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한남대 정문 인근의 원룸에서 만난 남학생. 원룸 주인 아주머니에 따르면 D대 학생인데 집에는 기숙사에서 산다고 얘기하고, U대 다니는 여학생하고 같이 살고 있다. 남학생은 충남 출신이며 역시 지방 출신인 여학생과 동거한 지 1년 가까이 됐다고 한다.
기자가 말을 붙이자 조청우(가명·26)씨는 스스럼없이 “친구들이 많아 자주 만나고 다녔는데 동거한 이후로 친구와 놀 시간이 적어 서운하다”고 말했다. 그는 “동거가 힘들지 않나”고 묻자 “돈 문제로 가끔 다투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같이 붙어 있으니 정신과 육체적으로 다 좋다”며 웃었다.
# 돈 아끼려고 시작했어요
“사귀던 남자친구 고향이 경북인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저도 기숙사에서 나와 방을 구하려고 하던 참이라 함께 살기로 했죠.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경남 출신인 여대생 이나영(가명·23)씨는 3학년이던 지난해 1월부터 10개월간 남자친구와 살았다.
김철수(가명·28)씨도 비슷한 이유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김씨는 2003년 8월부터 1년간 같은 고향(부산) 출신인 여자친구와 살았다.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여자친구가 서울에서 직장을 얻으면서 함께 지내면 경제적으로 괜찮겠다 싶어서 시작했죠.”
이나영씨는 장점이 많다고 말한다. “일단 데이트 비용이 줄어들죠. 대학생에게는 데이트 비용을 아끼는 것만으로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거든요. 밖에서 만나다 보면 밥도 사먹고 영화도 보고 모텔 같은 곳도 가야 하는데, 동거를 하면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잖아요.”
각각 다른 상대와 1년8개월, 1년간 동거경험이 있다는 박영호(가명·30)씨도 비슷한 이유를 들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사람과 계속 붙어 있어 좋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좋았어요.”
# 여학생은 요리하고 남학생은 빨래하고…
가사 등 일상생활은 어떻게 할까? 이나영씨의 말이다. “서로 일을 분담해서 혼자 사는 것보다 편했어요. 나는 요리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청소와 빨래는 싫거든요. 남자친구가 다 해줘 편했죠.” 대학 4학년 때 동거에 들어가 현재 1년째 동거 중인 최영철(가명·27)씨도 비슷했다. “가사는 거의 분담합니다. 여자친구가 빨래를 하면 내가 요리하는 식으로…. 가사비는 분담하지만 돈 관리는 각자 하고요.”
# 동거족도 사생활 때문에 싸운다
충돌도 적지 않다. “금전적인 문제로 많이 다퉜어요. 남자친구는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20만원 받았는데 나는 과외를 서너개 해 여유가 있어 생활비는 다 내가 냈죠. 짜증났어요. ‘오늘 몇시에 들어오느냐, 누구랑 만나느냐’는 등 간섭도 하게 돼 남자친구가 힘들어 했죠.”(이나영씨) 김철수씨도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하는 게 불쾌했다”며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여자친구와 싸우는 일도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박영호씨는 “같이 살면 연애하는 게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가 된다”며 “사소한 일상에 치이다 보면 재미가 없어지고 처음엔 죽고 못살 것 같다가도 나중엔 짜증나고 힘들게 된다”고 털어놨다.
학업에 지장은 없었을까? 이나영씨는 “동거 초반에는 둘 다 집밖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만 놀아서 수업도 많이 빠지게 돼 지장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영철씨는 “수업이 적은 4학년 때 동거를 시작해 학업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 부모님에게 말할 수 있냐고요? 아직은…
재기발랄하고 당당한 대학 시절이지만 아직 동거를 드러내놓고 자랑할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친구들에게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지만, 그렇다고 부모에게 알릴 만큼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나영씨도 집에는 알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친구들에게는 당당히 말했다. 친구들은 의외로 “나는 용기가 없어서 못하지만 동거도 괜찮은 것 같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적지 않아 놀랐다고 한다. 이씨는 “하지만 동거 사실이 퍼져서 불편을 겪은 적도 있다”면서 “사람들은 대부분 동거를 가십거리로 생각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김철수씨는 아예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쪽이다. “여자친구가 원하지 않아서 숨기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멀어졌죠. 한번은 고향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신다기에 집에 있던 여자 물건을 다 치우느라 한바탕 곤욕을 치렀죠.” 가족에게 비밀로 한 박영호씨는 동거 사실이 들통나 난리가 났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집에 찾아오셔서 그만 들켰어요. 한겨울이었는데 어머니가 장독을 던지고…. 그냥 맨발로 도망쳤어요.”
최영철씨는 부모에게 동거 사실을 알린 사례다. “평소 부모님과 대화도 많고 사이가 좋았는데 말씀드렸더니 이해해 주셨어요. 양가 부모님 모두 현대적인 분들이거든요. 하지만 여자친구가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갔는데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 직장에는 알리지 않고 있어요.”
# 다른 사람에게 추천?… 글쎄요
그렇다면 동거를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할 수 있을까? 이나영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혼하기 전에는 꼭 동거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거를 결심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죠.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다르더군요. 어떤 면에서는 동거가 결혼보다 힘든 부분이 있어요. 결혼은 제도적으로 헤어지기 쉽지 않지만 동거는 헤어지면 그냥 끝이기 때문이죠. 동거를 다시 한다면 세세한 부분까지 꼭 합의하고 많은 대화를 나눈 뒤에 할 거예요.”
장용진(가명·23)씨는 “서로 생활이 밀접하게 결합되는 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장점도 있지만 사적인 부분이 없어지기도 하는 양날의 칼”이라고 말했다.
김철수씨는 ‘동거는 필요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거를 하면서 여자친구와 싸우는 일이 잦아졌어요. 여자친구를 대하는 마음도 예전 같지 않았고요. 오직 성관계만 탐닉했어요. 여자친구도 성관계를 안 하면 연애에 이상이 있다고 불만이었고요.”
최영철씨는 “동거를 권장할 것은 아니지만 나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둘이서 마음이 맞는다고 무턱대고 시작할 게 아니라 부모도 합의한 상태에서 해야 훨씬 책임감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동거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영국의 자료에 따르면 첫 번째 동거의 지속기간은 평균 2년이며, 동거커플이 결혼에 골인하는 사례는 10명 중 6명 정도. 이들 중 35%가 10년 안에 헤어지는데, 동거커플이 갈라설 확률은 결혼한 부부보다 서너 배 높다고 한다. 인터뷰에 응한 6명 중 결혼을 약속한 사람은 최영철씨뿐이다. 부모에게 동거 허락을 받는 데 사용한 ‘담보’가 바로 결혼이었다고 한다. 이나영씨는 동거는 일단 정리한 뒤 계속 교제 중이지만 미래는 불투명한 상태고, 나머지 3명은 상대방과 이별했다.
박영호씨는 “같이 살게 되니 연애하는 기분도 없어지고 금방 질리게 된다”며 “그래서 동거커플이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장용진씨도 “커플 사이에 트러블이 생기면 휴지기가 없기 때문에 쉽게 질려버리고 곧바로 깨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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