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이 민주노동당의 정책이나 이벤트를 나름대로 베껴가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남의 저작권 빌려 쓸 때는 최소한 어디서 베껴온 것이라고 얘기는 해야겠지요. 하지만 그런 얘기 슬쩍 생략하는 것은 어차피 정치판의 일이니 그렇다 칩시다. 문제는, 베끼더라도 제대로 베껴야 하는데, 실제 내용은 안 베끼고 무늬만 베껴 총선용으로 써먹는다는 데에 있지요.
진보돼지 흉내낸 희망돼지를 봅시다. 민주노동당의 진보돼지는 그야말로 대선 을 위해 급조된 저금통이 아닙니다. 동전과 지폐로 푼돈 모아 그 저금통 채우려면 최소한 1년은 걸릴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돈은 주로 당의 일상적 활동을 위해 사용되었지요. 한 마디로 진보돼지는 선거용 반짝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생활 속에 녹아 들어간 당의 일상활동이었지.
희망돼지는 어땠나요? 한 마디로 선거라는 대목을 맞아 부랴부랴 급조된 이벤트에 불과했지요. 실제로 그 안에 든 돈보다는 카메라에 찍히는 돼지의 외양이 더 중요했지요. 그 난리를 치고도 그걸로 모은 건 민주당 대선 잔여금 수준도 못 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것도 1000만원 짜리 고액 입금도 희망돼지로 쳐주는 선심을 써서 말이지요. 노무현씨, 선거운동 검은 돈 갖고 했습니다.
학교급식 문제도 그래요. 그거 민주노동당 전남도의회의 전종덕 의원이 주민 수만 명으로부터 주소와 주민번호가 적힌 서명을 받아서 법제화해낸 일입니다. 그렇게 발로 뛰며 받은 서명용지가 라면 박스로 몇 박스나 됩니다. 전종덕 의원은 그거 하면서 거기에 조건 달지 않았습니다. 도의회의 유일한 민주노동당 의원이지만, 의석수가 모자라서 못한다고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 일개 도의원이 해냈습니다.
그런데 정동영씨를 봅시다. 농민들 앞에서 학교급식을 국산농산물로 하되, 그것을 FTA 승인이라는 카드와 맞바꾸는 조건을 걸고 제안했습니다. 그것도 당장 하는 게 아니라 열린우리당이 소수라고 변명을 했습니다. 그러니 그거 하게 의회 제1당이 만들어 달라는 거죠. 한 마디로 그러잖아도 살기 힘든 농민들 앞에서 학교급식과 지지표를 서로 맞바꾸자고 거래를 제안한 겁니다.
설거지 이벤트도 그렇습니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선거를 위한 이벤트를 해도 진정으로 성평등을 실현하자는 진보적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가정 내에서의 성평등, 당 안팎의 매체를 통해서 일상적으로 강조하고, 그 실천을 독려해 왔습니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하던 캠페인을 선거국면에서 밖으로 가져나온 것이지요. 거기 나와 지침 부친 분들, 벌서 짬밥이 드러나죠?
하지만 정동영씨가 언제부터 집에서 설거지 했답니까? 그리고 언제부터 민주당/열린우리당이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평소에 여기에 누가 관심을 가졌던가요? 한 마디로 성평등을 실제로 이루겠다는 의지보다는, 선거용 사진찍기 이벤트로 이를 활용하는 겁니다. 듣자 하니 그 동네 의원들 사진 찍을 때, 꼭 노란 잠바 빌려입는다고 하더군요. 유치하게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베끼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베끼려면 내실을 베껴가야지, 사진발 받는 껍데기만 베껴가지 말라는 겁니다. 아울러 베끼려면 서민의 삶을 위해 베껴야지, 민주노동당한테서 빌린 카드로 표 거래할 생각이나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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