 신속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며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서울시의 경우 수서특혜의 최종적인 결정권자로서 가장 커다란 불법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결과 한 명의 공무원도 뇌물을 수수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물론 수서사건의 경우 처음부터 명백한 위법사항이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어서 부패 형성의 기본조건인 『은닉성』(윤태범,1993:48)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사건이었기 때문에, 소위 ‘복마전’이라는 서울시, 그 중에서도 부패의 소지가 높은 건축 담당 부서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이렇게 명백하게 위법한 문제에다 은닉성도 보장되지 않는 사건에 개입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수서사건과 관련하여 한보로부터 뇌물을 받은 서울시 공무원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에 대하여, 당시의 언론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보도하는 촌극을 빗기도 하였다.
(5) 정치권
수서사건의 경우 처음부터 위법한 것이었기 때문에, 진행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즉 수서 특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법을 명백히 위반하든지 혹은 법을 개정해야 가능한 것인데, 전자의 방법이 선택되었다. 다만 위법성을 최대한 축소하기 위하여 민원을 동원하고 정치권이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즉 수서문제 처리에 대한 직접적 권한을 지니고 있는 행정기관에 대하여 법을 위반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는 바로 청와대와 정치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수서특혜를 위하여 한보가 정치권에 접근하여 부패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표면에서는 주택조합이 집단민원의 제기 혹은 청원 등의 방법을 통하여 정치권에 대한 압력을 증가시키고, 한편으로는 국회 건설위 관련 국회의원 개인을 대상으로 뇌물을 제공하여 부패구조를 형성하였다. 게다가 당시 관련된 주택조합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금융기관, 공무원, 언론 종사자 들이었다는 점에서 정치권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수서사건의 경우, 여야 정치인과 국회 건설위는 부패구조가 형성되도록 하고 특혜가 가능하도록 하는 조연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2) 구성 요소의 역할과 상호작용
(1) 수서사건의 주도자
① 한보주택 : 한보주택은 수서사건의 핵심으로서, 부패구조 형성의 최초 시도에서부터 부패구조의 형성을 위한 다양한 요소들의 유인, 그리고 특혜공급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정치권을 대상으로 문제해결에 주목하였으며, 행정부문에 대해서는 청와대의 장○○비서관을 통하여 문제해결을 시도하여, 기존의 『고객주의(clientelism)』에 바탕을 두어 체제부패에서 말하는 『철의 삼각(iron-triangle)』을 형성하였다(윤태범,1993:63-66, 69-71).
② 청와대 : 청와대의 장○○ 비서관은 한보의 정○○회장과 사적인 인연이 있었던 사이로, 장○○ 비서관은 한보가 주도가 수서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힘을 실어준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보가 장치권의 부패구조 형성을 주도하였다면, 장○○ 비서관은 행정부내의 문제해결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여 수서사건에 있어서 효율적인 역할분담구조를 형성하였다.
(2) 부패구조 형성의 매개자
① 주택조합 : 주택조합은 수서사건과 관련하여 주택조합의 표면적인 역할은 민원 혹은 진정의 제기와 같은 소극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정치권이나 행정부내에서 수서문제의 해결을 위한 빌미로 활용하였던 것이 바로 주택조합에 의한 민원의 제기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수서문제의 해결에 따른 최대의 수혜자 또한 한보와 더불어 주택조합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주택조합은 수서사건의 형성과 진행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주택조합은 서울시, 국회, 청와대 등 수서문제와 관련된 모든 기관에 민원을 제기하여 한보 주도의 부패구조가 실효성을 지닐 수 있도록 역할하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러한 주택조합의 구성원이 대부분 중앙 부처의 공무원과 금융기관의 종사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한보가 추진한 수서지구개발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보가 주택조합에 각서를 제시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② 국회 건설위 : 수서문제의 해결과 관련하여 정치권에서는 국회건설위와 소속 의원들이 구성요소로서 참여하였다. 수서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정치권이 개입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5월 이후부터로 전체적인 수서사건의 진행과정에서 후반부에 해당한다. 즉 정치권이 개입되기 이전까지는 주로 장○○ 비서관을 중심으로 행정기관을 통한 문제해결 단계인데, 이것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함에 따라서 정치권의 개입이 이루어졌다. 민자당 및 평민당에 대한 민원의 제기가 이루어졌고, 이들 정당에서는 수서지구에 대한 공급이 명백히 불법적인 특혜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치권의 개입이 이루어진 시기를 전후로 하여 한보의 국회의원에 대한 뇌물 제공이 여야를 초월하여 이루어졌다. 공식적으로는 1990년 10월 말 민자당 이○○의원을 소개의원으로 청원이 국회에 제출되었고, 청원심사소위원회의 심사와 건설위원회의 의결을 통하여 국회 건설위원회는 1990년 12월 11일 청원을 수용하는 결의를 하고, 청원을 본회의에 회부하지 아니하고 그 내용을 사무총장 명의로 서울시와 건설부에 통보하여 변칙처리를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면, 국회의 수서문제 관련 상임위인 건설위는 건설부나 서울시의 공식적인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특혜공급에 대한 결정을 하여, 수서문제 해결을 무리하게 추진하였음을 알 수 있다.
③ 국회의원 : 정치권에서는 오○○ 건설위 위원장과 이○○, 이△△, 김○○ 의원이 수서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김○○의원의 경우 처음 검찰에 의하여 기소는 되었지만, 고등법원에서 무죄가 인정되었다. 먼저 민자당 이○○ 의원은 수서 문제와 관련된 지역구 의원으로서, 주택조합이 국회에 청원을 함에 있어서 소개의원의 역할을 하였으며, 그후 지속적으로 수서문제와 관련한 행정기관 및 민자당에 참석하여 수서문제 해결의 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평민당 이△△의원은 국회 건설위 간사로서, 국회에 제출된 수서관련 청원과 관련하여 일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한보의 로비대상이 되어 국회에서의 청원에 대한 처리와 아울러, 서울시와 건설부에 대한 압력을 행사해 달라는 대가로 총 4회에 걸쳐서 뇌물을 수수하였다. 수서 사건에 연루된 국희의원중 가장 적극적으로 수서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마지막으로 민자당 김○○의원은 국회 건설위 간사로 있으면서, 수서문제의 해결을 위한 역할 보다는, 수서문제를 비롯하여 당시 한보그룹에 의하여 동시에 추진중이었던 한보철강의 아산만 매립공사와 관련하여,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대가로 뇌물을 수수하여, 다른 국회의원의 역할과 구별되는 목적의 개입을 하였다.
(3) 특혜 제공의 집행자
① 건설부 : 수서문제가 발생한 초기단계부터 건설부는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물론 기존의 택지개발촉진법에 명백히 위배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주무부처인 건설부는 반대의 입장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건설부의 반대입장도 국회, 서울시, 청와대, 한보 등과의 관계를 거치면서 허용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수서문제의 직접적 결정권자인 서울시의 1990년 5월 질의에 대하여 2달 후인 1990년 7월 "택지개발촉진법시행령 제13조의2 제2항의 추첨의 방법에 의하여 주택조합에 택지를 공급할 수 있으므로 별도의 법규보완이나 지침은 필요 없고, 다만 택지개발공급계획작성시 당해 지역의 택지수급현황을 판단하고 공급의 방법과 절차에 있어서 공정성과 형평성이 확보되도록 하라"는 요지의 애매 모호한(주택조합에 공급은 해줄 수 있되, 공정한 추첨방법에 의하라고 함으로써 26개 조합의 민원을 수용해줄 수도 안해 줄 수도 없는 문안) 회신을 보냄으로써 모호한 입장을 취하였었다. 그러나 1개월 후인 1990년 8월 민자당 당정회의와 3개윌 후인 국회청원심사시의 검토의견서에서는 주택조합에 특별공급이 가능하며, 토지연고권과 단체민원이라는 특별사정을 감안하여 서울시가 공급하면 건설부도 승인해 주겠다는 식으로 특혜공급에 대한 수용을 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하였다. 건설부에서 수서부패와 관련하여 사법처리를 받은 사람은 이○○ 국장 뿐이다. 이○○ 국장은 건설부에 계류중이었던 택지지구 지정과 관련하여 한보측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하였다. 그러나 그 후 수서 문제와 관련한 적극적 역할은 드러나지 않았으며, 수서문제의 관할이 토지국에서 주택국으로 전환되면서 극히 제한된 역할에 머물렀다.
② 서울시 : 수서지구 개발에 대한 직접적인 권한은 서울시에 있었지만, 당시 택지공급에 대한 승인권은 건설부에 있었기 때문에 서울시는 직접적인 수서문제 해결의 당사자이면서도 건설부에 의존하는 입장일 수 밖에 없었다. 수서사건의 수사결과 서울시 공무원중 수서부패에 개입된 사람은 전혀 없었다. 수서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면 서울시는 수서지구의 특혜공급에 대하여 초기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건설부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며, 이 입장은 사건의 종반단계인 1990년 9월 28일(도시계획국장의 기자회견)과 1990년 10월 11일(고건 시장의 시민과의 대화) 까지도 현행 법규상 26개 주택조합에 택지를 특별 공급할 수 없다는 방침을 거듭 밝혔다. 여기서 서울시가 건설부와 차이를 보이는 것은 건설부는 국회 건설위의 청원 처리과정에서 특별공급 가능성을 제시한 반면 서울시는 당시에도 반대 입장을 보여, 동일한 문제에 대하여 핵심관련 기관인 건설부와 서울시간에 전혀 다른 입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가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가운데, 서울시는 1990년 12월 13일 국회로부터 청원결정을 통보받았으나(계류중에 있던 행정심판의 결과까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기다리던 중이었는지, 또는 1990년 12월 18일 택지공급승인권이 건설부로부터 서울시에 위임된 시행령의 효력 발생일인 1991년 1월 19일을 기다리던 중이었는지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처리하지 않고 있던 중, 1990년 12월 27일 그 동안 일관되게 특별공급 불가방침을 고수해 온 고건 시장이 경질되었고, 새로 부임한 박세직 시장에 의하여 1991년 1월 19일 민원처리에 관한 특별대책회의가 열려 종래의 불가방침을 번복하여 26개 주택조합에 택지를 특별공급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민주당 자료에 의하며, 이날의 대책회의는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소집한 것이 아니고 청와대의 장○○ 비서관에 의하여 비상소집되었으며, 이 회의에는 서울시의 관계관이 아닌 장○○ 비서관을 비롯하여 청원 소개의원인 민자당 이○○ 의원과 건설부의 이○○ 주택국장이 참석하였고, 동회의에서 서울시의 기존 불가방침을 변경함으로 인하여 일반 청약예금가입자에 분양될 아파트의 절대량 부족에 대한 대안으로서 고도제한 해제를 통한 고층건물 건축방안이 채택되었다. 물론 이것은 국방부 장관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안이었다.
일관되게 불가방침을 고수해온 서울시가 특별한 부정 청탁등(뇌물공세)을 받지 아니한 상태에서 종전의 방침을 정반대로 변경한 것은 국회의 청원결의가 있었다고 하나,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될만한 증거는 제시되지 못하였다.
수서부패는 다양한 요소들에 의하여 구성되었으며, 만일 일부 요소가 개입되지 않았거나 혹은 법규를 고수하였다면 수서부패의 구성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수서사건에 개입된 요소들의 역할과 상호작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3. 사례 분석결과의 특성 및 함의
1) 부패구조의 복잡성
수서사건의 분석을 통하여 나타난 가장 큰 특성은 부패구조의 복잡성이다. 이미 구조의 복잡성은 체제적 접근의 의미에서 예견된 것이기는 하지만, 수서사건의 부패구조는 매우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개입되어 있는 요소들의 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이 요소들간의 상호작용도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어 있다.
2) 자료의 불투명성
체제적 접근이 지니는 가장 큰 단점은 부패구조를 확장시킴에 따라서 구조에 개입되어 변수들의 관계와 개입배경을 명료하게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접근법에서는 오히여 개인의 활동 그 자체에 주목하기 때문에 체제적 접근에 비하여 오히려 자료의 불투명성이라는 문제는 중요하게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체제적 접근에서는 구성요소간의 관계가 중요한 논의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수서사건에서는 명료하게 분석하기 어렵다.
3) 법령에 대한 자의적 해석
결국 수서문제에 있어서 특혜공급은 법령의 개정을 통하여 가능해졌지만, 3년에 걸친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법령을 가장 중시하여야 할 주체들인 국회의원, 건설부, 서울시, 그리고 청와대의 공무원들이 법령을 매우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물론 수서사건의 대표적인 관련법인 소위 택촉법에 일부 문제조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후에 개정되었음), 내용상 특혜공급이 불가능한 명백한 법규위반임에도 불구하고 관련법을 억지로 해석하여 특혜공급을 추진하였다. 법규에 대한 엄격한 준수만 가능했어도 수서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4) 공무원의 소극적 대응
수서사건과 관련하여 사법적인 처벌을 받은 공무원은 청와대의 장○○ 비서관과 건설부의 이○○ 국장 단 두명에 불과하다. 이중 장○○비서관은 직업공무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실상 단 1명에 불과하여, 이 점에서만 보면 수서사건에서 공무원의 역할은 매우 미미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수서사건에서 공무원의 역할은 미미한 것이 아니라, 가장 절대적인 입장에 있었지만 다만 다른 요소의 경우처럼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았다. 수서사건에서는 가장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서울시와 건설부의 관련 공무원들이 특혜공급에 반대의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최종적인 결정까지 3년의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5) 청와대 주도적 정치․행정구조
수서사건의 중요한 핵심은 한보와 청와대의 장○○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장○○비서관의 역할이 깃털에 불과하다는 논란이 아직도 있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는데는 한계가 있다. 한보의 정○○회장이 청와대의 비서관을 활용한 것과, 그리고 이후의 과정에서 장비서관이 정부내에서의 의사결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 것을 보면, 우리의 정치․행정체제는 일반인의 생각 이상으로 청와대에 편향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3년에 걸친 수서의 전과정을 사실상 청와대가 주도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청와대 편향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보여주었다.
6) 쌍방적 독점구조
수서사건은 철저하게 개입된 구성요소들이 쌍방독점체제(bilateral monopoly)를 형성하고 있었다. 즉 어느 한 요소가 일방독점체제를 구성하지 못하였기에, 앞서 언급한 대로 매우 복잡한 구조와 해결에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예를 들어서 서울시는 건설부에, 건설부는 국회에, 국회는 한보에, 한보는 주택조합에, 주택조합은 한보에 의존하는 등 각 요소들이 쌍방독점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독점체제하에서 일단 부패구조가 형성되면 매우 견고해진다는 특성이 있다.
7) 경제적 폐쇄구조
수서사건은 매우 폐쇄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물론 수서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언론에 노출되었지만, 이 구조에 개입된 요소들은 모두 우리 나라에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 있어서 상당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계층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수서사건은 경제적으로 일부 제한된 계층만이 개입될 수 있었던 폐쇄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점에서 체체적 접근은 경제적 불평등과 부패구조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틀이 될 수 있다.
Ⅴ. 결론
본 연구에서는 체제적 접근이라는 틀 속에서 수서사건을 사례로서 분석하였다. 기존의 접근법이 지니고 있었던 제약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패를 관료 중심으로 결과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반면에 체제적 접근법에서는 사람 보다는 체제적 특성, 체제의 구성요소, 그리고 요소들간의 상호작용에 보다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접근법에 비하여 보다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으며, 동시에 포괄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본 연구에서 분석한 수서사건의 경우, 체제적 접근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사례이기는 하지만 분석에 있어서 일부 한계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에 대한 접근성과 자료의 정확성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분석내용은 검찰의 기소내용과 법원의 판결내용을 자료로 활용한 것이지만, 문제는 이러한 자료들의 구성은 본 연구와 같은 체제적 접근이 아니라 수서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개인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체제적 접근에서 중요한 분석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간 관계와 상호작용, 그리고 부패구조개입의 과정 등에 대한 분석은 관련 자료에 대한 해석과 언론의 보도자료 등을 상당 부분 근거로 분석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연구과정상의 제약요인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관료부패를 연구함에 있어서 체제적 관점에서 부패사례를 연구한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과, 이러한 접근을 통하여 관료부패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원인과 구조를 분석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패방지안을 도출함에 있어서도 개인중심적이고 대증적인 방안이 아니라 체제적이고 구조적인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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