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장화 보고서

하태경 / 열린북한방송 대표

[요 약] 북한의 시장화는 1990년대 중후반 발생한 식량난과 대량 아사가 그 기원이다. 물론 1990년대 이전에도 시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시장을 감자, 채소 등 부식물을 주로 거래하던 농민 시장이었다. 3일장, 5일장 같은 형식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대량 아사로 인해 발생한 시장은 모든 품목을 다루는 종합 시장으로 성장했다. 북한 당국의 탄압에도 식량 배급 기능이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장(장마당)은 날로 확대 강화 되었다. 북한의 장마당은 북한 전역 골목골목까지 퍼지기 시작한다.

시장이 갈수록 확대되고 주민들의 시장 유지 의지가 강하자 북한 당국은 2002년 7월 1일 시장을 합법화하는 조치를 취한다. 이로써 북한의 시장은 당국이 관리하는 형태를 띠게 된다. 당국의 허가가 있은 후 북한의 시장은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북한 시장의 발달로 상품의 가격도 시장에 의해서 결정된다. 대표적인 것이 쌀 가격이다. 쌀 가격은 정확히 시장의 수급 상황을 반영한다. 정부가 시장 통제를 가할수록 쌀 가격은 상승하고 시장을 풀어줄수록 쌀 가격은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편 시장이 발전하면서 주민들의 의식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금전 만능주의 사상이 확산된다. 주민들의 이동도 빈번해지고 외부 정보도 확산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정부 순종 의식도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북한에는 한국 드라마, 영화 등이 급속히 퍼지고 있고 이런 한류의 확산은 주민들의 북한 정권으로부터 이반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또 주민들의 의식은 보안원 등 정부 간부의 불합리한 행동들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데까지 발전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김정일 정권에 반대하는 행동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의 의식이 변하면서 사회계층들의 관계도 변하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노동당원이 좋은 신랑감이었으나 이제는 돈 많은 신랑감이 인기가 더 좋다. 외국에 친척이 있어서 달러를 송금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 이산가족, 일본 귀국자, 탈북자 가족들은 과거에는 최하층 적대 계층이었으나 이제는 달러 송금을 받아 중상류층으로 신분 변동이 생겼다.

당간부 외에 돈이 많은 기업가들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당, 정 간부들도 시장에서 뇌물을 받기도 하고 국가 물건을 시장에 팔아 부를 축적하게 됨으로써 시장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변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시장의 급속한 확산과 주민의 의식 각성에 놀라 2005년부터 다시 시장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북한 당국은 2005년 10월부터 “배급제 복귀”, “만 40세 이하 장사 금지”, “공산품 시장 판매 금지”, “10일장으로 전환”등의 다양한 시장 통제 조치를 내어 놓는다. 그러나 이 조치들 중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다. 시장 통제 조치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민들에게 인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중간 간부들까지 시장의 덕으로 살아가고 있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시장화 과정은 중국의 시장화 과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국은 정부가 시장화를 주도했지만 북한은 정부는 반대하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때문에 북한은 중국과 달리 시장이 발전해도 세수가 증대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북한은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하여 화폐를 남발하고 있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부추겨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 정권에게 시장의 발전은 체제 약화 요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주민들과 간부들의 반발로 과거 계획 경제로의 회기도 불가능하다. 북한은 개혁, 개방도 아니고 사회주의 계획 경제로의 복귀도 아닌 어정쩡한 시장화의 길을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